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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부르디외는 정말 많이 인용되고 잘 알려진 학자다. 그래서 ,그를 내 글에 불러내는 일이 조심스러워질 정도이다. 아직 부르디외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지는 못 했는데, 뛰어들까 말까 고민 중이다. 바로 여러 자본의 형태들과 작동, 그리고 장의 형성과 경계에 관련된 것이다. 


내가 요즘 생각해고 있는 건 이렇다. 


1. 공동체의 경계, 또는 위험

공동체가 잘 드러나는 지점으로서 경계에 집중하는 논의들이 있다. 잘 알려진 앤서니 코언 '공동체의 상징적 구성' 역시 경계에서 그 상징이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최근에 줏어들은 걸로는 에스포지토 '면역체' 논의도 있다. 외부나 타자를 규정하고 식별하는 것, 그리고 위기나 결핍, 침입 등으로 공동체가 정의될 수도 있다는 설명은 안승택·이경묵의 논문에도 실려있다. 이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인류학자가 더 있을 것이니, 찾아봐야겠고. 이런 논의들에서 등장하는 함의가 무엇이 있을지 한 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쿨라링을 '경계의 확장'에서 본다면?

말리노프스키 '남태평양의 항해자들'과 모스의 '증여론'을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쿨라링'에 대해 대부분 교환의 방식, 그 호혜성에 대해 집중하고 있는데, 이를 경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어떻게 될까? 위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여기로 연결해보고 싶다. 그런 점에서 낸시 먼 '가와의 명성'을 좀 읽어보고 싶다. 다니엘 밀러가 소개한 내용에 따르면, 트로브리안드 쿨라링의 한 지점인 가와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은 자신들을 확장하고 싶어했다. 쿨라링 덕분에 더 넓은 우주를 만나고 가능성과 성취를 만들었을 것이며, 이는 다시 가와 내부의 명성과도 연결된다. 모스 '계절적 변이' 역시 경계의 차원에서 다시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경계와 단위를 여름/겨울마다 다르게 바꿔내는 일. 이건 어쩌면 경계의 확장일지도 모른다.


3. 사실은 네트워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나만의 관점을 하나 제시하고 싶은 건데...

네크워크를 선과 점으로 그리면 놓치는 것들이 정말 많다. 실제로 어떤 네트워크 중에는 외부로의 확장을 해내지 못하면, 망하는 경우가 많다. 네트워크의 유지를 위해서 외부로의 확장은 중요한 요인이다. 더 나아가 네트워크의 작동에 경제 행위와 문화의 역동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점과 선으로만 표현하기는 어려워진다. 인류학에서 초기 네트워크 연구를 했다가 망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거 아닐까? 그 고생스런 조사를 해서 사회적 관계를 점과 선으로 환원시키는 일에 불과하지 않았는가는 말이다. 네트워크를 X-ray로만 볼 것이 아니라, 통째로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마치 기어츠 'thick description' 마냥, 'thick network' 같은 소리이긴 한데... 


여기서 부르디외의 '장(champ)'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과천을 연구하면서, '풀뿌리 네트워크' 뿐만 아니라 '재건축 네트워크'와 '관변 네트워크'가 이 조그마한 도시에 겹쳐져서 역동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한 공간 위에 수많은 네트워크가 겹쳐지고, 서로 경합할 때도 있고, 아니면 영향을 주기도 하는 이러한 상황. 얼마 전에 세미나가 끝나고 술이 취해서 선배께 이런 얘기를 꺼냈던 부끄러운 장면이 떠올... 음.. 부르디외 역시 그 얘기를 하고 있다. 

- 관계들의 망으로 구성된 사회적인 공간, 장

- 사회는 여러 장들이 겹쳐져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 장 내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자본들(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자본 등)을 활용하여 독점을 향한 '투쟁'이 벌어지고, 이게 작동하는 원동력이다.

대충 이런 얘기인 거 같은데, 마지막에 '투쟁'은 정말 다시 봐도 와닿지가 않고, 내 입장에서는 부르디외 '자본들' 개념이 좀 더 활용도가 높아보였다. 

- 자본의 여러 형태는 다시 경제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다

- 자본의 비율에 따라서 행위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 자본은 당연히 증식을 위한 것이다

대충 이러한 점을 끌어다 봤을 때, 부르디외는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방식을 자본으로 설명하고자 했다는 건데...

그렇다면, 이 패턴을 좀 따와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주 지역의 사회적경제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방식, 분명 자본의 증식을 위한 것은 맞는데, 마르크스는 '노동착취'로 잉여자본을 만들 수 있다고 했지만, 부르디외를 잠깐 끼고 사회적경제 네트워크를 보면,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하고, 거게서 관계망을 만들면서 나오는 잉여로 자본을 증식시키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협동조합도 분명히 자본을 사용하고 자본을 증식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단지 그게 상생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나올 수 있는 기획을 한 것이고. 

원주 캠프가 탄광촌, 산촌 등으로 활동가를 보내면서 관계망을 넓혀내는 일을 어떻게 설명할까, 더 나아가 원주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서 그 안에서 상징적 구성이 되어가고 있을 때, 경계에서 만나게 되는 존재들. 독재국가, 독점시장, 사회운동 등과의 접점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이 네트워크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를 설명하고 싶은 건데. 여기다 부르디외를 직접 끌어다 쓰기는 좀 그렇고, 내 식대로 많이 고쳐야 하는 숙제가 있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위에 공동체의 경계, 쿨라링에서 호혜성 떼고 관계망 확장으로 읽기, 네트워크의 작동을 설명하기 위한 제안.. 뭐 이런 돌림길을 만든다는 건데... 

써놓고 보니, 서로 연결이 되지 않고 있다. 음... 이번 학기는 이걸로 연구계획서를 써볼 것인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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