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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은 김정은, 南은 박근혜? 우리는 바꿀 수 있다!

[기고] 권력세습은 독재자 하나의 문제 아니다


기사입력 2012-12-14 오후 3:13:34

     
/정병호 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
40년 전인 1972년 12월 27일 남한의 유신헌법과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이 동시에 공포됐다. 그렇게 남쪽 유신체제 대통령과 북쪽 유일체제 주석은 나란히 짝을 이뤘다. 서로 상대방 때문에 특별한 독재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둘 다 전쟁파괴와 절대빈곤의 사회적 위기상황에서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발휘한 경제발전시대의 지도자였다. 김일성의 '천리마운동'과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은 그 시대의 상징이었다.

위기상황에서 비상한 능력을 발휘한 카리스마 지도력은 위기극복과 함께 소멸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독재자들은 종종 그런 카리스마 권위의 시간적 운명에 저항하여 종신권력을 추구한다. 그러나 종신권력은 바로 후계자 문제에 봉착한다. 특권을 계속 누리고자하는 무리들이 지도자의 자연수명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권력재생산 방식을 필사적으로 모색하기 때문이다. 이때 절대권력자의 아들딸은 권력의 2인자로 실세가 되거나 미래권력의 상징으로 추대되기 쉽다. 북한의 김정일은 바로 그렇게 떠오른 세습권력이다.

김일성 같은 카리스마 지도자의 개인적 권위를 세습하는 것은 그의 장남으로서도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끊임없이 권력세습을 정당화하는 조건을 만들어 나갔다.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언론을 장악하여 사상통제를 강화하고, 반대파의 구속과 숙청을 일상화했다. 김정일의 후계구도가 본격화한 1970년대 초부터 북한에서는 많은 책들이 금서로 사라지고, 널리 부르던 노래들이 금지곡이 되고, 복장과 두발에 이르기까지 생활검열도 강화되었다.

어딘지 익숙하지 않은가? 자유민주주의 남한에서도 유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경험한 종신권력의 통제방식이다. 적극적으로 이미지를 조작하는 '상징정치'도 추진되었다. '주체적 사회주의' 북한과 '한국적 민주주의' 남한 모두 충효사상을 강조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이 '조선의 어머니'로, 남한에서는 육영수가 '자애로운 국모'로 추앙받았다.

▲ 군 시설 시찰 중인 김일성-김정일 부자(왼쪽)와 박정희-박근혜 부녀(오른쪽). ⓒ프레시안(자료)

미래권력으로서 다양한 차원의 상징화 작업을 수행하면서 세습기반을 닦은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이 죽자 강력한 '추모의 정치'를 통해 사회주의국가 최초의 가족세습 권력이 되었다. 군부를 장악한 혁명유가족 집단과 기득권세력이 특권의 세습구조를 함께 지킨 것이다.

권력세습의 폐해는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났다. 온갖 통제로 사회가 정체되고, 자기치유능력을 상실했다. 사회 각 영역에서 벌어진 특권세습으로 인력과 자원이 폐쇄회로 안에서 맴돌게 되었다. 국가나 국민의 이해보다는 지도자 개인이나 권력집단의 이해가 먼저였다.

기근상황의 북한에서 군대를 앞세운 것은 무엇보다도 권력체제와 세습구조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2011년 북한에서 김정일이 죽자 권력은 28세 김정은에게 세습되었다. 김정은은 젊은 시절의 김일성을 닮은 외모와 스타일로 카리스마 권위의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있다.

▲ ⓒ프레시안

박근혜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22살의 어린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행하며, 의전서열 2위의 핵심적인 상징이 되었다. 상징은 곧 권력으로 자라났다. 충성과 효도를 강조하는 '새마음운동' 전국대회를 진행할 때면, 어린 '영애님'에게 교장선생님들은 90도 경례를 하고, 시골 할머니들은 큰절을 올렸다. 1979년 아버지의 죽음 이후 권력은 27세 어린 친딸이 아니라 양아들 이라는 군부실세 전두환에게 넘어갔다.

▲ 육영수 동상과 박근혜. ⓒ프레시안(자료)

2012년 남한에서 박근혜는 어머니 육영수의 외모와 아버지 박정희의 과묵한 이미지를 재연출하며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정치적 카리스마의 세습은 경영세습을 하는 재벌과, 교회세습하려는 목사와, 또 혈연·지연·학연을 통해서 크고 작은 특권을 유지하고 세습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아서 오늘의 정치현실을 만들고 있다. 권력세습은 독재자 한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체제의 모든 기득권 세력의 특권세습과 맞물려있다.

북한은 왜 남한의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오면 긴장을 고조시키는가? 분단의 세습정치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긴장을 고조시켜 적대적 공존을 지속하려는 남과 북의 기득권세력은 특권의 세습을 위해서 위험한 갈등유발도 서슴지 않았다. 남쪽의 세습정치와 짝을 이뤄 북쪽 권력의 취약한 세습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남과 북이 인도적 지원에 대해 협상하는 자리가 있었다. 북측 대표단에는 혁명가문의 자손으로 김정은과 함께 떠오르고 있다는 젊은 실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 한사람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비난 끝에 농담처럼 한마디 했다. "요즘 남쪽에서 이명박 찍은 사람들이 손가락 잘라야겠다고 야단이라면서요? 거참 앞으로는 선거 잘해야 할 텐데…." 듣다못해 남측 대표가 한마디 했다. "그래도 우리는 5년에 한번 바꿀 수 있잖소!"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민주화운동으로 정치독재의 고리를 끊었다. 남한에서는 특권세습을 막을 수 있다. 우리는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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