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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들의 놀이터, 녹색당

zingari.JQ 2012. 5. 4. 12:04

*<공동선> 104호 특집에 실린 글입니다



풀뿌리들의 놀이터, 녹색당

 

송준규

(지역공동체와 풀뿌리 시민운동을 연구하는 인류학도)


  나는 이번 국회의원 선거 때 녹색당 사무처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였다. 석사논문을 마치고선 과천시민모임 간사로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가까이서 지켜보시던 서형원 시의원이 내게 이번 총선 때 녹색당에서 일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셨다. 서형원 시의장의 제안을 함께 들은 동네 분들은 과천은 걱정말고 다녀오라며 등을 떠밀어주셨다.

  당시 제안을 받을 때는 간사로서 맡은 첫 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시 상황은 이러했다. 야권연대 지역경선이 치러진다는 소식이 언론에 실렸고, 이를 접한 동네 사람들은 당황하였다.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대화해보는 자리도 없이 ARS로 전화기 버튼만 누르라는 것이 말도 안 된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지역경선에 나오는 예비후보자를 초청해서 동네 이웃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 간담회는 예민할 수 있었으나 과천의 풀뿌리 방식대로 역시 발랄하고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나는 이번 기회에도 풀뿌리에서 바라보는 정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배우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났더니 하승수 변호사께서 전화를 주셨다. 앞서 말한 서형원 시의원이나 하승수 변호사는 내가 과천의 풀뿌리 시민운동에 대한 현장연구를 할 때 큰 도움을 주셨다. 하지만 이분들께서 녹색당을 준비하실 때에는 모임에 참석하거나 일을 도와드리지를 못했다. 그래서 뭔가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과천의 풀뿌리 자치운동과 생활정치의 현장을 참여관찰하면서 많은 점을 배우면서, 이러한 풀뿌리의 도전이 전국을 무대로 이뤄지는 녹색당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다가가서 참여관찰하고 싶었다.

 

  녹색당 사무처의 첫 인상은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내가 사무처에서 맡은 일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련 업무였지만, 사무실에서 일에 대해서 서로 격 없이 물어보고 대화하는 속에서 나는 전체적인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공보물에 들어갈 핵심적인 슬로건을 정하는데도, 각 책상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생각을 물어보고 깔깔 웃으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던 장면이 인상깊었다.

  이러한 소통의 방식은 다른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SNS에서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녹색당이란 구호가 적힌 작은 손현수막을 들고 있는 사진이 있었는데, 어떤 청소년 단체에서 이에 대해 청소년과 아동에 대한 보호주의가 문제가 된다고 지적하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사무처에서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생겼다. 사실 나는 학위논문에서 아이를 통해 지역과 세상을 바라보고 아이를 위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부모됨이 곧 이웃됨시민됨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던 터라,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이라는 표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소리 높여 옹호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청소년과 함께 핵없는 세상을이라고 수정된 손현수막이 사무처에 도착했고, SNS에 바로 사진이 올라갔다.

  이러한 과정에 대해서 어리둥절하고 있으니깐, 옆자리에 앉아있는 청소년 운동을 했던 활동가가 말을 걸어주었다. 본인도 그 청소년 단체의 지적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들을 껴안고 가야한다고.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돌려 사무실을 돌아다보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통하고 껴안고 나아간다는 것. 어떻게 보면 느리고 답답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으면 녹색당이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녹색당은 충분한 소통을 통해 다양한 소외된 그룹들과 함께 나아가고자 할 것이고, 또 이를 통해 녹색당 스스로 성장해나가겠구나 싶었다.

  


  녹색당에 대한 또 다른 인상은 참 발랄하다는 것이다. 신나고 즐겁게 활동하는 점은 녹색당스러움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총선을 위한 특별당비 모금 과정에서 이러한 점이 잘 나타났다. 전화로 모금을 한다는 것이 전화를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서로 기계적일 수 있고, 또 불쾌한 상황으로 이어지기 쉬운 일이다. 하지만 녹색당에서는 이러한 일이 자발적으로 지원을 받아서 이루어졌고, 그들에 따르면 전화를 받는 당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모금을 부탁드릴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1005명의 당원이 모금에 참여해 23800만원을 모을 수 있었고, 이를 가지고 비례대표 후보들의 기탁금과 법정 공보물 비용 등을 충당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비용이 없어서 불가능할 줄 알았던 일들이었는데, 자발적이고 즐거운 분위기는 이러한 도전을 실현가능하게 만들고 말았다.

  선거운동을 하는 방식도 그러하였다. 지역 곳곳의 평당원들이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어왔다. 본인들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1인시위나 전화돌리기, 현수막 걸기, 웹자보 만들기 등을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의 선거운동 관련 규정은 평범한 풀뿌리들이 선거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선거운동이 얼마나 사람들을 동원시켜서 진행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색당의 풀뿌리 당원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선거운동들을 해보였고, 이는 기존의 선거운동과 다르게 참신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게 되었다.

이렇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들의 방식대로 신나고 즐겁게 도전해보는 점에서, 녹색당의 구성원들은 정치를 하나의 놀이로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정치를 놀이 따위로 비하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놀이가 곧 장난은 아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을 하고 세상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녹색당의 풀뿌리들은 세상을 향한 정치적 놀이를 통해 딱딱한 정치에 참여하는 발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분명 이러한 놀이는 다양한 창의성을 보이면서 그 스스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러한 특성을 녹색당스럽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러한 활동의 특성과 방식은 다시 녹색당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녹색당의 방식은 갖가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활발하게 오고 가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기분이 언짢거나 상처를 받는 경우가 생긴다. 또는 각 지역과 영역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다채롭게 벌어지는 선거운동 방식이 반드시 효과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게 바로 녹색당스러운 점이다. 녹색당은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 속에서 풍부해질 수 있고, 느리더라도 이들과 함께 성장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다보면 가끔은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꾸준히 놀이터에 나가서 뛰어논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해나갈지 방법을 찾고 성장해나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녹색당 내에서 갖가지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녹색당이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103811명의 지지를 받았다. 득표율로는 0.48%이다. 사실 사무처에서는 이러한 결과를 접하자마자 놀랬고, 또 침울해지는 분위기였다. 득표율 3%를 받아 원내진출을 해야한다는 목표로 열심히 활동했는데, 득표율이 2%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정당등록이 취소되고 녹색당이라는 이름을 다시 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참 이상하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정치적 시도를 보장해야 하는데, 어떤 근거로 그 이름을 못 쓰게 막는 것일까? 녹색당은 이에 대해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진보신당청년당과 함께 헌법소원을 준비해서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 다양한 정치적 시도는 곧 정치적 참여의 과정이고, 또 이는 풀뿌리 민주주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다음날부터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녹색당에 가입하는 문의전화가 늘어나고, 실제로 가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또한 온라인에서는 녹색당을 지지했다는 다양한 발언이 이어졌고, 투표 여부와 상관없이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면서 어서 재창당하라고 격려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반응에 녹색당 사람들도 다시 힘을 얻었고, 재창당추진위원회를 다시 꾸려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이름은 ‘(가칭)녹색당+’로 정해졌다. 사람들은 다시 발랄해져서 각자 할 수 있는 다채로운 방법으로 활동을 하겠다고 글을 올린다. 다시 분위기는 녹색당스러워지고 있다.

 

  선거가 끝나고 지친 마음으로 눈을 돌려보니, 봄기운으로 연초록의 갖가지 잎사귀가 나오기 시작했다. 멀찌감치 그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연초록은 참 다양한 색깔들이 모여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연초록은 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자라왔다. 그리고 아마 뜨거운 여름이 다가올수록 이 초록들은 점차 짙고 울창한 녹색으로 변해갈 것이다. 푸른 생명의 기운으로 우리를 숨쉬게 해주는 숲으로 말이다.

  녹색당이 지금 겪고 있는 과정도 이러한 성장의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7000여명의 발랄한 당원들과 10만여명의 지지자들을 안고 녹색당은 첫 출발을 시작한 셈이다. 녹색당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뛰어놀 수 있는지 감을 잡았다. 난 그래서 이 다양한 연초록들이 다채롭게 어울리면서 짙고 울창한 녹색의 숲을 이루어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도 만들어갈 것이다. 그것도 아주 녹색당스럽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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