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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뒤 시대 사이에 낀 인물들이 종종 있다. 안과 바깥 사이에 낀 인물 만큼이나, 내가 관심을 많이 갖게 된다.

영국 사회인류학의 전반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연 사람을 학부때는 '에반스-프리차드'라고 생각했다.
그 사회구조 연구를 앞서서 했다가, 갑자기 사회사 연구로 전환한 걸로 유명했으니.

박사과정에 와서는 좀 달라졌다. 에드먼드 리치가 (화산폭발이나  혜성충돌 같은 급작한 변화는 아니지만,) 그만큼 중요한 전환을 가져왔다.

누군가는 리치 ― 글럭먼, 또 누군가는 리치 ― 프리드먼, 다른 누군가는 리치 ― 레비-스트로스, 또 어떤이는 리치 ― 포르테스(심지어는 리치 ― 스트래선까지 어디서 본 듯)를 비교하며 읽는데,
이 점 자체가, 그가 여러 전환의 지점마다 발을 딛고 있다는 거 아닐까?

그가 제기한 문제들을 하나씩 열어보면 모두 저쪽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만들어냈다고 보인다. 

언젠가는 꼭 내 손 안에 쥐어보고 싶었다. 느리더라도 속도가 안 나더라도 조금이라도 정리해놓고 싶다.
(아직 대학원생일때...)


 

리치, 에드먼드(), 강대훈(), 2016, 버마 고산지대의 정치 체계: 카친족의 사회구조 연구, 황소걸음,
[Edmund LEACH, 1964(1954),
Political Systems of Highland Burma: A Study of Kachin Social Structure, Harvard University Press].

 

연속과 변화 탐구

36~37
"사회 체계의 연속성(continuity)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해보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인접한 두 사회 A와 B가 '근본적으로 사회구조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상황에서 두 사회 C와 D가 '본질적으로 사회구조가 동일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 래드클리프-브라운을 따라 사회구조라는 개념을 한 사회와 다른 사회를 비교하는 범주로 사용하는 사회인류학자들은, 사실 그 사회들이 시간의 흐름에서 내내 안정된 평형상태에 있다고 가정한다. 그렇다면 통상적인 사회학 범주를 사용하여 안정된 평형상태에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회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내 결론은 사회의 개념적 모델은 평형 체계 모델일 수밖에 없지만, 실제 사회는 절대 평형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 나는 문화적 표현(의례 표현)의 논리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불일치가 모든 사회 체계의 원할한 기능을 위해 언제나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변동 과정, 불일치와 모순으로 가득

42~43
"인류학자가 사회 체계를 기술할 때는 '사회적 현실의 모델(models of the social reality)'을 기술할 수밖에 없다. 이 모델은 '사회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인류학자의 가설을 보여준다. 따라서 모델체계의 개별 부분은 일관성 있는 전체를 구성한다. 평형상태에 있는 체계 말이다. 그렇다고 사회적 현실이 일관성 있는 전체를 구성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현실 상황은 대부분 불일치모순으로 가득하고, 이 불일치와 모순이 우리에게 사회변동 과정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동질적 사회체계라는 가정, 카친족에게 맞지 않아

112~113
"인류학의 고전적 방법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다소 자의적인 지리적 범주에 한 사회 체계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이 사회 체계 내 주민은 문화를 공유하며, 이 사회 체계는 동질적이다. 따라서 인류학자는 자신의 편의를 위해 '어떤 편리한 규모'의 한 지역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이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세부적으로 조사할 수 있다. 그는 이 조사에서 그 사회에 작동하는 조직 원리에 대한 결론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그 다음 이 결론에서 일반화를 이끌어내 하나의 총체로 간주된 그 사회의 조직을 책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카친족에게 이런 일반화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의 사회 체계는 동질적이지 않다. [...] 이 지역은 산맥과 그 사이에 위치한 계곡으로 구성되며, 이런 생태적 층위에서 샨족과 카친족은 단일한 사회 체계의 일부다. 이 주요 사회 체계에는 어떤 시점에서든 중대한 차이를 보이며 서로 의존하는 하위 체계가 있다. 그런 세 하위 체계를 이 책에서는 '', '카친 굼사', '카친 굼라오' 체계로 지칭했다. 단순히 서로 다른 정치조직 패턴인 이 하위체계는 주제곡에 대한 변주곡으로 생각할 수 있다. '카친 굼사' 조직을 한쪽으로 병행하면 샨 조직과 분간할 수 없어진다. '카친 굼사' 조직을 또 다른 방향으로 변형하면 '카친 굼라오'와 유사해진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변형은 실제 일어났고 [...] 내가 인류학자로서 특정한 카친족이나 샨족의 거주 지역을 연구할 때,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평형상태가 사실은 덧없고 불안정한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기능적 불일치

117~124
"내가 카친 고산지대라고 부르는 자의적으로 정의된 지역에서 주민은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정치조직 역시 구조적으로 다양한다. 이때 문화적 다양성이 정치조직의 구조적 다양성과 합치하지 않으며, 문화나 구조의 다양성이 생태 환경의 다양성에 정확히 부합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문화, 구조, 생태라는 세 가지 원인은 카친 고산지대에서 어떻게 연관되는가? 
대다수 에스노그라퍼나 사회인류학자들과 달리, 나는 이런 다양한 체계에 시간상으로 어떤 안정성(stability)도 없다고 가정한다. 끊임 없는 부침 속에 존재하는 사회적 총체의 순간적인 배열(momentary configuration)이 관찰될 뿐이다. 이러한 총체를 기술하기 위해서 그 체계를 안정적이고 일관된 것처럼 재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나는 2부(4~5장)에서 굼사 카친족이 자신들의 사회가 어떻게 기능한다고 생각하는지, 이 패턴이 어째서 허구일 수밖에 없는지 설명할 것이다. 3부(6~10장)에서는 1부(1~3장)에 개괄한 전체 체계의 다양한 변이형을 이해하는 데 이런 허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논의할 것이다. 
[...] 흐팔랑에서 굼사 조직의 규칙이 매끄럽게 작동하지 않지만, 흐팔랑 마을이 카친 고산지대 전체에서 특별히 비전형적이지도 않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요 논지 중 하나도 카친족의 사회조직에서는 이러한 기능적 불일치(functional inconsistency)가 본질적이라는 점이다. 
[...] 카친 고산지대의 현실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 커뮤니티에 대략 500명이 거주하고, 그 안에 9마을과 6개 방언 집단이 존재하는 상황이 무시무시할뿐더러 쓸데없이 복잡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나쁘지 않다. [...] 1939~1940년 흐팔랑 커뮤니티의 일상생활은 다양한 언어 집단이 존재하는데도 문화적으로 동질적인 하나의 실체(entity)처럼 유지되었다. 
[...] 1940년에 흐팔랑 커뮤니티는 징포어, 가우리어, 아트시어, 마루어, 리수어, 중국어를 사용하는 하위 집단을 포함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500명으로 구성되고, 이웃 샨족 마을과 접한 이 커뮤니티는 카친 고산지대의 총체적인 사회 체계에 관한 모델을 제공한다. 나는 앞 장에서 이 지역의 문화적 차이가 사회 체계의 중요한 구조적 경계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1940년에 흐팔랑 커뮤니티는 130가구로 구성된 커뮤니티였다. 주거지는 매우 분산되었고 [...] 
[...] 흐팔랑의 여러 마을 우두머리는 씨족과 인척 관계로 엮였다. 굼즈예와 마란 마을의 우두머리는 씨족 형제고, 굼즈예와 늠웨 역시 마란 씨족의 지파로 간주된다. [...] 이런 친족 네트워크는 개별 방언 집단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

 

구조적 평형 아닌,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회구조로

142~144
[...] 많은 인류학자들은 신화를 '사회적으로 승인된 행동의 근거(sanction for socially approved behavior)'라고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여기서 다루는 신화는 '사회적 논쟁을 유지하기 위한 언어'라는 표현이 나을 것이다. 
이런 해석에는 흐팔랑 개별 집단들의 사회구조에 대한 생각이 본질적으로 모순된다는 나의 논지가 있다. 이 모순는 궁극적으로 카친족이 그들의 사회구조에 대해 진술하기 위해 채택하는 '언어'가 비과학적이라는 데서 발생한다. 사회인류학자라면 감정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추상적인 용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서로 비슷하나 구별되며 관계가 있는 두 집단, 즉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통일체로 행동하는 두 집단을 관찰한다면 이 집단을 '상보적 상동 분절체(complementary homologous segments)'라고 기술할 수 있다. 이런 전문용어는 종종 번거롭고 괴상하지만, 적절하게 정의된다면 정확하고 명료한 추상적 기술을 할 수 있다. 전문용어를 사용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을 대번에 알아챌 수 있다. 
[...] 따라서 인류학자가 '관계성(being in relation)'에 대해 말할 때, 현지인 행위자는 이를 날마다 일어나는 친족 생활이나 우정과 연계된 개념으로 상징화할 것이다. 반대로 '변별성(being distinct)'은 적대감이나 대립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표현할 것이다. 추상화된 전문용어에서는 관계성과 변별성이 동일한 사물의 두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 모든 사회집단은 집단으로 존속하기 위해 어느 순간 다른 집단과 차이를 강조하는 동시에, 이 상반되는 집단과 동맹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적대와 우애의 상보적 역할은 최근 아프리카 에스노그라피 저자들이 반복해서 강조한 것이며, 흐팔랑에 대한 내 설명에도 뚜렷이 드라나는 특징이다. 그렇지만 내 해석은 아프리카 에스노그라퍼들과 중요한 지점에서 다르다. 에반스-프리차드, 특히 포르테스에게 적대과 우애, 사회적 연대와 불화는 필연적으로 균형을 유지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조적 평형(stuctural equillibrium)을 이루는 체계를 구성한다. 그러나 내 연구에서 흐팔랑 주민이 평형을 향해 가는 체계의 일부라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그런 평형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평형이었다. 내 논지는 이런 사태가 카친 굼사 커뮤니티에서 항상 발견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흐팔랑의 모든 영향력 있는 리더는 종전의 정치적 구도가 변하기를 원했고, 더 나은 대안이 없어서 일종의 타협으로 현상 유지를 해왔다. 
아프리카 에스노그라피 자료와 이런 차이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파벌이 궁극적으로 분열 과정(process of fission)을 거쳐 해결되지만, 거기서 태어나는 새로운 사회구조는 종전의 분절체들이 다른 방식으로 배열된 것에 불과하다. 카친족의 경우 파벌은 여러 다른 방식으로 해소되지만, 가장 전형적인 방식을 보면 각 분절체의 재편성은 일어나지 않고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회구조가 나타난다."

 

구조적 연속성의 세 가지 차원

145~146
"내가 생각하기에 1940년 흐팔랑은 굼사에서 굼라오 조직으로 변해가는 과정이었다. 이런 변화가 억제된 것은 영국 식민지 행정관들이 원칙적으로 굼라오 원리에 반대하여 그 지역에서 추장제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논의를 더 전개하기 전에 구조적 연속성(structural continuity)이라는 개념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카친족이 대를 이어 이를 연속된다고 간주하는 사회적 실체는 무엇인가? 
여기서 나는 특별히 세 가지 개념이 중요하다고 본다. 첫째, 주민과 연관된 영토적 지역성(territorial locality)이라는 개념이다. 우리 사례에서 지역은 흐팔랑이라는 산등성이가 된다. 흐팔랑은 거기 어떤 친족 집단이 거주하고 어떤 집단이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는가에 무관하게 나름의 지속성이 있다. 
둘째, 마을(kahtawng) 개념이 있다. 마을 주민은 모두 같은 종족 구성원은 아니지만, 마을은 특정 종족의 구성원이 창시하고 우두머리 역시 그 종족에서 배출된다. 마을의 지리적 위치도 바뀔 수 있지만 토지에 대한 권리(즉 토지 경작권)는 마을을 창시한 종족에게 영구적으로 귀속된다. 따라서 마을 창시 관련 구전신화는 중요하게 여겨지며, 이런 이야기는 해당 사건이 최근 일어났을 때조차 부분적으로 신화적 색채를 띤다.
셋째, 앞에서 언급한 지역적 종족 분절체(localized lineage segmants), 즉 부계 종족(htinggaw) 집단이라는 개념이 있다. 앞서 보았듯 이는 소규모 집단으로, 독립된 5~6가구 이상인 경우가 거의 없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런 지역 종족들은 공적인 모든 문제에서 놀랄 만한 연대감으로 행동한다. 다음에서 나는 특정 종족의 모든 구성원은 사실상 권리와 견해가 동등한 듯, 그 종족은 종족 우두머리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화되는 듯 기술할 것이다. 이는 현실 왜곡이지만, 분석의 일차 층위에서는 무리한 시도가 아니다." 

 

굼사/굼라오, 이념적 질서 차원

157~
"우리는 커뮤니티 내 친족 구성은 지난 40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내적인 권력 구조는 급변한 것을 알 수 있다. 커뮤니티 내 우두머리들은 특정 집단과 사람들의 상대적 지위를 설명할 때 굼사 범주를 사용했는데, 특권계층과 추장 직함, 추장들의 권리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들은 마유에 대한 다마의 의무를 열정적으로 강조했고, 눔샹 의례에서 크고 화려한 희생공양을 중요시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가식에 불과했다. 커뮤니티가 귀족이나 추장, 공물 의무가 없는 굼라오 원리에 따라 조직되었다 해도 실제 생황은 지금과 거의 같았을 것이다. 이는 굼사와 굼라오의 대립이 경험적 사실 차원이라기보다 이념적 질서 차원의 차이임을 보여준다."

 

빚, '사회구조' 관계를 매개

160
"라가 노는 다음 날 그 이야기에 보충할 것이 있다면서, 늠웨족이 라가족에 진 매우 긴 빚(hka) 목록에 대해 언급했다. [...] 라가 노는 50년 전에 발생한 이러한 채무가 배상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논쟁을 위한 불쏘시개로 이런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라가족과 늠웨족 사이에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런 채무 목록을 들고 나와 마을 원로와 재판관에게 라가족에 대한 공감을 요청하리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런 논쟁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토지에 대한 권리, 서열, 인척 관계 등에 대한 카친 사회의 통념에 친숙할 거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카친족이 ''에 대해 말할 때는 사회적 삶의 전 영역과 관계된 한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다."
164~165
"나는 모든 문화적·지리적 변이에도 카친 고산지대의 카친족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일련의 의례 상징을 활용하여, 인류학자들이 '구조적' 관계라고 부르는 무언가를 드러낸다고 추론한다.
여기서 내가 구조적 관계의 의례적 기술(ritual description)과 인류학자의 과학적 기술의 본질적 차이점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다시 요약해보자.
사회인류학자들은 사회구조에 관한 학문적 이론을 정립할 때 명료한 용어를 채택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관례에 따른 과학적 절차를 통해 학문적으로 자신이 부여한 의미 외에 다른 의미가 없는 특수 용어를 발명하기도 한다. 족외혼(exogamy), 부계(patrillineage), 지위(status), 역할(role) 등이 그렇다. 인류학자는 이 용어를 활용하여 구조적 관계의 체계에 대해 자신이 의미한 대로 정확히 기술한다. 그 결과 인류학자들이 기술한 구조 체계는 언제나 정적 체계(statics system)가 된다. 
그러나 한 사회 체계의 평범한 구성원이 이 정도로 엄밀한 정신적 도구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카친족은 의례 행위를 실천하고 의례 이야기를 외워서 이런 구조적 관계를 인식한다. 그렇지만 의례를 구성하는 상징적 요소는 정확한 과학적 범주와 거리가 멀다. 상징적 구성 요소는 '의례적 의미'와 '실용적(기술적) 의미'가 있으며, 두 가지 의미 유형은 완전히 구별되지 않는다. 키친족 사회구조의 본성을 이해하려면, 인류학자로서 내가 사회구조라 부르는 것에 관해 카친족이 뭔가 말할 때 사용하는 언어 표현의 실천적 의미를 조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귀중품 다섯 개에 대한 빚이 있다'는 구절의 의례적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카친 사회에서 소유권, 빚, 부와 같은 용어의 실제적 쓰임을 알아야 한다."
210
"인류학자는 사회 체계를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에 존속하는 관계의 구조로 인식한다. 객관적으로 이런 '관계들'은 사물과 사람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말한다. 보통 '빚'으로 번역되는 카친어 흐카(hka)는 이런 사회학적 관계의 추상적 개념에 근접한 의미이다. 카친족이 빌리거나 빌려준 ''에 대하 말할 때, 그는 인류학자가 '사회구조'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227
유래와 상관 없이 엄청난 흐카가 불화의 잠재적 원인이 된다. 카친족에게 불화은 둘 다 흐카이다. 특히 이방인은 빚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채권자가 폭력을 행사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친척, 특히 인척 간의 빚은 그리 급한 문제가 아니다. 마유-다마 관계에서는 원칙적으로 상당한 빚을 그대로 두기도 한다. 이 빚은 관계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신용 보증서가 된다. 따라서 빚은 적대감과 더불어 상호 의존과 우정을 의미한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카친족의 사고에서 협력적대는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
한편 극소수를 제외하고 빚은 개인이 아니라 종족 사이에 존재한다고 간주되며, 갚지 않은 빚은 세대를 따라 이어간다. 종족 간의 주요 불화는 그것을 처음 목격한 개인의 살아 있는 동안 거의 해결된 가망이 없다.
이제 카친족의 개념과 인류학자의 사회구조 개념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해졌다. [...] A가 B에게, B가 A에게 져야 할 의무를 규정한다. 이런 공식적 의무가 적절히 이행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빚이 발생한다. 
따라서 채무 해소 수단인 흐파카(귀중품)는 사회적 의무로 규정된 통화다. [...] 카친 사회의 의무 체계에서도 어떤 의무든 흐파가를 매개로 해소할 수 있다. 비합법적 혼인의 합법화, 혈투의 종식, 토지권의 이양 등이 모두 단일한 통화(흐파가)로 가능하다. 이때 통화 단위는 직접적 교환이 불가능한 공식화된 물품이다. 
[...] 흐파가를 취득하는 것은 그 자체의 목적이 아니다. 흐파가는 사회적 지위를 조작하는 수단이며, 카친 사회의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게임에서 사용된다. [...] 이론적 체계에서 특정한 흐파가의 가치는 의례적이고 상징적이지만, 실제 카친 사회에서 흐파가는 전통적 물품의 대체물일 뿐이다. 따라서 흐파가는 그 자체로 의례적·경제적 의미가 있다. 

 

굼사/굼라오, 이념적 체계

168~169
"이 장에서는 굼사 카친 이데올로기의 범주를 기술할 것이다. 굼라오 카친 사회도 그 이데올로기를 공유하지만 각 항목을 다르게 평가한다. 예를 들어 굼사와 굼라오 사회에서 모두 추장에게 가축의 '넓적다리'를 바치는 것이 그를 주인으로 여긴다는 표시이다. 하지만 굼라오 카친 사회는 추장을 인정하지 않으며, 넓적다리도 바치지 않는다.
그 이데올로기 중 일부는 카친족과 샨족이 공유한다. [...] 
이 장에서 나는 굼사 카친 이데올로기 체계를 통합되고 일관된 여러 관념의 집합처럼 기술한다. 즉 나는 이념적 체계(ideal system)를 다루는 것이다. [...] 이 책의 근본적인 테마는 '카친족과 샨족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카친과 샨의 사회조직 차이는 모건*이 사회조직과 정치조직을 구별할 때 염두에 둔 차이에 정확히 상응한다. 카친 사회조직은 각 종족 집단의 균형 잡힌 대립에 근거한 분절적 조직이며, 사회조직은 소유권을 기반으로 한 봉건제적 유형이다. [...] 카친 체계나 샨 체계에서 지역적 집단화와 친족적 집단화에 대한 관념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카친족은 무엇보다 종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지만, 샨족은 출생지를 중요시한다. [...] 샨족의 '교역'은 주로 서구인이 이해하는 교역―이윤을 얻기 위해 통상 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물물교환하는 것인 데 반해, 카친족의 '교역'은 대부분 통상 경제적 가치가 전혀 없는 재화를 대상으로 한다.

*MORGAN, L.H., 1877, Ancient Society, London, 2부 2장.
"인류의 경험이 발전하면서 두 통치 치계가 등장했는데 [...] 첫 번째이자 가장 고대의 체계는 씨족 집단과 부족에 근거한 사회조직이다. 두 번째이자 시기적으로 최근에 등장한 체계는 정치조직으로 영토와 소유권을 기반으로 한다."
234
인류학적 견지에서 카친 사회가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분절적이면서 계층화된 사회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영국 사회인류학계가 논의한 대다수 종족 체계에서 종족 분절화는 지위 서열의 수직적 분화가 아니라 '수평적 대립'을 야기한다고 알려졌다. 포르테스와 에반스-프리차드가 아프리카 부족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제안한 흥미로운 정치 체계의 지형도가 카친 굼사 사회에 적용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레이먼드 퍼스가 기술한 타코피아인**은 계급 위계와 관련해 '순수한' 종족 체계라고 불릴 만한 것이 있었다. 하지만 퍼스가 기술한 사회생활의 전체 규모가 미세한 수준이라, 카친 사회와 비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나는 전 세계에 카친 굼사 유형 사회가 많지만, 아직 사회인류학자들이 충분히 주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도 문제를 명료하게 진술하기 쉽지 않다. 
[...] 우리는 앞선 항목에서 종족 분절체의 특성과 그들의 지위 관계에 주목했다. 이제는 이 지위 관계가 카친족이 자신들의 사회가 거의 카스트 사회처럼 엄격히 계층화되었다고 생각하는 관념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정직하게 말해서 계급 차에 관한 카친 사회의 굼사 이론은 카친족의 실천과 거의 완벽하게 불일치한다. 그렇다면 카친족의 그 이론은 무엇이며, 이론과 실제의 불일치가 전체 사회구조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자.

* Fortes, M., and Evans-Pritchard, E.E.(eds.), 1940, African Political System, London, introduction. 남부 반투 종족은 종종 서열화된다. 
** Firth, R., 1936, We, the Tikopia, London, 6장.  
244
이런 구조적 이념의 불일치는 부계 거주의 규칙, 말자상속이 원칙과 관련이 있다. 부계 거주의 이념은 계끕이 전체 종족 차원의 속성이라는 관념과 부합한다. 종족은 특정 장소에 거주하며, 그 장소와 결부된 특수한 서열 지위를 보유한 집단이다. 말자상속은 이런 원칙을 정확히 가로지르는데, 여기에 내포된 가정은 막내아들이 집에 남은 가문의 계승자이며, 형들은 다른 곳에서 운을 시험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존재라는 것이다. 형들이 집에 머무른다면 참기 힘든 심리적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 카친족의 전형적인 질투 상황은 형과 막냇동생의 것이다. 
246
종족 분열 과정은 동시에 계급위계를 오르내리는 사회이동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개인이 거주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후손의 계급적 지위에 영향을 미친다. 이 부분은 나의 전체 논지에서 중요하다.
278~279
굼사 카친족은 자신들의 사회에 엄격하게 구획된 권위 체계가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추장은 계급 위계의 정점에 있는 군주로, 즉 카스트를 방불케 하는 엄격한 규칙에 따라 다른 계급과 구별된 존재로 간주된다. 
[...] 내가 보기에 실제 카친 사회는 고정된 계급과 직위가 있는 경직된 위계 사회가 아니라 늘 일정한, 때로는 급격한 사회적 이동성을 갖춘 사회이다. 이런 이동성은 다음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통해 성취한다. 존경받지 못하는 낮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노력해서 높은 권위를 행사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혁명가가 되어 종전의 고위 직위에 내재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이제부터 우리가 고찰할 굼사와 굼라오 조직의 본질적인 차이이다.

 

구조적 가변성

283~284
서구 세계에서 군주제공화제의 원리는 상충하는 통치 이론으로 여기며, 군주제의 사회구조와 공회제의 사회구조는 다른 유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혹은 그 반대로 바뀔 때 사회구조가 하루아침에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크롬웰과 그 아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이들의 기능은 왕이었던 찰스 1세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 미국 헌법의 평자들은 미국 대통령의 역할이 조지 3세의 화석화된 버전이라고 말한다. 스탈린조차 구러시아 차르와 비슷하게 보인 때가 있었다.
다시 말해 군주제와 공화제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이론상의 것이다. 현실에서 두 체계는 때로 매우 비슷할 수가 있다. 우리가 이념적 모델(ideal model)에 초점을 맞춘다면 여기서 상반된 두 사회구조를 다룬다고 말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면, 평등주의적 공화제나 권위주의적 군주제는 끊임없이 유동하는 전체 체계 내의 상반된 두 유형에 불과하다.  
[...] 카친 징포어에서 이 대조는 굼사와 굼라오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 간단히 말하면 굼사 체계는 세습되는 귀족 계층의 일원인 추장에 의해 통치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굼라오 체계는 세습되는 모든 계급 차라는 개념을 부정한다. 
굼사 구성원은 굼라오 구성원을 합법적인 주인에게 대항해 봉기를 일으킨 평민 노예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굼라오 구성원은 굼사 구성원을 폭군이자 속물로 여긴다. 
카친 관념에서 두 용어는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두 조직 양식을 의미하지만, 둘 다 우리가 카친적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문화적 특질과 어우러진다. 같은 씨족의 두 종족에서도 하나는 굼사, 하나는 굼라오일 수 있다. 굼사와 굼라오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며, 신화적·역사적 시간 속에서 굼사 커뮤니티가 굼라오 커뮤니티로 혹은 그 반대로 전환되기도 했다. 
두 개념에 깃든 관념의 대립성은 적대감의 상징처럼 사용된다. 인접한 지역에 거주하는 굼사와 굼라오는 서로 전통적인 불화 상대로 여기며, '굼라오의 기원 이야기'를 그런 분화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다. 따라서 인류학자는 정보 제공자가 굼사냐 굼라오냐에 따라 라이벌 체계의 미덕과 악덕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286
굼라오라는 용어가 영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도 훨씬 전인 1828년이다. 콸루 마 놩은 이 문제를 냉철하게 진단한다. 그는 굼라오 운동의 기원을 신화적 시간인 300~400년 전으로 본다. 
290~291
따라서 굼사-굼라오를 구분하는 핵심은 한 종족이 분절될 때 생겨난 두 종족이 동등한 지위가 되느냐, 한 종족이 다른 종족에게 예속되느냐에 달렸다.
[...] 굼사의 이상적 질서는 상호 연관된 종족의 네트워크로 구성되지만, 한편으로 이는 서열이 매겨진 종족의 네트워크이다. 종족 분절화가 진행되면 서열의 원리와 친족의 원리 중 하나를 우선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서열의 원리에는 비대칭적 관계가 함축되었다. 우두머리는 하급자에게 호혜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노동력을 갈취할 수 있다. 한편 친족의 원리에는 대칭적 관계가 함축되어 있다. 추장과 추종자의 마유―다마(인척) 혹은 흐푸―나우(종족 형제) 관계 역시 추종자의 일방적 의무를 전제하지만, 추장도 추종자에게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굼사 체계의 취약점은 강력한 추장일수록 추종자와 친족 관계를 부인하고, 그들을 노예(mayam)처럼 취급하려는 유혹을 받는다는 것이다. 굼라오 시각에서 이런 상황은 반란을 일으킬 정당한 이유가 된다.
굼라오 체계 역시 모순으로 가득하다. 이론적으로 굼라오 체계에는 추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종족은 서열이 같으며, 형제 중 아무도 의례적 측면에서 다른 형제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굼라오 마유와 다마의 서열은 같으며, 부계 교차 사촌혼(고모의 딸과 결혼)을 금지해서도 안 된다. 이 때문에 징포어를 쓴느 굼라오는 언어적으로 마유와 다마 친족 범주를 구분하지만, 정치 체계에서 그런 구분을 하지 말아야 하는 역설에 처한다. 
나의 일반 논지는 분석적 차원에서 굼사와 굼라오 체계를 별개의 사회구조 패턴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지만, 현실 차원에서 두 유형은 언제나 연계된다는 점이다. 두 체계 모두 어떤 의미에서 구조적 결함이 있다. 굼사 정치체는 내부에서 반란을 야기하는 요소를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면 굼라오 질서가 생겨난다. 한편 굼라오 켜뮤니티는 밀집된 논처럼 고정된 영토 주변에 모여 살지 않는 한, 개별 종족을 평등한 지위로 묶어둘 수단이 없다. 그렇게 되면 전체 체계는 와해되거나, 종족 집단 간 지위차가 생겨서 굼사 패턴이 되살아난다. 
사회변동의 순환적 이론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기 전에, 이념적 체계로서 굼사와 굼라오는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사회 변동, 역사적 과정

321
내가 보기에 모든 인류학자가 직면한 주요 어려움은 에스노그라피 사실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고백하자면, 동료 학자들의 책을 읽을 때 종종 나는 잡다한 사실 때문에 따분하다. 향후 내가 폴리네시아나 가나 북부 지역을 방문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티코피아인이나 탈렌시족의 특이한 관습을 읽으면서도 아무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퍼스나 포르테스 교수의 책을 읽는 건, 잡다한 사실이 흥미롭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실 너머의 원리에서 뭔가 배우기 위해서다.
321~322
카친 사회에서
굼라오 유형 커뮤니티는 굼사 유형의 특징에서 발전시키려는 경향이 있고,
굼사 유형 커뮤니티는 굼라오 원리에 따라 조직되는 하위 집단으로 분절되려는 경향이 있다.
[...] 사회변동에 관한 모든 이론은 역사적 과정에 대한 이론이어야 한다.
나는 오늘날 특정한 카친 마을의 조직을 바꾸는 몇몇 ''이 작동한다고 생각하며,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이 작동했다고 주장한다. 
[...] 이 장에서 나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특정한 순간에 형성된 굼사와 굼라오 체계의 불안정성을 유발하는 ''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카친 지역의 역사가 나의 해석과 상충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323~324
나는 어떤 의미에서든 특정 카친 마을의 향후 발전 과정이 결정되었다거나 예측 가능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지속적으로 가능하고 옳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고 생각한다. [...] 나는 사회변동 과정에서 ''이나 원인을 엄격하게 제한된 의미에서 결정 인자라고 간주한다. 
사회변동에 대한 이론을 구축할 때 중요한 변수로 취급할 공통 변수가 많다. 나는 세 가지 공통 변수만 고려할 것이다.
물리적 환경이나 생태 ―나는 이것을 기본적인 생계 수단을 제공하는 자원과 생산 수단의 다양성으로 이해한다.
② 정치적 환경(정치적 역사) ―사회란 어떻게 정의하든 언제나 그 자체가 정치조직 단위이며, 동시에 언제나 더 큰 사회의 분절체, 즉 규모가 더 큰 정치 체계의 일부이다. 나는 특정한 정치 단위의 안정성은 언제나 그 정치 단위가 일부인, 더 커다란 다음 층위 정치 체계의 구조와 권력 분포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고 간주한다.
인간 요소 ―부분적으로 모든 역사적 이야기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을 그들이 처한 환경의 산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 야망과 매력의 자의적 성격 역시 모든 사회변동 분석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유―다마 ... 샨 ∽ 굼사 vs 굼라오

348
오늘날 카친 사회구조의 핵심적인 변별 원리는 마유―다마 혼인 체계다.
352
나는 흐캄티 롱 지역에서 발견된 굼사 조직이 샨족 정치 질서를 모방한 것이라고 본다.
355
샨 국가의 왕은 주인으로서 자기 커뮤니티를 직접 통치할 수 있다.
카친 추장―샨 왕만큼 강력한―은 넓은 지역에 흩어진 마을을 통치해야 한다.
샨족은 주민이 모두 토지에 묶여 있다. 논 자체가 투자된 자본인 셈이다.
356
역설적으로 마유―다마 관계는 그 자체로 샨족의 정치 관념과 대립된다.
이론적으로 샨 왕의 지위는 절대적으로 우월한 지도자, 즉 신성왕이다. 그는 지위가 동등한 다른 왕 가문에서 정실부인을 취하고, 공물로 바쳐진 신분이 낮은 여자를 첩으로 삼는다. 첩은 봉건제적 가신이 자기 영토를 위해 바치는 지대로 간주할 수 있다.
카친 추장과 '가신'의 관계는 훨씬 더 변덕스럽다. 그가 받는 공물은 대개 형식적인 공물('넓적다리' 같은)이다. 그가 군주로서 진짜 재화를 원한다면 그 대가로 여자를 내줘야 한다.
이런 역설이 굼사 체계의 붕괴를 가져온다.
굼라오 반란을 정당화하는 구전신화는 '그럴 권리가 없는데도 자기 친척을 평민처럼 취급하며, 친척에게도 공물과 노동력, 그 밖의 것을 바치라'는 추장에 항거하는 반란을 이야기한다.
357
[...] 위력적인 카친 굼사 추장은 친족 관계가 아닌 추종자, 즉 '노예(mayam)'에게 의존하고 친족인 가신에 대한 의무는 무시하려 한다. 여기에 성공하면 그는 샨 왕과 비슷한 지위까지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실패하면 그의 종족 친척과 다마 친족이 굼라오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혼인이 정치적 지위를 표현하는 데 활용되는 곳에서 혼인 규칙도 비대칭적일 것이다. A 종족이 B 종족에게 아내를 주면 A 종족이 B 종족의 주인이 되고, B 종족은 A 종족에게 다시 아내를 증여할 수 없다. 따라서 모계 교차 사촌혼은 계급적으로 위계화된 부계 종족 체계와 연관 관계가 있다. 
여기서 신부 증여 집단(마유)가 신부 수령 집단(다마)보다 서열이 높다는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계급 차이가 표현되는 한, 혼인에서는 마유와 다마라는 두 배타적 주체밖에 없으므로 그중 하나는 다른 한 쪽보다 서열이 높아야 한다.
[...] 카친 이데올로기에서 마유는 다마보다 서열이 높다. 앞서 말했듯이 이 점은 카친족의 소유 관념과도 얽혀 있다. 카친족의 마유―다마 체계는 샨족이 계급 차이 개념을 수용하면서 자동적으로 생긴 것으로 보인다.
굼사 카친 체계와 샨 정치 체계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이렇다.
카친족은 지주와 가신의 관계가 마유―다마라는 인척 관계에서 '표현'되지만,
샨족에게 지주는 개념적으로 절대군주이며 가신은 그의 부하이다.
그러면 카친 굼사 추장이 자신을 샨 왕 수준까지 높이려는 과정에서, 자기 가신을 사위(다마)의 지위에서 하인이나 노예(마얌)의 지위로 끌어내리는 일이 발생한다. 
361
굼사 체계에서 굼라오 분절체로의 붕괴는 특정한 개인, 리더, 혁명가에 의해 촉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개인들의 특성은 무엇인가?
365~366
나는 앞서 굼라오 반란이 일어나기 좋은 상황은 카친 추장이 샨 왕의 지위에 가장 가까이 갔을 때라고 말했다. 이런 논지에서 도출되는 사실은, 추장에게 공물을 바치거나 마유―다마 체계에 내재된 계급 차이를 거부하는 굼라오 반란자는 추장의 행동을 모방할 뿐이라는 점이다. 정치적 순환 주기에서 굼라오 반란은 굼사 추장이 사회 체계의 공식 규범을 침해한 순간까지 발생한다.
따라서 나는 굼라오 반란의 주동자는 카친 사회 규범에서 결코 일탈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반란을 통해 맞서게 된 추장과 같은 인물이며, 의례적 규범보다 경제적 부에 비중을 두어 권력을 좇는 야심가다.
[...] 굼라오 리더의 신화적 원형은 출생 시 서열에 구속받지 않았다면 충분히 추장이 될 수 있는 야심과 능력을 갖춘 하급 귀족 계층이다. 신화는 인간에 대한 모사다. 

 

의례 / 신화, 일관성 대신 모순에 포커스

368
나는 의례에서 사회구조가 '재현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다루는 사회구조가 불안정하다면 이런 불안정성도 의례 체계에서 '재현되어야' 한다. 
[...] 나는 대다수 영국 사회인류학자들이 신화를 말리노프스키의 유명한 논문 "Myth in Primitive Psychology"에서 채택한 것과 동일한 시각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신화와 전통은 의례 행위의 근거나 헌장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의례 행위는 사회구조를 반영하지만, 신화는 드라마틱한 요약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화와 의례는 상호 보완적이며, 서로 영속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 원칙에서는 한 문화의 신화들이 일관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지만, 말리노프스키의 다른 기능주의 이론에 집착하다보면 그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말리노프스키의 이론에 따르면 문화의 다양한 측면은 필연적으로 통합되어 일관성 있는 총체를 이룬다. 따라서 주민의 신화 역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문화, 하나의 구조 체계, 하나의 상호 일관된 신화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369
내가 보기에 이런 일관성을 가정할 필요가 없다. 사회인류학자들은 신화 체계에 내적 일관성이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신화도 일종의 역사로 바라보는 민족학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편견 때문에 신화를 분석할 때 까탈을 부려, 동일한 이야기의 '옳은' 버전과 '그릇된' 버전을 구분한다. 
카친 신화에 내재한 모순과 불일치를 제거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는 그들 신화에 근본적인 요소이다. 두 라이벌 집단이 동일한 이야기에 대해 각자 신화가 있을 때, 어떤 버전도 다른 버전보다 '옳지' 않다. 나는 이런 모순이 획일성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372
신화의 기저에 결국 동일한 종류의 역사적 사실이 존재함을 근거로 들어 신화 내의 모순을 제거한다면, 전통적 법률과 관습 내의 모순 역시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러면 남는 것은 경직되고 단순한 사회의 상이다. 우리가 카친 신화를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이나 규칙 체계의 표현이 아니라 관념 체계의 표현이라고 간주한다면, 다양한 구전신화에서 내적 일관성을 찾아야 할 필요성이 사라진다. 동일한 이야기의 라이벌 버전 간 모순 역시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384~385
신화에 대한 통상적인 인류학적 정의는 카친족에 관한 부적절한 범주다. 
[...] 따라서 나는 합의된 서사 구조의 존재가 사회적 연대평형의 지표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견해는 대다수 인류학자들이 최근까지 유지한 견해와 상충된다. 말리노프스키 이후 신화는 사회적 행위를 재가하며, 특장 사회 체계 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권리를 승인한다는 견해는 흔한 것이 되었다. 어떤 사회 체계라도 ―얼마나 안정되고 균형 잡혔든 간에― 대립되는 파벌을 포함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집단의 특정한 권리를 비호하는 다양한 신화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말리노프스키도 이를 알았고, 다른 이들 ―특히 포르테스와 퍼스― 역시 단호하게 이 점을 강조했다. 내가 정확히 이해했다면, 이들의 논지는 한 사회 체계에 지역적 긴장이나 대립이 있어도 전체 구조는 어떻게든 평형을 유지하며, 한 집단의 주장은 다른 집단의 주장과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포르테스의 분석에는 탈렌시 사회의 라이벌 집단인 나무스 족과 탈리스족이 의례 표현에 공통 언어를 쓴다는 사실이 전체 체계의 총체적 안정성에 대한 증거처럼 제시된다.
나의 주장은 이와 정확히 반대다. 신화와 의례는 당사자들의 권리와 지위에 대한 주장이 담긴다는 의미에서 기호의 언어이지만, 이는 논쟁의 언어지 화합의 합창곡이 아니다. 의례가 때로 통합의 메커니즘이라면, 신화는 때로 분열의 매커니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런 견해를 정당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사회구조에 관한 현재 인류학적 개념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

387
1장에서 밝힌 나의 문제의식은 특정한 구조들이 어떻게 다양한 문화적 해석을 취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구조들이 어떻게 동일한 문화적 상징을 통해 재현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 카친 고산지대 주민은 문화적으로 동질적이지 않다. 다양한 생태 환경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 문화의 의례적 측면에서 카친 고산지대 주민은 상대적으로 동질적이다. 카친 주민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의복을 입고, 다른 가옥에 산다. 그러나 상대의 의례를 이해한다. 의례 행위란 사회적 지위에 대해 '뭔가 말하는' 방식이며, 이렇듯 뭔가 표현하는 '언어'는 카친 고산지대 전역에서 공통적이다. 
389~390
[...] 이는 뒤르켐의 의미에서 거의 완벽한 의례의 표본이다. 물소를 죽이는 것부터 종이 태운 물을 마시는 것, 한 접시에서 음식을 먹는 것까지 모든 세부 사항이 사회적 연대 행위를 나타내는 것 같다. [...] 그러나 이 행사에 참석한 이들을 '한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민족학 기준에서 그렇지 않지만, 이 책의 기준으로 보면 그럴 것이다. 이런 의례가 정말 사회적 '통합' '연대' 혹은 '평등'을 나타내는가?
[...] 여기서는 뚜렷하고 지속적인 사회적 연대를 재현한다는 뒤르켐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이런 의례 행위가 벌어지는 순간에만 연대가 존재할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의례 행위가 끝나도 존속되는 연대감을 추론해낼 수 없다. 
[...] 즉, 의례의 배후에는 실제 국가의 정치구조가 아니라 이념상 국가의 '가상적' 정치 구조가 있었다. 이 '가상의' 체계는 문화적 차이 속에 뚜렷하게 표현되는 정치적 사실의 범주와 구별되어야 한다.

 

문화 단위?

390~392
'미얀마 북부 맥락에서는 무엇이 한 문화, 또는 한 부족을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이 일반적인 민족학적 통념이 절망적일 정도로 부적절했음을 드러낸다. [...]
오늘날 많은 인류학적 현지조사는 문화적 경계와 구조적 현상의 불일치가 뚜렷한 지역에서 행해진다. 나는 단위 문화 개념을 통상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면, 이런 불일치의 의미가 흐려진다고 생각한다. 
[...] 머독은 문화비교를 목적으로 츠와나 주민을 한 사회, 한 문화로 다룬다.* 나는 여기서 문화 단위라는 개념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Murdock, 1949: x, 353, 374.  

 

사료를 어떻게 다룰 지 몰랐던

392
[...] 이 외에도, 문화적 차이를 가로지르는 사회과정 메커니즘의 한 유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런 시도는 쉬운 게 아니었다. 나도 그 구성원 중 하나인 현 세대 영국 인류학자들은 사회조직의 이해는 역사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자랑스럽게 펼쳐왔다. 이 주장은 역사가 실제로 (사회조직 이해와) 무관하다는 게 아니라, 이를 종이에 기술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우리 기능주의 인류학자들은 원칙적으로 진정한 '반역사주의'자가 아니다. 역사적 자료를 우리의 개념 틀에 어떻게 넣을지 모를 뿐이다. 
영국 사회인류학계에서 확고한 평형 이론의 옹호자 중 하나인 에반스-프리차드는 인류학적 분석에 역사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두 입장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지 설명하지 않았다. 에반스-프리차드의 글에 담긴 아름다운 명료성은 그가 비현실적 상황―평형 체계들의 구조―을 기술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에서 평형 상태에 있지 않은 한 체계의 구조를 기술했다. 방법론적으로 특정한 순간에 2~3개 '이념적 체계'를 동시에 드러내려고 했다. 그 결과가 단순하거나 명료하다고 주장할 수 없지만, 종전 학계에서 한 번도 제안된 적 없는 몇몇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Evans-Pritchard, 1951

 

이념적 사회 아닌 경험적 사회 다뤘던

393
사회학자는 에스노그라퍼와 반대로 언제나 경험적 사회가 아닌 이념적 사회를 다룬다. 이는 사회학의 초창기부터 그러했다. 예를 들어 스펜서는 처음부터 『사회학 원리(Principle of Socilogy)』 2부에 이런 내용을 포함하고자 했다. 
"사회와 사회변동을 조사해서 얻어낸, 구조적이며 기능적인 일반적 사실, 다시 말해 여러 사회를 비교하고 같은 사회의 연속적인 국면을 비교해서 도달한 경험적 일반화"(Spencer, 1858)
이런 '일반적 사실'은 특정한 발전 단계에 있는 인간 사회의 이념적 모델이 부합한다고 간주되며, 특정한 국면―현실에 없는 정적인 조건―에 있다고 정의된 사회를 관찰해서 얻어진다. 진화주의자들은 A단계에 있던 사회가 B단계로 이행했을 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 번도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주의를 덜 기울인다. 그들은 단순히 모든 B단계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A단계 사회에 진화했다고 주장해왔다. 진화주의자들이 경험적 에스노그라피 자료를 논거로 활용할 때, 의도적으로 상호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고른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그들은 동시대 사회 가운데 공간적으로 떨어진 사회를 골랐고, 그중에서도 서로 다른 대륙의 사회를 선호했다. 인접한 사회는 동시대 자료를 사용하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인보다 고대 그리스인이 기술적 우위에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동시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정치적 구조의 연계성 문제는 인류학의 영역이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초기 인류학자들의 모델 체계는 문화적 용어로 표현되었든, 구조적 용어로 표현되었든 ―카바족, 거석문화, 모권제 시대 같이― 지나치게 방대하고 모호하다. 대단히 교양있는 저자들이 지금도 과거 모계사회 주민에 관해, 어떻게 그런 사회가 작동했을지 자세한 설명도 없이 두꺼운 책을 쓴다. 그러나 그들의 모델 체계는 전부 안정되고 고정된 체계, 즉 이념형이다. 

 

평형상태라는 허구, 인정하고 사용하자

394~395
현대의 사회인류학자들은 그보다 무난한 주제를 훨씬 엄밀하게 다룬다. 그러나 그들이 다루는 '사회'는 여전히 대부분 모델 체계로, 그것의 안정성은 가정일 뿐이지 확립된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인류학자들이 언제나 '사회'라는 허구고립체로 다뤄왔기 때문에, 동시대적이며 인접한 사회 체계―실제적인 관계를 맺는―를 기술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 
[...] 미국 인류학자들은 오래전에 문화 접변(acculturation)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대적 과정을 다룰 수 있는 사회학적 이론을 위한 개념 틀을 전혀 개발하지 않은 것 같다. 문화 접변 연구는 대부분 특정한 역사적 기간에, 고립된 특정 문화 사이에서 일어난 몇몇 문화특질의 교환을 분석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내 생각에 사회인류학의 평형 이론은 한 때 정당했지만, 이제는 과감한 수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고정된 체계의 유형학을 세우는데 만족할 수 없으며, 오늘날 인류학자들이 연구하는 사회 가운데 안정성을 향한 뚜렷한 경향을 보여주는 사회가 거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와 반대로 칼 포퍼가 '역사주의'*라고 옳게 경멸한 형이상학적 일반화를 피하면서, 인류학자들이 변하는 사회 체계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opper, 1945

 

불안정한 상태로 간주하고 시작하자

395
필연적으로 또 자연 발생적으로 사회 체계가 안정적이지 않음을 솔직하게 인정한다고 해서, 구조적 사고에 훈련된 사회인류학자들이 전통적 분석 테크닉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현지조사 상황에서 인류학자는 언제나 관찰 자료를 총체적 평형의 일부인 듯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학적 기술이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이 평형 상태의 허구적 성격을 정직하게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기술한 굼사, 굼라오, 샨족의 조직 패턴 역시 대부분 가상의 실체에 대한 기술이다. 그것은 실제 사회보다 이념적 모델과 관계되었다. 나는 그런 가상의 체계가 상호작용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설득력 있는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회변동 과정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이 일반성을 획득하려면, 특정한 사건이 아니리 이런 모델과 관계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이런 변동 과정을 관찰에 근거한 일차적 에스노그라피 자료에서 직접 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인류학자는 먼저 불안정한 평형 상태에 있다고 간주되는 추상적인 전체 체계에 비춰서 에스노그라피 사실을 분석해야 하며, 현실의 혼란은 불안정한 이념 체계의 상호 침투에서 기인한다고 상정해야 한다. 

 

유연성

396~397
[...] 나는 카친족도 샨족도 자기 사회를 이런 식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카친족은 굼사 / 굼라오, 굼사 / 샨 사이의 체계 차이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이런 차이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도 안다. [...]
[...] 세 사회의 정형화된 버전 혹은 모델 버전은 정확하게 규정되었지만, 이 범주를 실제 커뮤니티에 적용할 때는 상당한 유연성이 뒤따른다.
이념형(ideal type)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더라도,
실제형(practical type)은 중첩되는 것이다. 
[...] 인류학자는 어떤 관점에서 굼사로, 다른 관점에서는 굼라오로 여겨지는 커뮤니티를 종종 만난다. 동시에 카친 굼사와 샨 체계에 모두 해당하는 커뮤니티도 존재한다. 다시 말해 특정 커뮤니티가 굼사냐, 굼라오냐, 샨이냐 하는 문제는 반드시 경험적 사실의 영역에서 식별 가능한 것이 아니다. [...]
[...] 그런 애매성이 용인할 수 없는 오해에 이르지 않는 것은 모든 의례 표현의 본질적인 모호함 때문이다. 의례와 신화는 사회구조의 이념적 버전을 '표현한다'. 이는 사람들이 자기 사회가 그런 식으로 조직되었다고 간주하는 모델이지, 그들이 도달하려고 추구하는 목적일 필요는 없다. [...]

 

분절

399
카친족의 패턴은 고전적인 분절적 원시사회와 여러 가지가 동일하다. 모건이 이로쿼이족(Iroquis)과 고대 그리스 사회조직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 '부족적(gentile)' 조직 유형, 그 고전적 분절 원시사회 말이다. 현대 영국 인류학자들 몇몇이 아프리카 사회에서 이런 유형을 갖춘 뛰어난 연구를 했다. 현재 그 지역 종족 조직의 전형적인 원리는 잘 알려졌다. 누에르족, 탈렌시족, 티브족에 대한 여러 일반 명제는 카친족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카친 사회는 종족 체계와 연관된 계급 체계가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앞에서 보았듯이, 카친 사회의 정치체는 우리가 봉건제라 부르는 체제와 매우 흡사한 샨족의 정치체에서 반 발짝 떨어져 있을 뿐이다. [...]

 

변별의 기준, 변이의 기준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400
[...] 나는 왜 카친족이 서로 달라야 하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우리는 다시 사회적 정학(social statics)이 아닌 사회적 동학(social dynamics)의 문제와 마주한다. 한 하위 범주를 다른 하위 범주와 구분하는 변별자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아트시족은 징포족이, 가우리족은 아트시족이 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어떤 때는 일어나고, 다른 때는 안 일어나는가? 
401
[...] 굼사와 굼라오 지역에서 유일하게 지속되는 정치 구조 단위는 마을이다. 그보다 규모가 큰 모든 정치체는 끊임없이 변한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외부 정치 세계의 권력 구도에서 언어적 고유성이 마을 커뮤니티의 지속적인 통합을 유지하는 기제가 될 것이다. 
작은 마을 단위에서 언어적 고유성에 완고하게 집착하는 것은 이런 상황이다. 
405
나는 카친 문화의 여러 변이형을 어떤 '부족체(tribal entity)'의 특질로도 간주하지 않으려 했다. 흔히 에스노그라피 기술에서 그렇듯, 문화적 변이형을 정통적인 기본형에서 파생된 일탈형으로 간주하지도 않으려고 했다. 나의 관심사는 평균적인 카친족의 행위가 아니다. 실제 카친족의 행위와 이념적인 카친족의 행위의 관계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나는 카친족의 문화적 변이형을 상충되는 두 윤리 체계의 서로 다른 타협으로 설명했다. 
이런 분석법이 추후 상당히 발전될 수 있으며, 많은 에스노그라피 연구 현장에서 유용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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