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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사촌동생이 왔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대선이가 이번 여름동안 한국어를 공부하고 여행도 좀 다니려고 한댄다. 5년 전에는 동생 아선이가 당시 중학생으로 왔었는데, 이젠 대학교 졸업반인 형이 한국에 왔다. 짧은 영어로 겨우겨우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내가 좀 고생이다.
  그런데 두 녀석이 같은 관심거리를 갖고 있다. 분단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학생인 아선이가 "한국전쟁이 왜 난거야? 왜 한국이 분단된거야?"라고 물어볼 때, 같이 먹던 순대국밥이 얹혔다. '이걸 어떻게 영어로 설명하나...' 대학생인 대선이와 외할아버지를 찾아뵈러 국립현충원을 걸으면서도 녀석은 가족이 황해도에서 내려온 이야기를 관심깊게 듣고 있었다.

나랑 대선이랑 서울대공원에서. 어머니가 찍어주심.


  나의 외가라고 부르른 사람들은 외할머니의 형제들과 그 자손들이다. 황해도 장단과 해주에서 내려오셨고, 외할머니의 아버지, 김태양 할아버지는 의사셨다. 일본에서 의사가 되시고, 또 다른 박사학위를 하나 더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다. 할아버지께서 쓰신 한반도의 취락구조에 대한 논문을 대선이의 어머니인 응아이모가 일본에서 찾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또 김태양 할아버지는 백범 김구와도 같은 집안이라고 알고 있다. 자금책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대선이에게 내가 알고 있는 집안 이야기를 해주다 보니깐, 점점 바닥이 들어났다.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했지만,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직전에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는 구술인터뷰를 준비한다고 늦장부리는 사이에 돌아가셨다. 가족의 이야기를 아직 제대로 담아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던 일인데...

윤계상 몸매 좋다! 연기 나쁘지 않다-


  김기덕 사단네 영화가 개봉되었다.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 불명>을 보고난 이후로 그의 영화에 관심이 많다. 그가 느끼고 표현하고픈 의미들은 그의 영화의 장면과 인물 속에, 그리고 그 행위와 관계 속에 잘 녹아들어있다. 이를 읽어낼 것이 많아서 난 그가 좋다. 더욱이 그의 무게감도 참 좋다. 무겁고 진지한 그 점이 좋다.
  일요일 저녁, 방에만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반바지에 우산 털털 끌고 영화관을 갔다. <풍산개> 영화표를 끊어놓고, 책방에 가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요즘은 어떤 책이 나왔나..'하고 둘러보다가, <백범일지>가 놓여져 있는 걸 보았다. 바로 손에 쥐어들고 책을 샀다. 모서리가 다치지 않은 책을 하나하나 골라봤더니, 맨 처음 손길이 닿은 책이 다치지 않고 깔끔했다. 그리고는 서문을 읽고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 

  영화가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
되묻는다. 나는 어느 편이어야 하나?
더 묻는다. 왜 자유롭게 오갈수가 없는가? 왜 가운데 끼어있는가?

  영화가 주는 메세지 때문에 쉽게 울 수도 없고, 털어낼 수도 없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백범일지>를 펼쳤다. 이번엔 책의  맨 마지막 '나의 소원'의 앞부분을 읽었다. 소리없이 마음이 울컥거린다. 

2010년 10월 35쇄 개정판이 나왔다.



<백범일지>의 서문에서

... 끝에 붙인 '나의 소원' 한 편은 내가 우리 민족에게 하고 싶은 말의 요령을 적은 것이다. 무릇 한 나라가 서서 한 민족이 국민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국민의 사상이 통일되지 못하여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민족의 철학에 끌리어, 사상과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하고 남을 의뢰하고 저희끼리는 추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상을 보면 더러는 로크의 철학을 믿으니 워싱턴을 서울로 옮기는 자들이요, 또 더러는 맑스-레닌-스탈린의 철학을 믿으니 이들은 모스크바를 우리의 서울로 삼자는 사람들이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우리의 서울은 될 수 없는 것이요. 또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니, 만일 그것을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예전의 동경을 우리의 서울로 하자는 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나의 소원'은 이러한 동기, 이러한 의미에서 실린 것이다...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에서

...그러므로 인류 세계에는 새로운 생활원리의 발견과 실천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담당한 천직이라고 믿는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었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말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길래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라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의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책과 영화를 떠올리면서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서로를 겨누어야 하는가?
더 생각한다. 새들은 잘도 넘어가는 저 곳을 나는 왜 못 넘어가는가?
그리고,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돌아가시면 누가 저 곳을 가고 싶어하는가?

  영화에서 삼킨 보석을 꺼내느라 배를 갈리고 죽은 인옥은 오해받고 왜곡되어 비춰지다 죽어버린 '우리만의'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김구의 소원은 정말 그만의 소원이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살아서 숨쉴 수 있는 철학일까? 당췌 워싱턴과 모스크바가 한반도에 들어와서 했던 일은 무엇일까? 서로를 겨누고 견제하면서 성장하는 사이에, '우리만의' 철학은 죽어버리고 있지 않을까?

  영화에서 남과 북을 넘나들면서 메세지를 전달하던 주인공이 결국 철조망을 넘다 죽고 말았다. 마치 말라 비틀어지고 사라져가는 그리움이자, 서로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끊어져가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 의해서 갈라진 우리가 이젠 우리 스스로 갈라지자고 말하게 된 상황에서, 이를 이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가운데 끼인 존재들. 넘나들고 픈 이유들. 과연 사라져 가는 것인가?

 다시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할까?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보다는, 살아계신 이모 할머니와 뿌리를 배우러 온 사촌동생 생각이 더 많이 난다. 삶과 생활, 가족과 그리움이 우리를 끼인 존재로 여전히 만들 수 있을까? 난 스스로 자처해서 끼인 존재가 되고 싶다. 영화에서의 죽음처럼 힘들고 괴로운 상황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게 없으면 나도 없을 것 같다. 아마 내가 어떤 맥락을 잡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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