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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께서 한 번 읽어보라고 하신 게 어언 몇 수년 전인데, 이제서야 읽는다. 
읽으면서 초벌 번역을 한 건데, 발랄하고 흥미롭고 어려워서 올려본다.
비인간 대 인간 논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하던 나에겐, 잉골드 얘기는 좀 시원하다.
(다른 지점에서) 거미줄에 대한 비유를 손에 들고 박사과정을 시작하기도 했고... 

INGOLD, Tim, 2011, "When ANT Meets SPIDER: Social Theory for Arthropods", Being Alive: Essays in Movement, Knowledge and Description,  Routledge, pp.89~94, (https://www.taylorfrancis.com/chapters/mono/10.4324/9780203818336-15/ant-meets-spider-social-theory-arthropods-tim-ingold).

번역은 위에 책을 보고 한건데, 사실 처음 발표된 글은 아래에 실렸던 거다.

INGOLD, Tim, 2008, "When ANT Meets SPIDER: Social Theory for Arthropods", Material Agency: Towards a Non-Anthropocentric Approach, Springer, pp.209~215, (https://link.springer.com/chapter/10.1007/978-0-387-74711-8_11

 

7.

ANTSPIDER를 만났을 때

- 절지동물을 위한 사회 이론

 

 

 

깊은 바닥이 움푹 패인 곳에서 뛰어난 절지동물(arthropods) 마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동물계에서 이들은 독창성과 기술적 성취로 유명한 이들이었다. 하나는 ANT(그림 7-1)이고, 다른 하나는 SPIDER(그림 7-2)였다. 이야기가 철학적이긴 했지만, 사실 그들의 관심사는 이 세상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흔치 않은 , ANT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 개미(We ants)는 고립된 개체가 아니야. 우리의 뇌는 바늘머리보다 작을지도 모르지만, 우린 위대한 걸 성취할 수 있어. 우리 둥지는 기념비적인 언덕이고, 우리 길은 숲을 통과하는 고속도로라서, 길에 있는 모든 걸 압도한다고. 이런 업적은 우리가 함께(collaborate)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우린 수천의 힘을 가진 집단 안에서 함께 살며, 음식과 일을 공유하지. 한마디로, 우린 곤충들 중 가장 사회적(social)이라고."

 

원래부터 혼자였던 SPIDER는 군집 생활(life in a colony) 대한 생각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자신 같은 부류의 다른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보다, 많이 먹고 싶어한다는 건 그녀 스스로 인정한다. 하지만 사회적이라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싶었던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 ANT를 압박해보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물었다.
"활동하면서, 너네는 왠갖 일들을 처리하잖아. 너네들이 먹이로 잡은 애벌레와 곤충, 그리고 건축자재로 나뭇가지, 솔잎이나 나뭇잎을 둥지로 끌고 가는 봤어. 진딧물을 '건드려서(touching up)' 꿀을 핥는 것도 봤지. 너네 같은 유충을 집어 들고 다니는 것도 봤고. 이런 거랑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s)가 있는거야? 아니면 너네 같은 온전한 군집 구성원(mature member of colony) 사회적 관계가 있는거야?"

 

그림 7-1. ANT, 둔덕 구축가(the mound builder)

 

그림 7-2. SPIDER, 직조가(the web weaver)

 

 

"자, SPIDER, 들어봐"
ANT가 답했다.

"너는 개미과(formicoid) 세계에 논란의 근원이 문제를 건드렸어. 문제에 대해 생각은 정통적이진 않다는 먼저 밝힐께. 얘기는 길지만 우선 짧게 얘기해보면, 지금까지 2개의 학파가 있었어.
학파에 따르면, 군집을 부분의 이상으로, 다시 말해 모든 개체의 생명이 집합(collectivity) 이익을 주는 기능하는 총체(funtioning totality)―일종의 -유기체(super-organism)―로 우리를 생각하자는거야.  
다른 학파에 따르면, 우리가 '군집(the colony)'이라고 부르는 어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실체가 아니라는거야. 우리는 단지 현실 속에서, 각자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 의해 움직이는, 개체들의 방대한 집합체(vast aggregation of individual)라는 용어로 부를 있다는거지.

여기서 생각은 우선 군집의 특징을 파악해야한다고 . 구성원(embership)이나 구성(composition) 말고, 실제로 거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파악해야 한다고. 모든 군집은 엄청 활발해. 우리가 활동의 선들(lines) 따라가보면(follow), 이게 단일하고 집합적인 -유기체, 또는 개별 유기체들이 모인 복수체 같은 걸로 거슬러 올라갈 없다는 알게 될거야. 되레, 활동의 선들을 추적(trace)해보면, 어떤 개체도 특정한 노드(node) 나타나는 방대한 네트워크(vast network) 기술(describe)하게 될거야. 군집 안에 있는 모든 개미는 활동의 일부이고, 나름대로 진행하지. 말로 보면, 이건 행동-개미(act-ant)인거지."

 

말이 끝나자마자 SPIDER 끼어들었다.

"너네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책임을 부여(assign responsibility)하고 싶다고 해보자. 그럼 그걸 개인이나 집합 앞에 놓을 없잖아. 되레 전체 네트워크(entire network) 퍼져있는 거잖아."

 

ANT 더듬이를 흔들면서 맞장구쳤다.

"그렇다니깐. 내가 개별 행동-개미는 행위자(agent)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가 그거라니깐. 행위자―즉,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것―는 네트워크 전체에 분산(distributed)되어 있다니깐."

 

"그게 다야?"

SPIDER 쏘아붙이듯 말했다.

" 아직도 질문에 대답 하고 있잖아. 너네 군집을 행동-개미의 네트워크(network of act-ant)라고 칭하잖아. 근데 네트워크에 -개미들(non-ants) 포함되나? -개미도 사회적 삶들(social lives) 가질 있는거야?"

 

"물론이지"

ANT 말을 이었다.

"뭐든지(Anything) 네트워크에 속할 있어, 개미이던 -개미이던 간에. 바로 그게 내가 동료들한테 문제를 제기하는 지점이야. 개미가 되는 (being an ant) 대해 뭔가 ―무슨 본질적인 개미됨(essential anthood) 있다는거지. 다른 창조물(creature)들과 구별되는, 개미 세계(world of anture)만의, 자연 세계(world of nature)라는 ―다른 모든 창조물의 존재가 제한된― 물질적 세계와는 구별짓는 뭔가 말이야.
쟤네한테 사회적 관계는 자연적인(natural) 것이 아니라 개미적인(antural) 거지. 근데 내가 사는 세상을 생각해보면, 솔잎, 진딧물이, 유충 같은 포함돼서, 행동-개미와 -개미로 이루어져 있거든. 이게 단지 수동적인 물체(passive object)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동료 개미들과 관계를 맺듯이, 이들과도 관계를 맺거든. 얘네도 네트워크의 일부인거야. 파리가 거미줄에 걸리듯이, 얘들도 여기에 걸리는거지. 그런거 같지, 거미야?"

 

"아냐, 분명히 틀렸어"

거미가 외쳤다.

" (web) 선들은 너네 네트워크의 선들과 전혀 같지 않아. 너네 세계에선 일이 일어나도록 함께 모아지거(brought together) 배치되는(assembled) 여러가지 쪼가리나 조각이 있을 뿐이야. 그렇다면 네트워크의 모든 '관계(relation)' 이것과 저것 (between) 연결(connection) 거지. 그렇게 보면, 관계에는 물질적 현존(material presence) 없는 거지.

입장에서 보면, 세상의 모든 물질성(materiality) 연결된 것들(things connected) 속에서야 완전히 이해될 있는 거잖아.

반대로 거미줄의 선들은, 자체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질들(materials) 만들어지고, 내가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놓이지. 

너는 이걸 존재의 확장(extentiona of my very being)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네. 이게 니가 소위 '와이드웨어(wideware)'라고[1] 부를 만한 걸로 구성되는 환경으로 이어져있으니깐. 예를 들어, 파리가 망에 내려앉으면 나는 바로 안다. 진동이 오거든, 선들을 통해서 뾰족한 다리에 진동을 느끼거든. 그러면 바로 선들을 통해 잡으로 달려가지. 근데, 여기서 망의 선들은 파리와 연결되지 않아. 파리가 내려앉기 전에 이미 꿰어져(threaded) 있기도 하고, 물질적 현존을 통해 이러한 연결이 잠재적으로 확립할 있는 아래 포획 조건(conditions of entrapment) 준비되어 있는 거거든."

 

SPIDER 설명을 듣다, ANT 날갯짓하며 짝짓기 하던 거미 (spider`s trap) 걸릴 뻔한 사건을 떠올렸다. 건드렸지만 끈적한 몸짓 끝에 겨우 빠져나올 있었다. 그렇다면, 그를 붙잡은 망일까, 아니면 거미일까? 고민을 하다, ANT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
물론, 거미나 망이나, 우리가 소위 혼종체(hybridity entity)이라 부를만한, '거미-(spider-web)'으로 결합(conjuntion) 형성된 거라고 봐야지."

ANT 설명을 이어갔다.

"망은 지원(supported) 없으면 기능(function) 없는 거잖아. 사실 덤불 가지와 줄기에 선이 붙어있었던 거고. 그러니, 거미와 , 줄기와 덤불은 모두 네트워크에 들어있는거고. 순간 나는 거미의 저녁식사가 뻔한 거고."

 

'혼종(hybrid)'라는 단어를 듣자, 거미의 다리는 신경질적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이 용어를 싫어했기에, ANT와 허언자들(confabulators) 퍼뜨리는(bandied) 방식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혼종에 대한 이야기는 핵심을 완전히 놓치고 있어"

그녀는 까다롭게 대답했다.

"너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구성하도록 배치된 실체들―거미, , 줄기, 가지 등―의 세계를 상상하잖아. 그리고 사건을 '발생시키는(causes)' 행위자가 배치(assemblage)[2] 구성요소에 분포되어있다고 주장하는거잖아.
근데 말은, 망이 실체가 아니라니깐(the web is not an entity). 다시 말해보면, 망은 닫혀-있는(close-in), 스스로-담긴(self-contained) 물체가 아니라고, 물체와 병치(juxtaposed) 또는 병합(conjoined) 있다고. 이건 오히려 (strands)으로 묶인 다발(bundle)이나 조직(tissue) 되려나, 단단히 연결된. 다른 묶음의 다른 가닥과 엉켜있는 느슨한 (loose ends) 있는거지. 가지나 줄기에 붙어있는 , 그게 전부가 아니라, 복잡한 지하 뿌리 시스템(complex underground root systems) 중에 끝단 일부가 눈에 보이는거지(visible tip). 모든 식물도 선들의 살아있는 조직(living tissue of lines)인거지. 그건, 나도 그렇고. 몸은 ―다리 여러 개로 망을 타고 다니며 넓은 환경으로 활보하는― 생명의 가닥들(threads) 함께 엮어서 형성되었다고 . 나에게 세계는 쪼가리나 조각들의 배치(assemblage) 아니라, 가닥(threads) 경로(pathways) 뒤엉킨 거야. 니가 말하는 네트워크(network) 구분하고자, 내가 말하는 메쉬워크(meshwork)라고 부를께(그림 7-3 참조).
, 내가 주장하려는 , 행동(action) ―네트워크 주위에 분포된― 행위(agency) 결과가 아니라, ―메쉬워크의 선들을 따라 전도되는― 힘들(forces) 상호작용(interplay)에서 창발(emerge)된다는거야."

 

ANT SPIDER 바닥에서 대화를 나눌 , 머리 공중에선(in the air)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ANT(네트워크 구축가) 이질적인 이질적인 물체의 모음(assortment) 인식, 그리고 SPIDER( 직조가) 서로 뒤엉킨 가닥의 조직(tissue) 인식 간에 논쟁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쌍의 나비가 우아한 (courtly dance) 빠져 있었다.

"봐바(observe)"

ANT 말했다.

"플러팅 . 나비는 날아다니는 동안 서로의 움직임에 반응하잖아. 저걸 '행위자의 (dace of agency)'[3]이라고 부를 있겠네. 나비들은 공중에서 상호작용하고, 우리 행동-개미는 위에서 콜라보레이션의 아크로바틱을 하는거지."

 

 

그림 7-3. 메쉬워크(거미, , 가지), 그리고 거미와 관계 사이 네트워크

 

"그런데 저 공중 자체(air itself)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어?"
SPIDER가 물었다.

"나비의 비행은 날갯짓으로 만들어진 기류(currents)와 소용돌이(vortices)로 가능하잖아. 또 봐바. 강에 있는 물고기는 꼬리랑 지느러미를 흔들며 물 속에서 맴돌이(eddies)와 소용돌이(vortices)를 만드니깐 그렇게 빨리 헤엄치는거잖아. [4] 근데 앞의 경우, 나비들이 서로 춤을 추는 중에 공기가 네트워크에 참여(participant)한다는게 말이 될까? 아니면 뒤의 경우, 물고기가 모래톱에서 다른 물고기와 춤을 추는걸 물과 함께 춘다고 말하면 전혀 의미없는 게 되잖아. 공기나 물은 행동하는 실체(entities that act)가 아니잖아. 그건 생물이 물입하는 물질 매개(material media)라고. 흐름, 힘, 압력의 증감(gradient)에 따라 빠져들고 경험되는거라고. 사실, 난다는 건 나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공중-속-나비(butterfly-in-air)여서 가능한거고, 헤엄친다는 건 물고기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물-속-물고기(fish-in-water)여서 가능한거잖아. 그렇다고 나비를 공중-비행 혼종으로 만들거나, 물고기를 물고기-물 홍종으로 만든다고 하면, 되게 이상하지 않아? 단지 사물들이 상호작용하려면, 단순히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매개의 흐름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힘의 장(force field) 안에 잠겨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 되는 거잖아. 이런 흐름에서 잘라내면 ―물체(object)로 환원하면― 얘네들은 죽을거야(dead). 힘들의 선을 잘라 메쉬워크를 사멸시 수많은 조각으로 쪼개버리면, 너는 ―암만 '행위(agency)' 마법 가루를 파편 주위에 뿌려봤자― 그걸 다시 삶으로 되돌리(bring it back to life) 흉내도 낼꺼야. 살아나려면(if it is to live), 나비는 공중으로 물고기는 물로 돌려보내야하는거지."

 

SPIDER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나는 거미줄로 돌아가야해. 나비에게 공중, 물고기에게 얘기를 했듯이, 내겐 (web)이야.  나는 날지도 못하고 헤엄도 치지만, 망을 직조해서 끈끈함(stickiness), 인장력(tensil strength) 같은 성질을 이용해 위를 돌아다니면서 파리를 잡을 있거든. 망에 달라붙은 파리랑 타란텔라 춤을 출거야, 망이랑은 춤을 없잖아. 그건 내가 상호작용하는 물체가 아니라, 상호작용 가능성에 근간이 되는 기반(ground)인거지. 짧게 말하면, 망은 행위의 중요한 조건(very condition of my ageency)인거지. 자체로는 행위자(agent) 아니야."

 

ANT 끼어들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되게 심한 거미중심주의(arachnocentric) 관점 아닐까. 주장에 따르면, 니가 파리라면 너도 행위자라고 주장할 있고, 니가 나처럼 개미라면 행위자라고 주장할 있는거잖아. 행위자가 되려면 다리가 있어야해? 6? 8? 100? 지네(centipede) 정도면 우리가 나눈 상호 논의(mutual acquaintance) 맞으려나. 그렇게 많은 다리를 갖고 있으면, 진짜 강력한 행위자임에 틀림없을거야."

 

"농담도 , ANT"

SPIDER 대답했다.

"근데, 행위자가 되려면 다리가 있어야하나? 여기에 답은 해보고 싶네. 최소 4! -(four-footed) 친구들인 생쥐(rat) 들쥐(mouse) 행위자로 인정할 준비는 되어 있는데, 두발(bipedal) 인간들이랑은 선을 그을거야(draw the line). 너는 개미과(formicoid) 관점에서 행위자고, 나는 거미강(arachnid) 관점에서 행위자이지만, 다른 모든 창조물과 자신을 구별하는 인간 관점에서 어떻게 행위자로 움직일 있을지는 전혀 모르겠어. 번은, 걔네들의 소위 '교실(classroom)' 천장에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매달려 있었는데, 우연히 인간 철학자가 자기 논의를 강연하는 들은 적이 있어."

 

사람은 이렇게 말하더라. "나는 인간 주체(human subject)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인 알죠(I know, therefore I am).  나는 알죠 나임을, 왜냐하면  나는 정신(mind) 갖고 있거든요. 그게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죠. 나를 행동하게 해주죠. 물론 나도 다른 창조물처럼 신체를 갖고 있죠. 거미도 개미도 모두 신체를 갖고 있지만, 이상은 없잖아요. 비록 우리가 움직임(behavior) 관찰하지만, 그들은 행동(act) 없죠. 그러나 나는 신체 뿐이 아닙니다. 신체 이상(plus)이죠. [6] 행동 범위(scope) 함께― 나의 인간성(humanity) 규정되는 , 나의 신체 이상(more)이라는 거죠." …

 

"글쎄"

나는 말끝을 흐리면서 말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당신이 인간성의 본질이 거기에 있었다고 상상한다면, 그건 확실히 다신 인간이 하는 일에서 발견되진 않을거요. 당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지능, 세상에 실행되기 전에 미리 머릿속으로 일을 처리하는 인지 능력(cognitive capacity) 관한 것이죠. 하지만 지능(intelligence) 행위(agency) 전혀 다른 것이죠. 둘을 혼동하는 심각한 실수입니다."

그리고 마비되어 굶어죽은 자신을 발견한 지네의 정령(apocryphal centipede)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떻게 백개의 다리를 움직이고 조정할 있냐고 물었을 말이다. 그는 생각없이 행동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리는 냅두고 스스로를 돌보러면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일에 대해 지적으로 생각하기를 멈추자마자 이상 행동(act) 없었다. 그의 행위(agency) 좌절되었다. 일반적으로 사전에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아무 것도 없는 창조물은 실제로 전혀 아무것도 수가 없다."

 

"우리는 인간의 오만과 어리석음을 알고 있잖아."

ANT 대답하며 웃었다.

"특히 그들 중에 생각하는 말고는 다른 일이 없는 철학자들 말이야. 만약 그들을 줄여놓고 우리 둥지 곳에서 일을 시켜본다면, 뭔가 한두가지라도 배우겠지! 이미 말했듯이, 그들은 행위가 개미나 -개미에게만 배타적인 아니라, 그들 협력(collaboration) 의해 형성된 네트워크 전체에 분포되어 있다는 발견하게 될거야.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개미/-개미 이분법(dichotomy) 어느 쪽도 다른 쪽보다 특권을 누리지 않는, 대칭의 원리(principle of symmetry) 세워놓을 필요가 있지."

 

SPIDER 답했다.

"나는 개미나 거미, 인간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특별한 특권을 부여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는 니가 말한 대칭의 원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 모래 알갱이와 죽은 잎사귀, 진딧물과 나비, 심지어 인간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당신의 포괄적인 '-개미' 범주에 문제가 있다고! 행위의 개념(concept of agency) 비활성 물질(inert matter) 달리, 살아있는 유기체(living organism) 실제 복잡성(real complexity) 감안해야 .
  알과 진딧물을 저울 위에 놓고, 그것들이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거야말로 터무니없는 일이잖아. 그들의 몸무게는 같을지 몰라도, 복잡성 면에서는 극과 극이잖아. 중요한 차이점은 진딧물, 동물이 신경계를 가지고 있다는 건데, 이건 너나 나도 마찬가지잖아.
여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잎사귀처럼, 나도 거미줄 가운데 웅크리고 앉아있으면 몸이 떨려. 사소한 움직이나 진동에도 민감하단 말이야. 그런데 나와 잎사귀의 차이점은 내가 하는 모든 움직임이 나의 주의(attention) 끄는 움직임이기도 하다는 거야.

그걸 행동(action) 사례로 자격을 부여하는 , 운동(movement) 주의력(attentiveness)이고, 같은 방식으로 나를 행위자(agent) 자격을 부여하는거지. 다르게 표현해보면, 행동의 본질은 (우리 인간 철학자가 주장했던 거처럼) 앞서 생각한 것에 있는 아니라, 신체 운동과 인식의 밀접한 결합(close coupling of bodily movement and perception) 있는거지. 그러나 그건 모든 행동이 정도에 따라 숙련(skilled)되어 있다는 말하는 거기도 하고. 숙련된 수행자(skilled practitioner) 행동의 흐름에 방해받지 않고 지각된 환경의 동요에 대해 자신의 운동을 지속적으로 조정할 있는 자이지. 그런데 그런 숙련은 이미 만들어진 (ready-made) 아니잖아. 오히려 환경 안에서 유기체 자신의 성장(growth) 발전(development) 일부이자 부분으로 발달(develops)하는 거지.

행위는 숙련을 요구하기에, 숙련은 발전하며 생겨나기에, 발전의 과정(process of development) 행위의 수행(exercise of agency) 필수 조건(sine qua non)이라는 거지. 성장하지도 발전하지도 않는 물체에 행위를 부여한다는 , 결과적으로 어떤 숙련도 실현하지 못하는 거고, 그걸 운동과 인식이 연관이라 보는 말도 안되는 거잖아.

 

말을 듣고 있노라니, 개미는 전혀 감응이 없나보다.

"글쎄, 그렇게 얘기한다는거지? 그치?"

그가 신랄하게 말했다.

"너는 SPIDER이고, 입장은 '숙련된 수행엔 발전적으로 구체화된 반응이 관련된다(Skilled Practice Involves Developmentally Embodied Responsiveness)' 거잖아.
의견 고마워. 진짜로 금으로 무게 만큼 가치가 있네. ( 진짜 가벼운 창조물이어서 말하는거야.)
그런데 나는 ANT. 나는 행동자-네트워크-이론(Actor-Network Theory) 약자잖아. 내가 절지동물 중에 거탑(THE TOWER) 알려진 아무것도 아니야. [7] 철학은 니거 위에 쌓여있지."

 

"고상한(lofty) 생각의 달인(master)이시네."

거미는 피곤하게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니가 하는 말을 거의 이해할 수가 없네."

그리고는 그녀는 허둥지둥 물러났다.

 

[1]

'와이드웨어(wideware)'라는 개념은 앤디 클라크(Andy Clark)에게서 따온 것이다. 클라크는 '생물학적 유기체와 와이드웨어의 관계는 거미와 거미줄의 관계만큼이나 중요하고 친밀하다'(Clark 1998: 274)고 쓰고 있다. 다른 곳에서 미술사학자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는 거미줄의 은유를 이용하여 모든 인간이 자신의 관심의 대상을 포착(또는 포착)하는 '시각의 외피'를 묘사한다. '나는 거미줄을 치는 거미가 아니며, 거미줄에 걸린 파리도 아니다. 나는 거미줄 그 자체이며, 중심도 없고 내 자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 자신도 없다'(Elkins 1996: 75).

 

[2]

예를 들어, 사라 왓모어(Sarah Whatmore)는 '사회생활의 살아있는 공간, 수많은 상호 연결된 행위자에 의해 구성된 '사회적 삶의 살아있는(living) 공간을 연구하는 '혼종 지리학들(hybrid geographies)'를 요구한다(Whatmore 2007: 339, 강조는 본문 그대로임). 그녀는 이러한 지리학들이 '고정된 표면을 반복하는 것에서 연결점과 흐름선을 추적하는 것으로 분석적 강조점이 이동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라고 쓰고 있다(ibid.: 343). 그러나 점들을 연결하는 선들은 별개이며, 흐름선들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피어슨(Pearson)이 지적한 바와 같이(Deleuze와 Guattari 이후), '혼종은 단순히 점들의 연결을 필요로 하며, 점들 사이를 통과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지 않는다'(Pearson 1999: 197). 거미줄과 같은 선들로 구성된 살아있는 유체공간을 연구하는 것은, 점들 사이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혼종성(hybridity)이 아닌 혼합(mixture)된 지리학들을 요구한다(Mol and Law 1994: 660). 혼합의 지리학들(geographies of mixture)은 이질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리된 물질 요소들을 네트워크로 연결된 집합체로 연결하는 연결을 추적하는 것과는 별개로, 물질들을 융합(amalgamation), 증류(distillation), 응고(coagulation), 분산(dispersal)의 과정을 거쳐 물질을 따르고 물질의 용해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17장, p. 213 참조).

 

[3]

'행위의 춤(dance of agency)'이라는 개념은 과학 사회학자 앤드류 피커링(Andrew Pickering)의 연구에서 따온 것이다(Pickering 1995: 21-22).

 

[4]

앤디 클라크(Clark 1998: 272)는 이 점을 참치잡이 물고기의 예로 설명한다. 그는 '진짜 수영 기계(The real swimming machine)는 물고기, 그리고 그 물고기가 능동적으로 만들고 그 다음에 최대로 활용하는 주변 구조와 소용돌이의 적절한 맥락에 있다'고 제안한다. 이 경우 '적절한 맥락(proper context)'은 압력 구배와 힘의 선을 가진 유체 물질 매질이다. 그것은 별개의 물질 물체의 집합체가 아니다.

 

[5]

'행위(agency)'의 정신-먼지(mind-dust)에 관해서는 2장 28페이지를 참조하라.

 

[6]

문헌을 통해 SPIDER가 감청한 철학자가 스티븐 콜린스(Steven Collins 1985)임을 짐작할 수 있다.

 

[7]

이 조잡한 말장난은 SPIDER의 대화 상대를 행동자-네트워크-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의 주요 설계자 중 한 명인 부르노 라투르(Bruno Latour)의 double를 것이다(e.g., Latour 1993, 2005). 나는 그 double가 희화화화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실제 라투르는 그것이 이론이라는 것과 실제로 네트워크를 다룬다는 것을 전혀 부인할 정도로, ANT의 응용으로 전해 내려져 온 많은 것에 대해 일관성 없는 비판을 해왔기 때문이다(Latour 1999). SPIDER의 견해는, 당연히, 내 견해와 기이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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