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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한계 관련 발췌

zingari.JQ 2020. 11. 20. 16:32

구체적 실천으로서 공동체 운동

?, 1983.4., "공동체적 삶", 한국가톨릭농민회 소식지, www.mosim.or.kr/xe/index.php?mid=arc_life&category=991&document_srl=1003

공동체의 건설과 공동체적 삶이란 이념이나 단순히 이상이거나 뜬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농민의 ―나아가 인류 전체의― 고통과 질곡을 해결하는 구체적이거나 실제적인 삶의 형태로 되어야 한다. 우리는 삶을 통해서 구조악을 극복하고, 그 삶의 실천형태인 협동화를 통해 경제적 곤란을 해결할 수가 있다. 따라서 공동체의 건설과 공동체 삶의 실천은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우리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정리하여 우리의 삶을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곧 공동체의 건설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마을을 사이좋고 즐거운 마음, 일과 놀이가 하나 되어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정이 흐르는 마을로 만드는 일이며, 공동체의 삶이란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며 서로가 가진 바를 나누고 함께 힘을 합하는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이라 하겠다. 참으로 우리가 서로를 믿고 서로가 자기를 온전히 열 때, 그 친교를 토대로 공동체가 이루어진다. 서로가 가진 바를 나눌 때 정이, 사랑이 넘치고 물질이 넘친다. 이 공동체적 삶의 실천이 우리의 과제이고 실천목표이다. 우리 모두가 참사람, 참 농민으로 공동체 삶의 실천을 위하 함께 일하자!

 

 

폐쇄성을 넘어야 한다는 주장들

이호, ?, "풀뿌리자치 공동체운동과 새로운 세상", www.mosim.or.kr/xe/index.php?mid=arc_life&category=991&document_srl=1012

자립과 공동체는 폐쇄적인가? 

… 자립의 문제로 고민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각자도생으로 환원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자립'은 남과의 관계를 끊고 홀로 살아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하다. …

우리가 재안으로 이야기하는 '자립'도 '나'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 자립은 공동체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번지는 '마을' '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욕구에 근거한다. 그런데, 이 공동체라는 용어는 또 많은 오해를 낳는다. 공동체를 구성원 간의 긴밀한 관계로만 파악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이는 공동체를 폐쇄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실상 자립과 공동체는 폐쇄성을 통해 실현 가능한 듯 보인다. 하지만, 공동체는 단순히 그 구성원들의 폐쇄적인 관계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동체를 보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구현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근린지역 주민들 간의 안면성과 긴밀한 관계와 공통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일차적으로 중요시한다. 이는 미국의 힐러리라는 학자가 공동체라는 개념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세 가지 요소를 지역성(locality), 사회적 상호작용(social interaction), 공통 유대(common tie)라 설명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런데 100년 이상 공동체 실험을 성찰해 온 현대공동체주의자들은 우리의 통념과는 다른 성찰의 내용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특정한 공동체가 속한 사회가 공동체적이지 않다면, 결국 그 사회에서 공동체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특정한 공동체가 속한 사회가 공동체적이지 않다면, 결국 그 사회에서 공동체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농촌지역에 생태공동체를 만들고 자립의 삶을 살라고 해도, 우리 사회가 그러한 노력을 수용할 수 없다면 이 또한 한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물론, 공동체가 다른 사회적 대안 이론에 비해 강력할 수 있는 힘은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의 대안적 모습을 가시적으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즉,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할 수 있다는 구체적 근거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자립은 남과 무관하게 내가 삶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충족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자립의 근거로 건설하고자 하는 공동체도 그 구성원들만이 만족하는 그러한 폐쇄성에 머물 수 없다.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과정에서의 공동체가 과거의 촌락 공동체를 오늘날 다시 만들고자는게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자립의 공동체는 '나'를 넘어 '우리'로, 그리고 소수의 '우리'를 넘어 세상과 긴밀히 소통하고 변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개방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하는 자립의 가치, 공동체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사회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

풀뿌리 운동은 무엇에 반대하거나 요구하는 일을 넘어 대안을 실천하기를 중요시한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 운동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살고 싶은 대안적 사회의 모습을 공동체를 통해 가시적으로 구현하고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공동체는 당장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완결된 어떤 모습을 지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지향을 갖고 그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지향을 갖고 그 과정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공동체주의자들의 성찰 또 한가지,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 수단과 방법도 공동체적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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