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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여론
증여의 이중성
우리는 아주 중요한 특징을 고찰하고자 한다. 보기에는 자발적이고 댓가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무적이며 댓가를 바라는 증여의 두가지 성격을 고찰하려는 것이다. 이 증여는 바라지 않는다고 말해도 언제나 아낌없이 제공되는 선물의 형식이었다.
(MAUSS, 2011[1925]: 47~48; 번역 일부 정정)
총체적 증여체계
이 급부와 반대급부는 꽤 자발적인 형식 아래 선물·선사품으로 행해지지만, 실제로는 엄격하게 의무적이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사적 또는 공적 싸움이 일어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총체적 증여체계(système de prestation totale)'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MAUSS, 2011[1925]: 53; 번역 일부 정정)
로키 산맥과 해안 사이에 사는 부유한 부족들은 겨울에 끊임없이 축제를 벌인다. 여기서 부족은 위계적인 단체나 비밀결사에 따라 배열된다. 그리고 씨족, 결혼식, 입회식, 샤머니즘 집회, 위대한 신, 토템 또는 집단이나 개인의 조상 등을 숭배하는 집회,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단체, 부족, 부족연합 안에서, 심지어는 민족 간에 의례·법, 경제적 급부, 정치적 지위 결정 등과 섞여서 복잡한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다.
(MAUSS, 2011[1925]: 55; 번역 일부 정정)
포틀라치
포틀라치(Potlach)란 '식사를 제공하다' 또는 '소비하다'를 뜻한다. … 아메리카의 학자들이 (벤쿠버에서 알래스카에 걸쳐 사는 백인과 북미 원주민의 일상 언어의 일부가 된) 치누크(chinook)어의 명칭을 이용해서 부르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이를 '포틀라치'라 부르기로 제안한 바 있다. …
이들 부족에서 주목할 것은 그 모든 관행을 지배하는 경쟁과 적대의 원리이다. … 씨족 자체가 구성원을 위해 소유하는 모든 걸, 또는 행하는 모든 걸 위해 추장을 매개로 계약을 맺는다는 의미에서, 여기에는 '총체적 증여'가 있다. 그러나 이 증여는 추장의 이름으로 매우 투기적인 성격을 띈다. 이 증여는 본질적으로 높은 이자에 낭비스러우며, 귀족들이 누릴 위계서열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느 모습을 볼 수 있다. … 이러한 종류의 제도를 나는 포틀라치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포틀라치보다 더욱 길지만 정확하게 부르기 위해 '투기형 총체적 증여'라고 부를 수도 있다."
(MAUSS, 2011[1925]: 54, 56; 번역 일부 정정)
우리는 북서부 아메리카의 부족들과 아메리카 북부 일부 지역 부족들, 멜라네시아와 파푸아 섬 이외에는 포틀라치 사례를 거의 찾지 못했다. 그 밖에 모든 곳, 즉 아프리카, 폴리네시아, 말레이시아,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나머지 지역에서 씨족 간 또는 가족 간 교환의 기초는 더 단순한 형태의 총체적 급여인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연구가 깊어지면서, 북서부 아메리카와 멜라네시아의 포틀라치 같이 심한 경쟁과 부의 파괴로 특징되는 교환, 그리고 선물을 가지고 겨루는 온건한 경쟁의 나머지 교환 사이에 많은 중간형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선물에 답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메커니즘이다.
(MAUSS, 2011[1925]: 57~58; 번역 일부 정정)
포틀라치는 의식적인 형태 이외에 다른 형태로 행해진 것 같지는 않다.
(MAUSS, 2011[1925]: 130; 번역 일부 정정)
답례받기를 원치 않아서, 물건을 파괴하는 일… 고래기름… 동판...
(MAUSS, 2011[1925]: 141; 번역 일부 정정)
포틀라치는 경제적인 현상이다. … 그리고 사회형태학상 한 현상이기도 하다. 부족·씨족·가족의 집합이나 종족의 집합도 여기에 초조해하고 흥분한다.
(MAUSS, 2011[1925]: 148; 번역 일부 정정)
마나
마나, 즉 주술적이고 종교적이며 영적인 힘의 매개물
(MAUSS, 2011[1925]: 65)
포틀라치의 두 가지 본질적인 요소 : - 부가 주는 명예·위세·마나(mana, 비인격적 초자연력)의 요소 - 답례하지 않으면 이러한 마나, 권위, 불가사의한 힘, 부의 원천을 잃는다고 여겨져, 답례를 하게 되는 의무
(MAUSS, 2011[1925]: 61)
통가
경쟁·파괴·투쟁의 요소는 멜라네시아에는 존재했으나 폴리네시아에는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 그러나 … 사모아 섬에는 … 이른바 포틀라치의 두 가지 본질적인 요소, 부가 주는 명예·위세·'마나'라는 요소, 그리고 답례하지 않으면 이러한 마나, 권위, 불가사의한 힘, 부의 원천(이게 권위 그 자체이다) 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답례를 해야하는 절대적 의무라는 요소가 분명하게 확인된다.
(MAUSS, 2011[1925]: 59~61)
모스는 배경설명 없이 선교사 조지 터너를 바로 인용하고 있다.
[선교사 조지] 터너는 이렇게 언급한다. "출산 파티 후, 올로아(oloa)와 통가(tonga)―다시 말해, 남자 쪽 [지인들의] 재산[선물]과 여자 쪽 [지인들의] 재산[선물]―를 주고받은[받은 것 중에 일부는 참석자들에게 나눠준] 뒤에도 부부는 예전보다 부유해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커다란 명예라고 생각했던 그것, 자식이 태어날 때 재물이 쌓여있는 것을 보기만해도 만족을 느꼈다."
(TUNRNER, George, Ninten years in Polynesia: 178; Samoa: 52; MAUSS, 2011[1925]: 61에서 재인용)
모스는 '수양제도'(또는 '양자')라는 맥락을 소개하지 않고 바로 인용하고 있다. 위의 '출산 파티(rejoicing)' 내용과 구분되는 '입양된 아이(adopted children)' 내용이지만, 모스는 바로 이어붙여서 설명한다. 원저자 조지 터너에 따르면, 보통 남편의 아이는 남편의 여자 형제에게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증여는 아마도 의무적이고 영속적이겠지만, 증여를 강제하는 권리상태 이외에 다른 반대급부[반드시 답례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따라서 [생부의] 여자형제와 그 남편[번역문에는 '처남'이라고 잘못 기재됨]이 [아이를] 기르기 위해, '처남에게서 받는 아이' 자체는 통가(tonga), 즉 [입양한 가족 입장에서] 여자 쪽의 재산이라고 불린다."
(TUNRNER, George, Ninten years in Polynesia: 178; Samoa: 83; MAUSS, 2011[1925]: 62에서 재인용)
반대급부가 없는게 맞나? 모스가 너무 조작적으로 인용한 거 아닌가? 번역문의 문제일까?
[입양된] 아이 자체는 "내재재산[native property; 본인이 George TURNER 직접 인용; 번역문에는 '대대로 전해지는 재산'이라고 표기함], 또는[번역문에서는 '즉'이라고 잘 못 번역됨] 통가(tonga)가 [생]부모의 가족에서 입양하는 가족으로 계속 흘러들어가게 하는 통로이다. 다른 한편, 아이가 살아있는 한 [생]부모에게 아이를 양자[모스는 터너가 '입양(adopté)'라고 붙인 점을 지적하며 대신 수양제도(fosterage)라고 수정한다]받는 가족에게 아이는 외래재산[foreign property; 본인이 George TURNER 직접 인용] 또는 올로아(oloa)[번역문에는 외래재산과 올로아를 묶어서 괄호로 묶은 걸, 본인이 원문대로 분리함]를 획득하는 수단이다."
(TUNRNER, George, Ninten years in Polynesia: 179; Samoa: 83; MAUSS, 2011[1925]: 62에서 재인용)
"… [따라서 이러한 입양(모스에 따르면, 수양제도) 관습은 자연적인 애정의 욕구에 따른 것이 아니라; 본인이 George TURNER 직접 인용, 번역문에는 '이 (자연유대의) 희생은'이라고 표기됨] 내재재산[native property; 번역문에는 '대대로 전해지는 재산'이라 표시됨]과 외래재산[foreign property] 간 체계적 교류의 원활함(facility of traffic)]을 위한 희생(sacrifice)이다[본인이 George TURNER 직접 인용]."
요컨대, 아이(즉 여자 쪽 재산)는 그 여자 가족 재산과 남자 쪽 재산을 교환하는 수단이다. 또한 아이는 그의 고모부[번역문에는 '외삼촌'이라고 표기됨] 집에서 살기 때문에 분명히 그곳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으며, 그 고모부[외삼촌라고 오역] 재산에 대해 일반적인 권리를 갖는다. 그 결과, 이 '수양제도'는 멜라네시아 지역에서 고모부[외삼촌라고 오역]의 재산에 대해 그 자매의 아들에게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권리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포틀래치가 존재한다고 말하려면, 경쟁·투쟁·파괴라는 요소만 첨가하면 된다.
'투기적 총체 증여'인 포틀라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가? 반대급부가 없다고?
(아이의 생부모 가족과 입양된 고모부 가족 사이의) 내재재산과 외래재산을 교환하고 있다며? 그냥 총체적 증여가 있다는 얘기인가?
원저자 조지 터너는 이 장의 마지막에, 기독교 부모들은 그렇지 않는다는 맺음말을 남긴다. 분명 목적을 두고 서술한 문장인데, 모스는 그냥 과학적 근거인 것처럼 맥락을 탈피시켜버리고 인용한 것 같다.
이 문제는 다른 게시물로 새로 정리해보았다. zingari.tistory.com/180
(아직 메모를 완성하지 못했다...)
62 네트워크를 만드는 출발점
63 양도할 수 없는 부 immeuble
하우
66 하우
하우(hau), 물건의 영
66~67
"'하우'는 바람이 아닙니다. … 당신이 특정한 물품(타옹가)를 갖고 있어 나에게 준다고 하면, 우리는 그걸 매매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3자에게 이 물품을 주면, 그는 나에게 '대가(utu)'로 무언가를 주려고 할테고, 나에게 무엇인가(타옹가)를 선물합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주는 이 '타옹가'는 내가 당신에게 받았던, 내가 그에게 넘겨준 '타옹가'의 영(하우)입니다.
당신이 준 '타옹가' 때문에 내가 받은 '타옹가'를 당신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로서는 '타옹가'가 탐나는 것이든 불쾌한 것이든 간에 그것을 간직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당신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준 타옹가의 '하우'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이 두번째 '타옹가'를 갖는다면, 나는 병에 걸리거나 심지어는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것이 '하우', 즉 개인 소유물의 '하우', 타옹가의 '하우', 숲의 '하우'입니다." -마오리족 타마티 라나이피리(Tamati Ranaipiri), 엘스던 베스트(R. Elsdon Best) 인터뷰
69
'하우'는 최초의 수증자나 제3자를 쫓아다니며, '타옹가'를 단순히 양도받은 데 불과한 모든 사람도 쫓아다닌다.
71
물건 자체가 영을 갖고 있으며, 또 영의 것이기 때문이다. … 총체적 증여체계의 성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념체계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그의 본성 및 실체의 일부인 것처럼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서 무언가를 받는 것은 영혼의 일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함
77
시베리아 동북부의 모든 사회, 서부 알래스카 에스키모인, 베링 해협의 아시아 연안 에스키모인에게서, 포틀라치는 후함(générosité)을 다투는 사람들…
81
공희제도
83
공희의 파괴는 증여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86
희사는 한편으로는 증여와 재산의 도덕적 관념, 또 한편으로는 공희 관념의 소산이다. 후하게 주는 것이 의무이다. … 그것은 옛 증여도덕이 정의의 원칙이 되었다는 것이며, 신과 정령들은 자신을 위해 남겨놓은 몫과 공희 때 쓸데없이 파괴되는 못이 가난한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
교환-증여
88
폴리네시아에서는 포틀래치의 완전한 제도가 발견되지 않아도, 그 기본적인 요소들은 이처럼 존재한다. 교환-증여는 규칙이다.
쿨라
99, 115
김왈리, 평범한 교환
101
음왈리, 조개껍질 팔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술라바, 국화조개 자개 목걸이, 반대방향
104
바가, 최초의 증여
요틸레, 답례의 증여, 다른 명칭으로 쿠두(끊고 잘라서 자유롭게 해주는 이빨이라는 의미)
바시, 찌를 뿐 물지 못하는 이빨, 즉 거래를 와녈하지 못하는 이빨, 답례를 할 수 없을 때 부득이하게 바시를 제공
120
끊임없는 주고받기
유사한 사례, 와시, 농경부족―어로부족 간 규칙적이고 의무적인 교환
164
트로브리안드 섬의 '쿨라'가 선물교환의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로, 포틀라치도 북서부 아메리카 연 사회에서 선물제도 중 하나의 기형적인 산물에 불과하다.
신용
135
한층 더 발전된, 더 분화된 제도. 신용, 즉 기한관념과 명예관념
138
증여는 필연적으로 신용 관념을 초래
세가지 의무
제공
152
체면
인격(persona)
158
인정(reconnaissance)
수령
161
사람들은 선물을 '짊어지는 귀찮은 것'으로 받았다. 사람들은 어떤 물건이나 환대에서 이득을 얻는 것 그 이상의 것을 한다. 즉 도전을 받아들인 것이다. 어떤 물건이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 대해 답례할 확신이 있으며, 자기도 그에 못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답례
162
포틀라치가 순수한 파괴로 성립되지 않는 경우, 답례의 의무가 포틀라치의 전부이다.
양도
169
이 경우 양도(aliénation)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것들은 판매나 진정 양도의 대상이라기보다 오히려 대여의 대상이다.
첫번째 결론
193
포틀라치
먼저 두세 집단에서 포틀라치의 이유와 전형적인 형태를 찾아내었다.
증여와 답례
증여와 답례증여의 교환을 찾아내었다. 이들 사회에서 재화의 순환이 권리·사람의 순환과 동일시된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교환―증여의 원리
아직도 존속되고 있다. 교환-증여의 원리가 '총체적 증여' 단계를 넘어섰지만, 아직도 화폐 개념이 도하지 못한 사회에서의 원칙임이 틀림 없다.
브라만교
228
브라만교는 절도나 교환활동에서도 재산과 사람을 동일시하였다. 브라만의 재산은 브라만 그 자신이다.
233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에 확립되는 유대가 그 두 사람에게는 너무 강력하다는 것이다.
모스에게 '호혜라는 이중성'이란
권헌익, 2016, "사회적경제에서 '사회적'이란?", 김의영 외, 『사회적경제의 혼종성과 다양성』, 푸른길, pp.127~138.
권헌익(2016)은 모스의 증여론에서 핵심을 '하우'와 '호혜'으로 꼽는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모스가 찾으려고 했던 그 '이중성'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우리를 이끈다.
하우
모스의 『증여론』은 읽기 쉽지 않은 책이고, 책의 내용을 해석하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 전체적인 내용에서 뉴질랜드 마오리 족의 '하우'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제시된다. 하우는 일종의 정신적인 존재(혹은 윤리적인 원칙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인데, 어느 누가 다른 이에게 제공하는 선물에도 이 하우가 있다. 마오리 사람들에게 선물이란 단순한 물건 이상으로, 이 물건을 주는 사람의 존재가 하우의 형식으로 물건에 따라간다. 이 물건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물건을 받게 되는 순간 그 물건의 원주인 존재 한 부분을 동시에 받게 된다. 물론 그 존재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말이다.
이렇게 주고받는 교환의 관계가 계속되어 물건의 움직임이 시간적으로 더 깊고 공간적으로 더 넓은 지평을 갖게 되면 선물은 결국 여러 다른 존재의 요소들, 즉 그들의 하우들을 가지면서 그 사회성이 증폭한다(그러면서 계속 원주인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속성도 갖고 있다).
이러한 교환체계가 의미하는 것은, (1) 교환에 참여하는 개개인의 입장에서 물건을 주고받는 행위는 물건만이 아니라 자신들 자아의 부분을 서로 주고받는 행위라는 것, 그리고 (2) 교환의 목적은 그 행위를 통하여 다양한 자아들이 서로의 부분을 상호공유하는, 말하자면 사회적 연대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권헌익, 2016: 131)
호혜
모스의 『증여론』에서 호혜라는 개념은 무척 중요하다. 그런데 이 개념이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방식으로 교환과 교환의 가치에 관해 기계적으로 이해될 수만은 없다. 교환관계에서는 분명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을 수 있고, 이러한 이해의 배경에는 물론 도의적인 인식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에서는 선물교환이나 화폐를 매개로 한 교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스는 마오리 사회의 선물경제와 현대사회의 화폐경제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두지 않았다[따라서 폴리네시아 연구에서 이 두 경제 형태들의 다름을 강조한 말리노프스키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다](Hart, 1986).
교환은 호혜적이지만, 모스가 말하는 호혜관계는 경제적인 의미를 넘어서 사회적, 특히 정치적 의미를 함유한다. 이 점은 1923년의 『증여론』보다 훨씬 이전 1905년에 출간된 그의 『에스키모 사람들 삶의 계절적 변화』라는 에세이를 들여다보면 확연해진다. 이 저작에서 모스는 "호혜"라는 말을 중요한 분석적 개념으로 처음 들여온다.
(권헌익, 2016: 131~132)
에스키모 사람들 삶의 계절적 변화
에스키모 혹은 이누이트 사람들의 전통적 삶의 방식은 여름과 겨울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여름 주기에는 핵가족 조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널리 분산되어 살면서 그다지 상호관계를 가지지 않은 채 생업인 사냥에 몰두한다. 겨울이 되면 이렇게 분산되었던 사람들이 카심이라는 주거지를 중심으로 모두 모여 집단공동체 생활을 하게 된다. 이누이트 사람들의 여러 중요한 종교적 의례도 주로 이때 이루어지고, 이 생활공간에서는 사유재산에 대한 의식과 주장이 극히 희박해진다.
이렇게 생태적 주기와 밀접하게 연동된 사회생활의 계절적인 변화에 관심을 두고, 모스는 여름에는 거의 '개인주의'적으로 살다가 겨울이 되면 거의 '공산주의'적으로 사는 이누이트 사람들의 중층적인 생활형태를 논한다. 여기서 '공산주의'란 원시 공산사회의 의미일 것이다.
(권헌익, 2016: 132)
호혜적 현상, 도의적 문제
이누이트 사회의 이중적인 계절적 사회형태에 대한 모스의 논의에서 이중성 만큼 중요한 것은, 여름의 개인주의적 삶과 겨울의 공산주의적 삶의 방식 사이에 어떤 상호관계가 있는가이다. 전혀 다른 삶의 패턴들 사이에 존재하는 패턴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모스는 호혜적 현상(reciprocal effects)이라고 표현한다. 이 저작에서 제시된 호혜으 문제가 20년 후 그의 『증여론』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다.
(권헌익, 2016: 132~133)
… 집단적인 전근대 공동체와 개인주의적 현대사회를 극명하게 가르고 이를 대비하는 데 익숙한 20세기 초반 사회이론의 주된 경향에 모스의 『에스키모…』는 전혀 함께하지 않는다. 현대인이 생각하는 전근대와 현대의 사회조직 형식의 모습이 사회진화의 직선적 시간의 틀에서 벗어나 이 두 다른 형식들이 하나의 사회적 공간에 공히 존재할 수 있다는 모스의 메시지는 파격젹이었다. … 어느 사회의 조직원리가 개인주의적이면서 동시에 공산주의적일 수 있다는 주장은 충격적인 것이다.
(권헌익, 2016: 133)
… 20세기 전반에 걸쳐 좌우논쟁 중 하나의 상징이 되었던 '개인'의 자유와 '공산'적인 삶이 상호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둘 다 모두 자연적인 것이며 둘이 함께 사회적 삶을 구성한다는 것이 모스가 『에스키모…』에서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모스의 이렇게 야심찬 전개에서 '호혜'는 중요한 연결고리였다.
(권헌익, 2016: 133~134)
… 인류학자 진 가이어가 지적하듯이, 『증여론』을 다시 모스가 쓴 다른 에세이들과 함께 꼼꼼히 읽어보면 거기에 나오는 호혜의 주제가 반드시 이론적 주제가 아니라 모스 자신에게 무척 중요한 도의적 문제였음을 알게 된다(Guyer, 2014).
(권헌익, 2016: 134)
모스에게 협동조합운동
『에스키모…』와 『증여론』 사이에 또 하나의 큰 사건은 1917년 러사아혁명이었다. 모스는 연보학파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또 폴라니가 그러했듯이) 영국의 공리주의와 이 철학사조의 급진적 개인주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연보학파의 지식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프랑스의 사회주의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는데, 모스 자신은 이의 연장선상에서 당시 서유럽의 일각에서 활발했던 협동조합운동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모스의 정치이론적인 의미에서 호혜에 관한 인식은 그의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에서도 보인다. 그는 협동조합을 제3의 세력으로 이해했는데, 이 운동을 통하여 개인주의와 집단의식, 그리고 사회결속과 개인의 자주성이 상호 모순관계까 아니라는 자신의 신념을 전개하였다.
(권헌익, 2016: 135)
협동조합운동에 대한 모스의 지극한 관심과 애정은 『에스키모…』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의 공리주의와 러시아식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 역시 그러하다. 모스에게 협동조합운동의 사회성은 기본적으로 자발적이라서, 유사한 사회성을 국가권력이 위로부터 폭력적으로 강제하는 혁명 이후 러시아의 현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화폐의 힘 자체를 부정하는 소련의 정치경제적 움직임 역시 그는 인정하지 않았다.
모스에게 협동조합운동의 의미는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삶의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모습을 회복하는 데 있었다. 이때 사회의 자연적인 모습이란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인간의 개인주의적 면과 사회적(혹은 집단적, 혹은 '공산'적) 모습을 균형되게 공히 발현할 수 있는 그런 사회이다. 즉 『에스키모…』에서 그가 그린 사람들의 모습이다.
(권헌익, 2016: 135~136)
호혜, 사회적 구성체의 이중성
… 호혜의 개념이 종종 "비화폐" 경제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김기태 외, 2014: 24). 사회적경제가 한편으로는 시장, 화폐와 다른 한편으로는 비시장, 비화폐의 혼성체로 정의될 때 호혜는 후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방식으로 개념적 이중구도의 틀 안에서 말하는 '호혜'는 모스가 이해한 '호혜'이 개념과 다르다. 모스가 말하는 호혜는 화폐/비화폐 경제 틀에서 한쪽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류의 구분을 넘어서서 즉 경제의 주된 형태가 선물경제든 화폐경제든 그 형식적 차이를 넘어서서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보편적인 이중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 사람의 삶이 개인주의적이면서 '공산주의'적이듯이, 인간의 교환 윤리는 선물과 화폐 차이에 국한되어 생각할 수 없다. 모스에게 호혜의 진정한 의미는 이렇게 현대문명과 현대사상을 나누고 양극화하는 형태들 사이에, 나눌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양극화하고 무관계로 만들 수는 없는 지평이 분명히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그러한 지평을 형상화하기 위한 노력 그 자체였다.
(권헌익, 2016: 137)
MAUSS, Marcel, 1925, "Essai sur le don: Forme et raison de l'échange dans les sociétés archaïques", L'Année sociologique, 1923~1924: 30~186,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마르셀 모스(저), 이상률(역), 2002(2011), 『증여론』, 한길사].
GODELIER, Maurice, 1996, L'Énigme du don, Flammarion, [모리스 고들리에(저), 오창현(역), 『증여의 수수께끼』, 2011, 문학동네].
권헌익, 2016, "사회적경제에서 '사회적'이란?", 김의영 외, 『사회적경제의 혼종성과 다양성』, 푸른길, pp.12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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