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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OUR, Bruno & Steve WOOLGAR, 1979[1986], Laboratory Life: The Construction of Scientific Facts, Sage Publication[Pribceton University Press], ISBN 9780691028323, (https://press.princeton.edu/books/paperback/9780691028323/laboratory-life)
[브루노 라투르, 스티브 울거(저), 이상원(역), 2019, 『실험실 생활: 과학적 사실의 구성』, 한울 아카데미, ISBN 978-89-460-6582-93330, (https://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4451241)].

 

 

"... 우리의 실험실 과학자들은 한 부족을 구성하며, 그 부족이 행하는 대상의 일상적 조작과 생산은 때로 외부 세계가 그 부족의 산출물에 경의를 표해 받게 되는 높은 지위와 실천이 외부인의 실천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가정할 선험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치게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실험실 활동을 되도록 낯설어 보이게 할 것이다." (p.42)

 

실험실 에스노그라피

여기 실험실을 현장연구한 인류학 에스노그라피가 있다. 미국의 소크 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에서 신경내분비학으로 TRF(H)라는 뇌하수체 호르몬을 발견(발명)했다는 공로로, 여기에 등장하는 중요한 두 인물 기유맹과 샐리는 1977년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p.44). 연구소를 설립한 조나스 소크 박사가 이 책의 도입을 써줄 정도로 이들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뭐랄까, 노벨 의학상을 받은 연구의 내밀한 과정을 밝힌 에스노그라피라니...

"... 그 어떤 반대가 제기될 수 있을지라도,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에 대한 이런 종류의 직접적 조사는, 우리 자신의 최선의 이익이 되도록 그리고 사회의 최선의 이익이 되도록 연장되어야 하며 과학자들에 의해서 장려받아야 한다. 과학은, 일반적으로 너무도 많은 희망과 너무도 많은 공포를 발생시키며, ... 만일 대중이 과학 지식이 어떻게 발생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파악 가능하고 어떤 다른 분야의 노력에 비해 이상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면, ... 이것은 사회 안에서 과학자의 사회적 입지 만이 아니라, 과학, 과학적 추구, 과학 지식의 창조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 명료화해줄 것이다. ... 과학자들의 업적이 종종 일종의 마법적 또는 신비적 방식으로만 이해되는 점은 때로 낙담을 준다." (p.19, 조나스 소크의 "도입" 부분)

 

'기술/사회' 구별을 넘어

저자들은 과학의 '기술적' 측면보다 '사회적' 측면만 집중한다는 비판(p.33), 또는 '기술적인 것'에 반하는 '사회적인 것'을 강조한다는 오해(p.34)를 모두 넘어서고자 한다. 바로 '기술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분리 자체를 넘어서서 생각해볼 수 있는 관점을 채택한다(p.41). '사회적 / 기술적'이라는 이 구별은 현장 과학자들이 일상적으로 의존하는 자원이지만, 저자들은 이 구별이 어떻게 과학자들의 활동에 특징을 이루는지 이해하고자 한다(p.38). 

"사회적 집단의 형성이 과학자들이 하는 일정한 탐구 노선의 추구를 일으키는가, 아니면 지적 문제의 존재가 과학자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창조하도록 이끄는가?" (p.36)

과학자들의 "기술 실천이 체계적이고 말쑥해진 연구 보고서 안으로 조직되어 들어가느냐를 경험적 연구로 보여주는 것"이 저자들의 목적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 실천의 실제 내용이 '과학이 어떻게 행해졌는가'에 관한 진술로 변환되는지"를 보겠다는 것이다(p.41).

 

낯선 곳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확인

"... TRF가 '정말 무엇인지'에 관한 어떤 지식에서 출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TRF의 의미와 중요성이 그것을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 변하는 방식을 규정하는데서 출발한다." (p.136)

과학실을 참여관찰하는 허구의 인물 '관찰자'(p.63)는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다. 저자들은 되레 이게 에스노그라피 작업을 하기 좋은 조건이라고 본다. '명백히 관찰자가 질문, 관찰, 기록을 조직하는 일은 불가피하게 문화적 친숙성에 구속'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적인 신입자'라는 개념, 완전 백지 상태라는 것도 실현 불가능하다. 저자들은 관찰자가 '전적인 신입자'과 '완벽한 참여자'라는 두 극단 사이에서의 작업이라고 설명한다(p.62).

"'민족지학(에스노그라피)'의 우리의 현재적 입장은 ... 인류학자는 연구되고 있는 사회의 본성을 모르거나, 기술적, 사회적, 자연적 등의 영역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지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 이런 인류학적 접근은 연구되고 있는 사회의 구성이 불확실할 때 어떤 경우에서 사용될 수 있다. ... 많은 인류학자가 '거리'를 성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식이다. ... 우리는 '민족지학'에서 악령 쫓기의 의미보다는 불확실성이라는 작동 원리를 얻는다." (p.363)

이들은 그런 점에서 TRF라는 대상이 그 안에서 의미를 갖게 되는 입장들의 집합을 네트워크로 정의하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TRF(H)라는 용어의 의미를 묻는 것부터 시작한다(p.136). TRF가 의미를 얻게 된 서로 다른 네트워크들을 파악하면서, 'TRF(H)가 창조된 영역을 조사한 것이다. 

이들의 분석 방법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과학자들의 소셜 네트워크를 확인하려는 시도였다. TRF라는 물질을 다룬 신경내분비학 논문들이 어떤 인용을 따르는지를 추적했더니, 기유맹 그룹과 샬리 그룹을 구분해서 다른 경향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과학 논문을 논문 내용이 아니라, 인용의 궤적을 쫓거나(pp.136~158) 진술의 유형을 파악(p.101~116)하면서, "이전에 혼란스러운 '논문 혼합물'로 보였던 것이 이제는 진술을 포함하는 '텍스트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p.112). 혹은 '인용 네트워크'라는 용어로도 표현하였다(p.144). 

"... 이것은 기유명 그룹이 [서로] 크게 의지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구성했음을, 반면 샬리 그룹은 기유맹의 연구 및 여타 외부의 연구 둘 다에 더 의존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p.168)

이 연구의 현장연구는 1970년대 중반에 이루어졌고, 공동 저자인 스티브 울거의 캠브리지 사회학 박사 학위논문은 1978년에 발간되었다.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소셜 네트워크 개념을 주창한 인류학자 존 아룬델 반즈가 캠브리지 사회학과에 재직 중이었기 때문에, 이 연구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네트워크 방법론이 그렇게 연결되는 것인지, 이후 라투르의 '행위자 연망 이론(Agent Network Theory, ANT)'로 이어지는 것인지 매우 궁금해졌다.

 

장치에 의한 증명, 진술의 삶

1962년 시부자와와 동료들은 TRF의 존재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TRF를 분리했다고 주장한 것에 반해 어느 실험실에서 실험을 반복해달라고 초대받았을 때 그는 등장하지 않았고, 전혀 논문으로도 쓰지 못했다. 결국 그의 물질은 '인공물'로 여겨지게 되었고, 그는 연구를 떠났다(p.152~153). 10년 후에 기유맹과 샐리에 의해 이를 입증했을 때, 저자는 시부자와의 실패 때문이 아니라, 그 사이에 증명의 정의가 급격히 변화했다는 점에 주목한다(p.153). 

TRF가 펩타이트가 아니라는 가설을 시험하고자, 샬리는 화합물을 주문해서 모든 가능한 조합으로 세가지 아미노산(His, Pro, Glu)를 포함해 실험을 한다. 가유맹은 1968년 '독립적으로 세 개의 아미노산(His, Pro, Glu)이 같은 몰 비율로 존재한다는 점, 무게의 80%가 아미노산으로 설명된다는 점을 알아냈다. (p,172~173) 이제 질문은 1962년 즈음 'TRF는 존재하는가?', '펩타이드인가?'에서 1969년 'His, Pro, Glu를 포함한다'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질량분석기에 천연 표본을 넣을 수 있을까의 장치적 문제에 도달한다. 버거스가 질량분석기를 돌리면서, 이제 TRF는 'Pyro-Glu-His-Pro-NH2'라는 걸 밝히며, '유사'하다거나 '닮았다' 같은 표현이 아닌, '이다'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TRF는 사실의 지위를 얻기 되었고, '기유맹과 샬리는 TRF가 Pyro-Glu-His-Pro임을 확립했다'는 진술이 당연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고도로 정밀한 분석화학의 도구를 이용하면서 사실의 지위를 얻게 되고, 그에 따른 언표들이 네트워크 구조까지 바꾸게 되는 점을 논하게 된다. 8년 간의 노력, 세 가지 아미노산의 최종적 구조의 단순함, 이를 위해 양의 뇌에서 추출한 수 톤의 시상하부를 쓰게 되는 점(pp.190~191)에 대해서 하나씩 설명을 해낸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일정한 장치 사용이 구성 과정에 포함되며(p.230), 과학자들의 진술이 불가지론적인 과정에서 격해지며 부가·탈락·수정을 거치지만, 진술이 안정화되면 곧 이내 그 진술이 분리된 존재자가 된다는 점을 설명한다(p.230). 그리고는 대상과 진술 사이의 대응의 힘이 그 실험실 맥락에서 일어나는 한, 진술의 분리와 전도에 기인한다는 것을 주장하기에 이른다(p.232). 사실이라는 것이 특수한 물질적 맥락 안에서 존재하는, 사실의 '구성'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p.245). 

 

크레딧과 보상

5장에서는 과학자들이 왜 이런 일을 하는가를 탐색한다. 여기서 '가치의 생산'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주목해서 보려고 했던 거 같다. 과학자들의 활동을 경제학적 설명으로 시도해보는데, 크레딧 가능성을 순환시키고, 확장해서, 그 속도를 높이려는 목적이 과학자들 세계에서 맞아떨어진다는 설명을 한다(p.272). 엄청난 투자가 들어간 이후, 실험이 성공하게 되면 실험실의 '죽은 자본'을 이룬 장비, 돈 권위는 재분배되어야 하는 상황(p.300)을 자세히 들여다본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무질서에서 질서로

저자들은 실험 도구의 의존성에 관심을 두었다. 과학 도구에서 나오는  자료의 안정화가 신뢰할 수준에 도달되는 지점에서 사실 구성이 이루어진다(p.9)고 보며, 일정한 시점에 안정성을 지니게 되면 실재의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고 보았다(p.10). 화학적 구조의 집합적 구성을 따라갔고, 정제된 뇌 추출물을 얻어대기 위해 8년 동안 '기록하기' 장치를 가동한 후에, 어떻게 진술이 여타 네트워크와 연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안정화되었는가를 보여준 것이다(p.308). 

무질서의 원천을 감소시키고, 몇몇 진술을 더 가망성 있게 만들고자 시도하는 일. 이로 인해 '질서의 주머니'를 창조하게 되는 과정. 저자는 이러한 과정이 실험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닌, 텍스트를 갖고 설명을 이끌어내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pp.339~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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