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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아빠, 막걸리 한 잔 안 해도 돼?"

zingari.JQ 2018. 10. 2. 00:19



"아빠, 막걸리 한 잔 안 해도 돼?"

간단하게 칼국수와 수육을 시켰더니 다섯살 아들 시원이가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아버지의 첫 재를 지내고 집 앞으로 돌아온 길이었습니다.

상례를 치르는 어려운 시간 동안 가족들을 배려하는 다섯살 배기 시원이의 마음이 정말 고마워서,
엄마와 아빠는 막걸리 한 잔씩, 시원이는 물 한 잔을 두고, 할아버지 먼 길 조심히 가시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다섯 살이 되자마자, 시원이는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신 걸 계속 지켜봐왔습니다.
그리고 눈감은 시체로 또 화장한 가루가 된 할아버지의 모습도 모두 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시원이는 죽음을 이해하며 슬픔을 격려해주는 정말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니, 제가 무너지려고 할 때 시원이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루가 되어서, 작은 집으로 이사갔지?"

"그러면 영혼은 어디로 여행가는거야? 하늘나라는 어디에 있어?"

부모로서 아이에게 차근히 답해보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시원이는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을 차분히 관찰하고, 티내지 못하는 제 등을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있습니다.

아이가 있어서, 아버지 생각이 나도 쉽게 울 수가 없습니다.
대신 울음을 삼키고 아이와 대화를 더 하고, 한 번이라도 더 산책을 하려고 합니다.

저도 모르게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 덕분에 어른이 되고 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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