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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의 숲(Turner, 1970)

zingari.JQ 2024. 6. 5. 13:56


Turner, Victor, 1957, Schism and Continuity in an Africa Society
사실 이 책을 엄청 읽고 싶은데, 우선 손에 잡히는 책부터 읽어본다.

1950년대 나온 책들이 영국 사회인류학의 전환기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John A Barnes의 소셜 네트워크 논문도 1954년
Edmund Leach의 버마 고산지대 정치체계 책도 1954년
그리고 위에 빅터 터너 책도 저 시기이다.

E.E. Evnas-Pritchard가 사회인류학을 사회구조에서 사회사로 건너가야 한다고 말했던 게 몇 년도였더라
그보다 우선 사회변동을 다뤄야 한다고 했던 건 에드먼드 리치의 논문이었다.
아프리카 정체체계 책과 같은 시기에, 박사 졸업 전에 냈던 그 논문에서부터 리치는 평형상태를 전제한 ‘옥스포드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게 (2차대전 참전하고, 현지노트를 다 잃어버리고도) 꿋꿋이 써낸 박사논문이 <버마 고산지대의 정치체계>이더라.
이 글에서 처음 중요하게 생각했던 키워드는 ‘유연성’이었는데, 이제는 ‘지속이란 무엇인가’를 더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빅터 터너의 저 책 <아프리카 사회의 분열과 지속>, 그리고 에드먼드 리치의 <풀 엘리야>를 찾아서 보고 싶다….만…

우선 여기선, 빅터 터너의 <상징의 숲> (글 모음집임)을 먼저 읽어본다.
(그런데, 번역은 전공자가 아니어서 좀 별로다… 당장 개념어를 흔히 쓰는 용례를 참고하지 않았다… liminality를 문지방성이라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옛날에 누가 그렇게 썼어도… 리미널하면 문지방 밖에 생각이 안나는 건가… 그냥 리미널리티라고 하시지… 암튼)




서문

상징주의
당시 상징에 대한 논의가 초기 단계여서, 터너는 ‘상징주의’를 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상징’의 사전적 정의부터 설명한다.

3
내 인류학 연구 결과들을
(1) 상징주의(symbolism), 마술에 대한 이론적 접근
(2) 의례의 여러 측면에 대한 서술적 설명으로 나누었다.

41~42
<은뎀부의 의례 상징>은 1958.3. 런던에서 열린 영연방 사회인류학자 협회 모임에서 발표한 글
Gluckman, M.(ed), 1964, Closed System and Open Minds: The Limits of Naivety in Social Anthropology에도 실린 글
상징이란 의례 행위와 관련된 특정한 속성을 보유하고 있는 가장 작은 의례 단위이다.
이것은 의례 맥락 안에서 특정한 구조와 관련된 궁극적 단위이다.
앞으로 주로 상징의 구조와 속성을 계속 기술하고 분석하게 될 터이니, 우선 ‘상징’이라는 용어를 <콘사이스 옥스퍼드 사전>에 적힌 대로 소개하는 것이 충분할 듯하다.
사전에 따르면 상징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혹은 그렇게 대표되는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하는 보편적 동의에 근거해, 또는 그와 유사한 성질을 보유한다는 점에 근거해 그렇게 여겨지는 어떤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현장에서 내가 관찰한 상징들은 대상물, 행위, 관계, 사건, 동작, 그리고 의례 상황에서의 공간적 단위 같은 것들이었다.

여기서 ‘상황’은 글럭먼이 ‘상황 분석’으로 사용하던 용어로, 맨체스터 학파들 사이에선 이 방법론이 꼭 언급되는 것 같다.
쉽게 말해 에스노그래피 현장이 놓인 상황을 층층히 넓혀가며 살펴보고 분석에 반영하는 것이다.
도시, 또는 식민지배 같은 상황이 분석에 고려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당시 ‘균형잡힌 평형 상태’ 연구가 폐쇄적으로 현장을 ‘단위’화 시켜 연구했던 경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더 찾아봐야 함)

유동적
9
은뎀부 사회에서 대부분의 지역 집단은 상대적으로 유동적이고 안정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그 집단이 형성되고 재형성되는 조직적 원리는 지속적이고 영속적이다.
개별 마을은 분열되고 나눠지며 산개되지만, 은뎀부의 구조적 형태는 여전히 존재한다.
은뎀부 마을에 대한 방대한 샘플을 살펴보면, 은뎀부의 구체적인 변형에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형태를 추론할 수 있다.
마을의 거주 형태를 결정한다고 믿는 규칙에 대해 정보 제공자들이 언급하는 내용을 들으면 인류학자는 마을 구조에 관한 통계와 관념적 규범 사이에 규모상, 유형상의 유사성이 얼마나 있는지를 일정 정도까지는 산정해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나는 대부분 은뎀부 마을이 ‘실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에드먼드 리치와 맨체스터 학파의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당대 인류학자들도 유동적이고 안정적이지 않은 현장을 연구하고 있었으나, 이를 어느 방향으로 다루느냐의 문제가 있다.
초기 포르테스와 에반스-프리차드는 아예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렸고,
글럭먼과 맨체스터 학파들은 시야를 넓혀 현실은 인정했으나 바라보는 프레임은 ‘균형잡힌 평형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었고,
에드먼드 리치는 분석을 위해선 ‘이념적으로’ 평형 상태를 상정하지만, 실제는 혼종적이며 ‘평형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시도였다.

지금에서 보자면, ‘거기서 거기네’ 싶을 수도 있겠으나
어쩌다보니 내 눈에는 알을 깨고 나가려는 (나름대로의) 엄청난 노력이지 않을까 싶다.
리치는 인생을 바쳐서 저 지점을 고수했고, 그러는 바람에 자리를 잡는데 우여곡절을 겪지 않았던가.

초기 사회인류학이 전환기를 겪는 이 과정을 보는 이유는, 현재 새롭게 전개되는 ‘관계론적 전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20
래드클리프—브라운 교수가 말한 것처럼, 장례식은 죽은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문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생애 전환기 의례에서는 의례 주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모든 사람의 관계 내에 변화가 일어난다. 사람이 죽으면 존재했던 이 모든 관계가 단절되는데, 죽은 사람이 중요한 인물일수록 끊어지는 유대의 폭이 크고 빈도가 높다.
이제 새로운 형태의 사회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만일 죽은 사람이 마을 지도자였다면 그를 대체할 후계자를 찾아야 하고, 상속인들은 죽은 지도자의 재산을 나눠 가져야 하며, 누군가는 죽은 촌장이 진 빚을 갚아야 할 책임을 져야 하고, 죽은 촌장의 과부도 이제 어떻게 할 건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렇게 죽은 지도자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던 모든 사람은 그 후계자와 상속인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위치해야 할지를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조정 기간, 즉 점진적으로 낡은 질서에서 새로운 질서로 사회가 움직여 가는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은뎀부 사회에서 이런 기간은 치펜지(chipenji) 또는 침빔비(chimbimbi)라고 부르는 애도의 캠프가이어지는 기간에 해당한다.

래드클리프-브라운이 어디서 했던 얘기인지 좀 찾아봐야겠다. 의례마저 관계로 풀어내는, 진짜 ‘관계 덕후’ 답다…


43
의례에 나타나는 상징들의 구조와 속성은 다음 세 종류의 자료에서 추론할 수 있다.
(1) 외적 형태와 관찰 가능한 특성들,
(2) 전문가들 또는 현지인들이 제공하는 해석들,
(3) 주로 인류학자가 밝혀낸 특별한 의미를 지닌 전후 사정들.

48
[…] 하지만 셋째 유형의 해석자료인 맥락적 분석을 적용해보면, 정보 제공자들이 모유나무와 관련해 제시해주는 해석, 그리고 사람들이 실제로 행동하는 방식은 서로 모순된다. 모유나무는 사회적 차별을 나타낼 뿐 아니라, 심지어 이상적으로는 조화로운 전체로 상징되어야 ㅎ할 것 같은 사회 구성 요소들 사이의 반목을 나타내기도 한다.

55~56
나를 도와준 정보제공자들이 정말로 모유나무가 은뎀부 사회 조직을 연결하고 단결시키는 측면만을 상징한다고 믿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상황들에서, 다른 집단들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특정 집단의 구심점을 상징하는 모유나무이 역할이 전체적 의미에서 똑같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 역시 확신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누구를 위한 의미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57
네이들(Nadel, 1954: 108) […]
모니카 윌슨(Wilson, 1957: 6) […]
[…] 내 견해로는 조사 연구자들의 이런 관점은 꼭 필요한 신중함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매우 심각한, 심지어는 임의적인 한계를 부여한다. 그런 곤란한 상황은 어느 정도는 조사 연구자가 상징의 개념과 단순한 기호의 개념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나는 집단적 무의식이 의례에 나타나는 상징의 주요 형성 원리라고 주장하는 칼 융의 기본 가설에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다.
칼 융(Jung, 1949: 601)가 기호와 상징 개념을 구분했기에, 앞으로 조사 연구에 문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기호는 알려진 것(known thing)에 대한 유사하고 간결한 표현이고,
상징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그럼에도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가정되는 사실(unknown fact)에 대한 최선 가능한 표현이다”
[표현이라고…? 표상 아니고? representation일까, expression일까…?]

58
그렇다면 사회인류학자는 한 사회의 의례 상징에 대해 당사자인 행위자들보다 더 깊고 포괄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ㅏ는 주장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우선 인류학자는 자신만의 특별한 기술과 개념들을 이용해 주어진 의례 행위가 “다양한 형태의 집단들과 하위 집단들, 부류들, 인격들 같은 공존하는 사회적 존재들의 총체, 그들 사이의 장벽, 상호 결합ㅇ의 방식 안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런 요소들이 서로 관통하고 있음”을 조망할 수 있다(Lewin, 1942: 200).
달리 말해, 사회인류학자는 그 의례를 중요한 현장 상황에 올려놓고 볼 수 있고 그 현장의 구조와 속성을 묘사할 수 있다.
반면 개별적 의례 참여자는 그가 위치해 있는 관찰 가능한 특정 자리에서만 의례를 바라본다. 개별 참여자는 루프턴(Lupton)이 언급했던 자신만의 ‘구조적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개별 참여자는 의례를 볼 때, 자신아 자리 잡고 있는 특정한 지점에서, 심지어는 갈등 상황에 있는 일련의 지점들에서,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유지 구조 안에서, 또 주어진 의례에서의 역할 구조 안에서 바라보게 된다. 더욱이 참여자는 행위를 할 때 의례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신이 처한 특정 지점에 좌우되는 관심사들, 목적들, 감정들에 휩쓸리기 쉽다. 참여자의 객관성을 방해하는 더 심각한 장애물은, 참여자는 의례에서 명백하게 표현되고 상징화되는 관념들과 가치들, 규범들을 자명한 것, 우선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60~62
의례 상징의 세 가지 속성
해석을 시도하기 전에, 우리는 앞에서 설명했던 방식으로 수집한 서술적 자료를 좀 더 분류해야 한다. 그런 분류가 있어야만 우리가 의례 상징의 일부 속성들을 서술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1) 가장 단순한 속성은 압축(condensation)이다. 많은 사물들과 행위들이 단일한 유형으로 재현되는 것이다.
(2) 종류가 다른 기호체들을 통합(unification of disparate significata)하는 것이다. 다른 기호체들은 유사한 특성들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혹은 실제로 관련이 있거나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연결되어 있다. 이런 특성들 또는 관련성의 근거다 되는 고리들은 그 자체만 보면 상당히 사소하거나 임의적이거나 아니면 현상의 범위에 폭넓게 걸쳐 있는 것들일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일반성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나 다양한 관념들과 현상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모유나무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여성의 가슴, 모성, 은캉가 의례의 입문자, 모계제 원리, 특정 모계 집단, 학습, 그리고 은뎀부 사회의 단결과 지속을 상징한다. 이 모든 다양한 기호체들에는 자양분 그리고 의존성이라는 같은 주제들이 흐르고 있다.
(3) 의미의 양극화. 모유나무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은뎀부의 주요 상징들은 의미상 명확히 구분되는 두 축(pole)을 가진다.
- 한 축은 은뎀부 사회의 도덕과 질서, 사회 조직의 원리들, 일종의 협동 집단, 구조적 관계들 안에 내재한 규범들과 가치들을 가리키는 기호체의 집합이다.
- 다른 축에 있는 지시물들은 대개 자연적 현상과 심리적 현상, 그리고 과정들이다.
= 첫째 축을 ‘관념 축(ideoloical pole)’으로
= 둘째 축을 ‘감각 축(sensory pole)’으로 부르기로 하자. 감각 축에서 의미하는 내용은 그 상징의 외적 형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다시 말해 모유나무의 의미 중 하나인 모유는 이 나무에서 우윳빛 유액이 배어 나오는 것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또 다른 주요 상징인 무쿨라(mukula)나무의 감각적 의미는 피인데, 이 나무가 검붉은 빛깔의 고무액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 이런 상징들이 사회적 사실, 즉 ‘집합 표상(collective representation)’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이런 상징들이 의미의 관념 축에서 볼 때는 일차적 집단이든, 연합적 집단이든, 가내 집단이든, 정치적 집단이든 이런 모든 사회적 집단의 단결과 지속성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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