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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ELL, Signe, 2003, "Kinning: the Creation of Life Trajectories in Transnational Adoptive Families", Journal of the Royal Anthropological Institute, 9-3: 465~484, https://doi.org/10.1111/1467-9655.0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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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닝: 초국가적 입양가족에서 삶의 경로를 만들어내는 일

 

시그네 하웰

오슬로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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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노르웨이에서의 초국가적 입양(transnational adoption) 연구를 통해, 나는 ‘키닝(kinning)’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여기서 ‘키닝’이란 태아, 신생아, 혹은 이전까지 아무런 연결이 없던 사람이 친족적 언어(kin idiom) 속에서 표현되는, 중요하고 지속적인 관계 안으로 들여와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피와 살(flesh and blood)의 은유가 친족 관계의 핵심으로 강조되는 문화적 환경 속에서 입양이라는 현상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생물학적 관련성’과 ‘사회적 관련성’ 사이의 관계에 내재한 모호성과 모순들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종(race)과 민족성(ethnicity)의 문제들 또한 입양 부모가 수행하는 ‘키닝의 드라마’에서 핵심적으로 등장하게 되며, 나는 이것이 입양된 아이의 ‘체환(transubstantiation)’ 과정을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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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가족이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있어도, 초국가적으로 입양된 아이를 둔 가족은 어떤 의미에서든 여전히 달라요. 아이를 얻고, 가족을 만들어내는 일은 너무나 힘겨운 과정이라 그걸 해낸 사람들은 그 과정 속에서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 콜롬비아에서 딸을 입양한 노르웨이 어머니

 

1960년대 후반 이후, 노르웨이에서 국내 입양이 급감하면서, 초국가적 입양(transnational adoption)은 자녀를 가질 수 없는 부부들이 가족을 이루기 위한 점점 더 일반적인 수단이 되었다. 새로운 생식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구소련권에서 온 아이들의 입양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입양은 인류학자들로부터 놀라울 만큼 적은 관심을 받아왔지만, 사실상 그것은 우리가 ‘친족(kinship)’이라 부르는 개념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에 닿아 있으며, ‘관계됨(relatedness)’의 본질에 대한 오래된 질문에 새로운 빛을 던질 수 있다.

지난 4년 동안 나는 노르웨이의 초국가적 입양을 다양한 자료와 네트워크를 통해 연구해왔다. 나의 주요 관심은 입양을 통하여, 출산·재생산·가족·친족·아이·그리고 생물학적 관련성과 사회적 관련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화적 가치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데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나는 이 글에서 ‘키닝(kinning)’이라 부르는, 친족 연구에서 아직 탐구되지 않은 측면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키닝(kinning)’이란 태아, 신생아, 혹은 이전에는 아무런 연결이 없던 사람이 한 집단과 의미 있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 그 관계가 친족적 언어(kin idiom)로 표현되는 과정을 뜻한다. 나는 ‘키닝’이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각 사회는 다양한 통과의례(rites of passage)를 통해 새로운 구성원이 친족 주체화(kinned subjectivation)되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과정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인식되진 않았다.

오늘날 노르웨이에서 초국가적 입양이 공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문화적으로 ‘혈연(biogenetic connectedness)’을 친족의 전제 조건으로 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입양 부모들이 생물학적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나의 관심은 이처럼 지금까지 친족의 ‘숨겨진’ 차원(‘hidden’ aspect of kinship)에 향했다.

내가 주장하듯, ‘키닝’ 과정은 아이의 본질(essence)이 변형되는, 즉 ‘체환(transubstantiation)’[!]의 과정을 포함한다. 입양 부모들은 이 과정을 통해 아이를 자신들의 ‘친족적 경로(kin trajectory)’ 안에 편입시키는데, 이때 아이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몸과 관련된 문제가 중심에 놓이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이 과정은 긴장, 모호함, 이중적 감정, 그리고 모순들로 가득하다. 왜냐하면 입양 부모는 아이를 자신들의 친족 집단 안으로 들여오려는 동시에, 아이가 ‘알 수 없는 생물학적 가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 (역주) transubstantiation는 가톨릭의 ‘성체 변화’를 가리키는 용어로, 성찬 예식의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실체화되었다는 설명한다. 저자는 존재의 본질적 지위—즉 '누구의 아이인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가 변화하는 것을 설명하고자 용어를 차용한다. 글에서 번역어로 '성체 변화' 또는 '성변화' 아니면 '실체 변화' 적절치 않기에 '체환(替換, 갈아 바꾸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나는 주로 입양 부모들이 입양된 아이를 ‘친족(relative)’으로 만드는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 입양된 아이 자신이 새로운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만들어가는 과정—즉 자기 주체화 과정—은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키닝’은 분명 모든 당사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이전의 자기상(self)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부모들 또한 변한다. 사실 나는 입양 부모와 그 자녀가 서로를 상호주관적으로 재창조한다(recreate each other intersubjectively)고 주장하고 싶다.

입양아들은 키닝을 통해, 즉 다른 사람들과(주로 입양 부모와) 맺는 관계를 통해 자신의 인격(personhood)을 형성한다. 동시에 입양 부모 또한 아이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인격을 조정한다. 이렇게 서로 관계 맺으며, 이들은 모두 ‘친족된 사람들(kinned persons)’로서 고정된다(Faubion, 2001: 11~12).

 

오늘날 노르웨이인들이 사회 속에서 ‘나의 소속감’을 구성하는 방식은 친족의 언어(idiom of kinship)를 통해 나타난다. 이 친족의 언어는 ‘공유된 실체(shared substance)’로서의 생물학적 연결을 전제로 한다. 이때 ‘실체(substance)’에 대한 이해는 단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비물질적·비가시적 본질(insubstantial, invisible essence)도 함께 포함한다. 중요한 것은 실페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하느냐’이다(cf. Carsten, 2001).

예컨대 ‘피(blood)’는 하나의 실체이지만, 친족 관계 맥락에서 그 의미는 단순한 생물학적 유체가 아니라, 특정한 친족 범주들 간에 공유되는 관계적 성질에 있다. 같은 피를 나눈다는 것은 외모뿐 아니라, 성격·관심사·능력 등 비물질적 속성까지도 공유함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앤데르센(Andersen) 집안 사람’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이런 사회적 유사성을 공유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친족의 사회적 차원을 형성하며, 시간을 초월해 지속성을 부여하고, 개인을 넘어선 ‘삶(a life)’—즉 ‘개인보다 더 큰 어떤 것’—에 소속감을 준다(Roalkvam, 2001).

친족 체계는 필연적인 관계들의 구조를 전제한다. 그중 일부는 비대칭적이며, 그만큼 사회적 관계의 기대 또한 비대칭적이다. 따라서 아이 없는 어머니란 개념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어머니 없는 아들은 가능하다. 사람됨(personhood)을 이루기 위해, 아이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 고정되어야 하며,

그 관계를 통해 사회 전체와 연결된다.

입양아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그리며 살아갈 때, 그들은 두 부류의 중요한 관계자들과 관계를 조율해야 한다. 하나는 '생물학적 부모(biological parents)', 다른 하나는 '입양 부모(adoptive parents)'이다. 입양 부모는 이 드라마의 적극적 행위자이지만, 생물학적 부모는 대부분 침묵하고 실체 없는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친족 담론에서는, 비록 그들이 보이지 않더라도 ‘피의 유대(blood-tie)’라는 근본 은유 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생물학(Biology) ―보편적 기호인가?

 

에콰도르 고지대의 한 토착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입양 관행을 다룬 놀라운 연구에서, 바이즈만텔(Weismantel, 1995)은 친족 연구 전반에 고착된 ‘자연(nature)’과 ‘문화(culture)’의 이분법을 비판하며, 줌바가오(Zumbagua)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이해할 때 이러한 구분을 전혀 두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성관계, 임신, 출산이라는 신체적 행위는 두 성인 사이의 강한 유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다른 성인들도 아이를 자기 가족 안으로 들이고, 공동체의 나머지 구성원들이 먹는 것과 같은 실체(substances)로 그 아이의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그 아이를 물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모두 자기 자식으로 만들 수 있다.” (Weismantel, 1995: 695, 강조는 저자가 추가)

 

이 에스노그라피는 입양이 지식론적 문제로 전혀 작용하지 않는 다른 사회들에 대한 연구들과 더불어(Bowie, forthcoming; Meigs, 1986), 생식과 친족을 ‘생물유전적 이해(biogenetic understanding)’로 보편화하려는 시도를 명백히 거부한다. 이들은 생물학적 연결성(biological connectedness)을 특권적으로 여기는 담론이 지배적인 사회들에 대한 유효한 교정 역할을 한다. 바이즈만텔의 주장은 이렇다. 시간이 지나며 같은 음식을 함께 먹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단지 법적으로(jurally)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physically)도 ‘자신의 아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를 유럽-미국 사회의 집요한 주장과 대비시킨다. 즉 “신체적 관계됨(physical relatedness)을 오직 유전적 기준으로만 규정하며, 식습관과 운동, 그리고 역사적 맥락을 통해 사회가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인간의 몸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부정한다”는 것이다(Weismantel, 1995: 697). 나는 이 지점이 매우 흥미롭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것은 내가 노르웨이의 입양 부모들 사이에서 관찰한 여러 개념들과 깊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바이즈만텔이 제시한 ‘친족을 구성하는 요소들(kin-constituting factors)’—즉 함께 음식을 섭취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사람과 사물과의 신체적 근접성을 유지하는 것(Weismantel, 1995: 694)—에 나는 한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다. 그것은 ‘가족의 운명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shared creation of the family’s destiny)’이다.

이 모든 요소들은 입양 부모들이 자신과 아이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노르웨이 사회에서는 여전히 생물유전학적 설명(biogenetics)이 우세한 설명 틀로 작동한다. 입양 부모들은 아이를 ‘키닝(kinning)’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의 과제는 안데스 사회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도전적이다.

내가 다른 글(Howell, 2001)에서 제안했듯, 입양 가족들은 생물학과 사회성이 친족을 구성하고 규정하는 역할을 놓고 ‘둘 중 하나’를 택하는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맥락에 따라 어느 한쪽을 강조하거나 배경으로 돌린다. 즉, 그들은 동적 모델(dynamic model)의 친족을 실천한다. 이 모델은 개념적·의미적·도덕적 차원에서 생물학적 부모(genitor, genetrix)와 사회적 부모(pater, mater) 모두에게 자리를 마련해준다.

 

만약 친족'지속적인 관계를 실현하는 제도화된 행위 양식'—키닝(kinning)과 주체화(subjectivation)의 과정(cf. Faubion, 2001: 13)—으로 본다면, 그것은 반드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성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모든 범주는 그것에 참여한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의미를 부여받는다. 입양의 경우 이 점이 특히 분명하다. 생물학적 연결성이라는 ‘자명한 전제(doxic premise)’가 도전받는 순간, 그 전제는 스스로를 의식하는 대상으로 떠오른다.

내가 수집한 자료가 보여주는 것은 이렇다. 입양의 ‘키닝’ 경로는 매끄럽지 않으나 그것이 성공적으로 작동할 때, 그 결과는 ‘사회적인 (the social)'―친족의 사회적 질―을 생물학적 (the biogenetic)인 것보다 우위에 두는 일로 귀결된다.

 

 

 

# 시간적 실천으로서의 키닝(Temporal practices of kinning)

 

이제 나는 노르웨이 입양가족들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친족 관계―그리고 키닝(kinning)―의 사회적·시간적 실천 가운데 일부를 탐구하고자 한다. 나의 주요 관심은, 새 부모에게 배정된 이후 입양된 아이들에게 소속감(sense of belonging)이 어떻게 전달되는가 하는 방식에 있다. 나는 이것이 체환(transubstantiation)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부모들은 아이들의 서로 다른 생물학적·지리적·문화적 출신과 그들의 이전 관계를 고려해야 하며, 동시에 그들을 단지 현재뿐 아니라 새로운 가족과 친족의 과거 속에도 영구적으로 고정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만, 아이들은 가족의 미래를 함께 형성하는 통합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은, 모델(Modell, 1994: 238)이 제시한 ‘인위적이거나 허구적 친족(artificial or fictive kinship)’이라는 개념보다는, 내가 다른 곳에서 '자기 인식적 친족(self-conscious kinship)'이라 부른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Howell, 2001). 입양 부모들이 입양된 자녀와 관련하여 수행하는 ‘키닝 작업(kinning work)’의 단계들을 간략히 살펴본 뒤, 나는 ‘귀환 방문(return visits)’ 또는 ‘모국 여행(motherland tours)’—때로는 ‘뿌리 여행(roots tours)’이라고 불리는—의 몇 가지 함의를 논의한다. 이러한 여행은 입양된 십대나 젊은 성인 자녀를 둔 가족들이 아이의 출신국을 방문하는 것으로, 노르웨이에서 점점 인기를 얻고 있으며 ‘뿌리(roots)’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신문, 의회에서의 가족법 개정 관련 토론, 그리고 이 연구에 참여한 여러 대학원생들의 조사(Howell & Melhuus, 2001)를 살펴본 결과, 오늘날 노르웨이 사회에서 가족 가치(family values)가 매우 강하게 강조되고 있음이 명확히 드러났다. 국가의 이혼율이 50퍼센트에 육박함에도 불구하고, 핵가족은 여전히 이상적인 형태로 남아 있다.

노르웨이 성인들 중 상당수가 연속적 단혼(serial monogamy) 관계를 경험하며, 이러한 각 관계마다 자녀를 두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성인 부부들이 스스로 그리는 이상적 가족상은, 아버지와 어머니, 두세 명의 자녀, 정원 딸린 집, 시골의 별장, 그리고 조부모 및 성인 형제자매와의 긴밀한 교류로 구성된 삶이다. 이 이상은 정치적으로도 지지받고 있으며, 노르웨이의 출산휴가는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편에 속한다. 아버지가 자녀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강력한 규범적 권장이 이루어지고, 재정적 지원도 뒤따른다. 오늘날 많은 아버지들은 아내가 직장에 복귀하면 최소 한 달의 출산휴가를 사용한다.

따라서 '이성 중심 핵가족(heterosexual nuclear family)'이라는 이상은 높은 이혼율에도 도전받지 않는다. 단지 한 쌍을 이루는 파트너가 비교적 짧은 주기로 교체될 뿐이다.

 

내가 던진 개방형 질문 “왜 아이를 갖고 싶었나요?”에 대해, 거의 모든 입양 부모들은 ‘정상적인 가족(normal family)’이 되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비교하자면, 노르웨이 여성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 출산을 경험한다. 40세가 될 때까지 약 92퍼센트의 여성들이 한 번 이상 출산한 것으로 나타났다(Sundby & Schei, 1996). 이 사실과 자녀와 가족생활의 바람직함에 대한 문화적 강조를 함께 고려하면, 25세에서 45세 사이 대부분의 성인들의 사회생활이 자녀 양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출산하지 못한 부부들에게는 큰 압박이 가해진다. 입양 부모들은, 아이 없이 ‘정상적인 가족’이 되지 못하면 주변 사회적 삶에 참여할 수 없었고 자신들이 그 사회적 세계에서 영원히 배제되어 있다고 느꼈다고, 반복해서 이렇게 말했다.

변화하는 젠더 모델 속에서, 불임(childlessness)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고통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임신 실패와 보조 생식 실패(assisted conception failure)를 겪은 뒤, 입양은 비자발적 불임 부부(involuntarily infertile couple)의 공동 사업(joint venture)이 된다. 실제로 많은 부부들은 나중에 이렇게 회상한다. 입양을 통해 두 사람 모두 아이의 ‘출생’과 이후의 키닝(kinning)에 동등하게 기여했다고 말이다. 이것은 입양의 긍정적 측면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 동안 입양 부부들의 태도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자신의 몸으로 아이를 ‘생산’하려던 시도에서, 이제는 다른, 그리고 알 수 없는 몸들이 낳은 아이들을 찾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들은 주저함 없이 입양바람직한 출산 방법으로 칭한다. 한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입양은 우리에게 아이를 갖는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아이가 ‘다른 몸들(other bodies)’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대개 그 다른 몸들은 노르웨이의 규범적 외모와 다른 외양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이 낳은 아이들도 새로운 부모와 닮지 않았다. 더욱이, 이 아이들은 문화와 전통이 이질적인 먼 나라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사실들은 입양 부모들에게 양가적 태도(ambivalent attitudes)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이 사실을 숨길 수 없으며, 자녀와의 관계, 그리고 사회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든 다루어야 한다. 나는 다른 곳에서 주장했듯이, 부모들은 구체적인 맥락과 부모-자녀 관계의 단계에 따라 관계의 속성을 생물학화(biologizing)하거나 비생물학화(de-biologizing)함으로써 이를 처리한다. 즉, 어떤 맥락에서는 관계의 생물학적 측면을 전면에 내세우며 사회적 측면을 배경으로 돌리고, 다른 맥락에서는 그 순서를 뒤집는다. 부모들은 이러한 맥락들 사이에 인지적 경계를 설정하고, 인류학자의 눈에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입장들을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게 다룬다(Howell, 2001).

 

 

#자아의 체환: 외국인에서 노르웨이인으로

 

피(blood)는 노르웨이에서 혈통과 '친족 관계됨(kin relatedness)'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은유이며, 슈나이더(Schneider, 1968)가 연구한 미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피에 의해 구성된 범주에 근거한 관계됨은 자동적으로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기대를 수반한다. 이전에 서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친척(i slekt)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상호작용의 질이 달라진다. 시간의 흐름, 지리적 거리, 상호작용의 부재는 피의 연결이 한 번 성립되면 관계됨의 경험에 대한 장애가 되지 않는다. 현재의 의미 있는 소속감은 노르웨이의 사고방식에서 과거에 대한 입증 가능한 소속감에 의존한다. 물론, 미래는 이러한 연속성 위에서 전제되며, 그 연속성의 재생산은 ‘친족된 관계(kinned relationships)’와 ‘친족된 장소(kinned places)’에 고정된다.

이는 입양 상황과는 정반대다. 피가 친족된 관계를 표현하는 지배적 은유일 때, 입양 가족은 문제에 부딪힌다. 시간적·공간적 근접성만으로는 공유된 살(flesh), 피, 그리고 역사(history)의 부재를 보상하지 못한다. 입양 부모들은 이 결핍을 보완해 키닝을 성취해야 하며, 나는 입양 부모들이 입양된 아이가 오기 전후에 수행하는 많은 일들이 아이의 체환(transubstantiation)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간략판 옥스퍼드 영어사전(Shorter Oxford English Dictionary)에 따르면, 체환(transubstantiation)이란 첫째, '하나의 실체(substance)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며, 둘째, 성찬례(Eucharist)의 경우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 이때 “빵과 포도주의 외적 모습(appearance)과 다른 ‘우연적 성질(accidents)’은 그대로 남는다”(강조는 인용자).

나는 이것이 입양 부모들이 수행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시사적이라고 본다. 형태와 내용을 함께 바꾸는 변형(transformation)과 달리, 체환은 외적 형태는 변하지 않으면서도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초국가적으로 입양된 아이들의 경우, 그들이 부모의 친족 안으로 편입되는 것은 피의 유대(blood tie)의 제약을 넘어서는 것이며, 외적 외모는 그대로 남는다. 즉, 실체(생물학적 몸)는 유지되지만, 사회적 실체(social essence)—존재(being), 자아(self)—가 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체환이 시간이 흐르며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이 시간적 과정을 네 가지 주요 단계―임신 이전(pre-pregnancy), 임신(pregnancy), 출산(birth), 그리고 일상생활(daily life)―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용어는 관련 당사자들에 의해 사용된다. (이 단계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Howell, 2001을 참조할 것.)

 

 

#입양아의 키닝

 

‘임신 이전(pre-pregnancy)’ 단계는 한 부부가 아이를 갖기로 결정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지속적인 임신 실패는 일련의 의료 검사로 이어지며, 여기에는 새로운 생식 기술의 사용이 포함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입양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은 길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이 결코 주어지지 않은 하나의 소망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한 입양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입양을 결정한 뒤 대부분의 부부는 불임에 대한 슬픔을 뒤로하고,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에 집중한다. 입양 부모로서의 자격 기준은 엄격하고 규범적이다. 부부는 입양 기관에 등록하고, 아이가 배정될 나라를 선택한다. 국가 입양국이 허가를 내면, 해당 국가로 공식 신청서가 발송된다.

이 시기는 부부가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home made)’ 아이를 갖는다는 기대를 조정하고, 낯선 존재를 입양한다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시기다. 대부분은 이 시기 동안 상당한 자기 성찰(self-examination)에 몰두한다. 처음에는 생물학적 관점에 무반성적으로 집중하지만, 점차 입양을 긍정하는 문화주의적 접근으로 이동한다. 이 시기에 그들은 외국의, 알 수 없는 생물학적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신과 외모가 다른 아이를 받아들일 정신적·정서적 공간을 형성한다.

 

‘임신(pregnancy)’은 부부가 노르웨이 당국의 승인을 받는 순간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임신과 달리 그 기간은 불확실하다. 예비 부모는 아이가 해당 국가에서 배정되어 자신들에게 주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증국(donor country)에 따라 이 기간은 6개월에서 3년까지 걸릴 수 있다. 이 시기 동안 입양 기관은 예비 부모를 준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기관은 예비 부모들에게 초국가적 입양(transnational adoption)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룬 잡지, 소책자, 서적을 제공한다. 또한 예비 입양 부모들이 관련 문헌을 함께 읽고 개인적 희망과 두려움을 나누는 준비 모임(preparatory courses)을 조직한다. 이 기관들은 태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공동체적 환경 속에서 부모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지닐 수 있는 여러 함의를 마주하게 된다. 임신 단계는 생물학과 사회성(sociality) 사이에서 참조점을 형성하는 혼합적 담론과 급격한 전환의 시기다. 또한 아직 식별되지 않은(as-yet-unidentified) 아이가 예비 부모의 정체성 속으로 통합되어 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배정이 이루어지면, 나는 그 시점을 ‘출산(birth)’의 시작이라 부를 수 있다고 본다. 출산은 배정 이후, 아이가 도착하고 도착 직후의 기간까지 이어진다. 배정이 이루어지면, 예비 부모는 아이의 사진과 개인 정보를 받는다. 이때부터 멀고 보이지 않던 아이를 자신들의 아이로 만들어 가는 키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진은 복제되어 널리 배포되고, 아이의 방이 준비된다. 한 입양 어머니의 진술은 전형적이다. “입양 기관에서 전화가 걸려온 그 순간부터 그 아이, 사브란(Savran)은 우리 아들이었어요. 그를 본 적도, 사진으로 본 적도, 안아본 적도 없었지만, 그가 우리의 아들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어요”(Beheim Karlsen, 2002: 15).

그러나 실제로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가기까지는 몇 달이 더 걸릴 수 있다. 이 시기 동안 부모들이 아직 만나지 못한 아이에게 쏟는 정서적 몰입은 강렬하다. 입양이 확정되기 전에 배정된 아이가 사망한 한 부부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마을 교회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한 가운데, 보지 못한 딸을 공개적으로 추모하는 추도식을 열었다 (Adopsjonsforum, April 1999: 21).

 

입양아가 노르웨이에 도착하면, 그들은 '백지 상태(tabula rasa)'로 취급된다. 사실상 ‘재탄생(rebirth)’과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의 주요 행위자는 부모, 행정관료제(bureaucracy), 사법기관(judiciary)이다. 이들 모두가 아이의 체환(transubstantiation)을 담당한다.

각 아이는 새로운 이름, 새로운 시민권, 새로운 출생증명서, 새로운 친족과 가정, 새로운 사회적·문화적 기대, 그리고 가족을 넘어서는 새로운 관계들을 부여받는다. 이 시기는 아이의 출신을 비생물학화(de-biologize)하고, 아이의 본질을 체환시키려는 극단적 노력이 특징적인 시기다. 그 궁극적 목적은 아이를 부모의 친족 네트워크 속으로 키닝(kinning)하는 것이다.

 

 

#조상 땅에 아이를 심기

 

친족(kinship)은 사람들을 공유된 시간적·공간적 우주 속에서 서로 연결시킨다. 특정 장소에 속한다는 것은 노르웨이 정체성을 구성하는 개인적 내러티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까지도 노르웨이 인구의 대부분은 세대를 거쳐 부계적으로 토지를 상속받은 소규모 자영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친족된 관계(kinned relatedness)’는 ‘친족된 장소(kinned places)’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정체성과 인격(personhood)의 형성에 핵심적인 요소다.

이러한 맥락에서 입양 부모와 그들의 자녀에게 주어진 질문은 ‘공유된 역사(shared history)의 부재’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이다. 외국의 미지의 사람들과 함께한 과거의 사실을 인정하고 다루되, 그것을 자녀의 ‘노르웨이됨(Norwegianness)’에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은 도전적인 과제가 된다. 아이를 친족과 연관된 장소에 배치하고, 노르웨이의 지역 전통 의상(부나드, bunad)을 입히는 일(아래 참조)은 이러한 체환(transubstantiation)을 용이하게 하는 흔한 방식이다.

입양 부모들이 아이가 도착한 뒤 몇 년 동안 원 출신국(donor country)의 기관에 제출해야 하는 여러 보고서를 검토해보면, 입양아를 그들의 ‘기원(origin)’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새로운 사회적 환경에 통합시키려는 노력이 분명히 드러난다.

 

보고서에서 부모들은 아이가 조부모, 삼촌, 고모, 이모들에게 얼마나 환영받았는지, 사촌들과 얼마나 즐겁게 노는지, 새로운 집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를 강조한다. 첨부된 사진들은 이러한 메시지를 확인하고 구체화한다. 아이들은 노르웨이 가족생활과 친족됨의 이상을 상징하는 장소들에서 촬영된다. 즉 조부모와 친척들이 사는 조상들의 마을, 크리스마스나 대가족 기념일 같은 의례적 행사, 노르웨이 국경일(Norwegian National Day) 축제, 산속의 별장, 숲, 바닷가 등에서 전형적인 야외 활동을 하는 모습들이다.

이 사진들 속에서 아이의 출신국을 암시하는 요소는 거의 없다. 옷차림은 철저히 노르웨이식이며, 중요한 행사에서는 국가 전통의상부터 일상적인 아동 야외복까지 다양하다. 이 보고서들이 원조국 기관에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히 '비(非)노르웨이적 외모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전형적인 노르웨이 아이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입양된 아이를 조상의 장소나 ‘소속의 장소’에서 사진으로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아이는 상징적으로 그곳에 ‘심어진다(planted)’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출신지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노르웨이어를 배우면서 동시에 노르웨이 음식을 좋아하게 되고, 노르웨이식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입양 부모들의 시각에서 볼 때, 그들의 새 아이는 ‘집으로 돌아온(come home)’ 것이다. 이것은 모든 입양 기관이 사용하는 관용어다. 기관들은 매년 각 입양국별로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의 수를 보고한다. ‘귀환(coming home)’이란 표현은, 그 아이가 마침내 원래 있어야 할 곳에 도달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언어적 전략을 통해 생물학적·국가적 기원은 배경화(backgrounded)되고, 원 출신국의 생물학적 부모들은 ‘임시 보호자(temporary caretakers)’로 전환된다.

 

이처럼 입양된 아이들을 ‘부모의 조상들의 땅에 상징적으로 심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그들의 체환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아이는 부모의 친족망에 통합되고, 생물학은 무의미해진다.

또 다른 방식은 ‘운명(fate)’의 담론을 포함하는 기원 서사를 창조하는 것이다. 내가 만난 많은 부모들은 고아원 원장들이 자신들과 가장 잘 맞을 아이를 —외모가 아니더라도 성격이나 관심사 면에서— 신중히 선택한다고 믿고 있었다. 부모들은 특정 아이의 선택이 단순한 우연의 결과라고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는 서로를 위해 태어났다(are meant for each other)’고 말한다.

 

한 건장한 노르웨이 아버지는 새로 배정받은 에티오피아인 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여섯 달 된 아이는 분명 내 아들입니다. 우리 둘 다 체격이 비슷할 뿐 아니라, 나처럼 이 아이도 농사, 낚시, 사냥 같은 야외생활에 딱 맞게 태어났어요”.

그러나 특정한 맥락에서는 아이의 다른 출신이 강조되기도 한다. 입양 가족들은 인도협회(India Association), 콜롬비아협회(Columbia Association) 등 각국 출신 아동의 부모들이 함께하는 연례 모임에 참여한다. 그들은 아이의 출신국 음식을 함께 먹고, 그 나라의 공예품으로 장소를 장식한다. 또한 아이들에게 본국의 전통 의상을 입히기도 한다. 이러한 자리에서는, 오히려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을 ‘정상적인(normal)’ 가족으로 구성한다. 이 특별한 공유된 상황(shared situation)은 입양 부모들 사이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한다(Howell, 2002).

 

또한 아이를 데리러 갈 때 함께 여행하고 머물렀던 부모들 사이에는 공동의 ‘기원’이 형성된다. 낯선 도시, 고아원, 호텔이 그들 사이의 공유된 출신지(shared places of origin)가 된다. 준비과정에서 만난 부모들끼리도 긴밀한 유대를 쌓으며, 휴가철에 서로를 방문하고 아이들의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서로를 ‘친척(i slekt)’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며, 부모들은 자신의 특수한 상황이 가진 역설을 해결하고자 한다. 즉, 한국(또는 다른 출신국)의 이름으로 노르웨이식 사회관계에 참여하면서 말이다. 모두가 이것이 실제 혈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의 관계는 분명한 친족적 형태를 띠며, 입양 부모들의 모임은 일종의 가족 재회로 해석될 수 있다. 겉으로는 다르게 보이더라도, 내가 보기에 이때 축하되는 것은 ‘한국됨(Koreanness)’이 아니라 ‘노르웨이됨(Norwegianness)’이다.

 

 

#파키스탄의 몸 속의 노르웨이 마음?

 

노르웨이에서 족보적 지식(genealogical knowledg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과 밀접하게 관련된 현상으로, 국가 전통의상(부나드, bunad)을 입는 것에 대한 관심 또한 증가하고 있다. 부나드는 세례, 견진성사, 결혼식, 생일 등 친족 집단 내 통과의례(rites of passage)에서 착용되며, 크리스마스나 노르웨이 국경일(Norwegian National Day, ‘어린이의 날’ barnas dag라고도 불림)에도 입는다.

부나드는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각 스타일은 그 지역의 특정한 전통과 연결되어 있다. 여성과 소녀의 부나드는 자수를 놓은 모직 스커트와 조끼, 흰 블라우스, 앞치마, 머리장식으로 구성되며 은 브로치가 함께 착용된다. 각 지역에는 남성용 부나드도 있는데, 모직 바지, 은 단추가 달린 자수 조끼, 그리고 뾰족한 펠트 모자를 포함한다. 이론적으로는, 특정 지역에 대한 정당한 혈통적 출신을 입증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지역의 전통 의상을 입을 자격이 있다.

부나드는 19세기 중반의 낭만주의에서 비롯된 산물로, 자연과 농촌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전통의 발명(invention of tradition)’의 대표적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나드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상상 속에 깊이 뿌리내려 국가 정체성의 일부로 통합되었다(Witoszek, 1998).

 

최근 오슬로에서 열린 노르웨이 국경일 기념행사에서는 출생, 피, 장소, 국적 간의 긴밀한 연관성을 상징하는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파키스탄 태생의 여성 이민자 루비나 라나(Rubina Rana)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노르웨이에 이주했고, 이후 노르웨이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오슬로 시의회(Oslo City Council)의 몇 안 되는 이민자 의원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2000년 국경일 행사 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도심을 행진하는 대규모 학생 퍼레이드를 이끌게 되었다. 아이들은 노르웨이 국기를 흔들며, 수많은 학교 악단이 연주하는 국가적 노래에 맞춰 노래했다. 행진은 왕궁 앞에서 절정에 이르며, 왕실이 ‘노르웨이 가족’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파키스탄 여성’을 이 행사의 선두에 세운 결정은 언론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익명의 위협 편지를 받았으며, 그중 일부는 살해 협박이었다. 논쟁의 핵심은 '그녀가 그날 무엇을 입을 것인가'였다. 대부분의 노르웨이인들은 당연히 부나드를 입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와 골짜기에 대해 아무런 혈통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으므로, 부나드를 입을 자격이 없었다. 그렇다고 만약 그녀가 남아시아의 전통의상(살와르 카미즈 salwar kameez나 사리 sari)을 입었다면, 그것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발적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 무렵 오슬로시는 건국 1,000주년 기념을 위해 다음 해에 사용할 도시 전용 부나드를 새로 제작하도록 주문했었다. 루비나 라나는 국경일에 이 새 부나드를 착용하고 첫 공개식을 진행하도록 초대받았다. 이 일은 이전보다 훨씬 덜 논쟁적이었다. 오슬로 부나드와 이 파키스탄 태생 여성 정치인은 모두 오슬로라는 ‘장소’와 연결되어 있지만, 둘 다 노르웨이의 역사 속에서는 ‘신참자(newcomers)’이다. 그들은 기존의 질서에는 속하지 않지만, 상징적으로 이번 사건은 노르웨이 사회생활의 새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즉, 이전까지 비교적 동질적이고 농촌 중심이던 사회가 점점 더 이질적이고 도시화된 사회로 나아가야 함을 뜻한다. 전통은 없지만 부나드를 입는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이민자들이 머물고 참여하는 미래—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였다. 그들은 같은 장소를 공유하지만, 역사를 공유하지 않는다.

이 사건은 노르웨이 문화 속에서 ‘출신지(place of origin)’, ‘친족 관계됨(kin relatedness)’, ‘정체성(identity)’ 간의 강한 연관성을 드러낸다. 시간은 본질적이다. 즉, ‘노르웨이됨(Norwegianness)’은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친족 기반의 연결(kin-based connectedness)과 장소적 연속성 안에서만 주장될 수 있다.

사람됨(personhood)은 ‘공유된 실체(shared substance)’와 ‘공유된 본질(shared essence)’을 통해 달성된다. 이 연결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친족의 언어다. 그러나 새로운 오슬로 부나드는 오슬로와 노르웨이 국가에 새 시민들이 편입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를 제공한다. 혈통을 통한 친족 주장이 불가능한 경우, ‘장소에 대한 귀속’이 그 대체물이 될 수 있다. 이 예는 입양가족이 직면한 문제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파키스탄 이민자가 자신의 ‘도착의 개인적 역사(personal history of arrival)’ 외에는 노르웨이에 대한 시간적 혹은 공간적 연결을 주장할 수 없는 것과 달리, 해외에서 입양된 아이들은 입양 부모에 의해 ‘기존 친족 네트워크와 역사’ 속으로 ‘후원(sponsored)’된다.

입양 부모들은 아이의 주체성(subjectivity)을 체환(transubstantiation)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이를 위해 입양된 아이에게 부나드를 입히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아이들이 어머니나 아버지의 조상지(ancestral place)의 부나드를 입은 사진이 입양기관 잡지에 실리고,

또한 원 출신국에도 보내진다. 그들의 부나드 사진은 친척들의 집에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루비나 라나의 경우와 달리, 입양아가 부나드를 입는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입양되고, 친족으로 엮이고, 체환된 그들은 형식적·정서적 차원 모두에서 생물학적 자녀와 동등하다.

이것은 또한 ‘동일성(sameness)’과 ‘타자성(otherness)’의 문제를 다시 드러낸다. 입양아의 경우, 타자성은 부정되고 ‘상상된 동일성(imagined sameness)’(Gullestad, 2000: 45)이 성취된다. 이는 다른 이민자들에게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다.

이 맥락에서 친족은 ‘주체화의 체제(a regime of subjectivation)’(Faubion, 2001)로 이해될 수 있다. 체환과 키닝의 과정을 통해, 입양 부모들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구분되는 ‘사회적인 것(the social)’과 ‘생물학적인 것(the biological)’의 경계를 소거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들의 자아감(sense of self)과 사람됨(personhood)을, 비생물학적 친척과의 관계 속에서 통합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된다.

 

 

#국경을 넘어 입양된 아이의 키닝에 내재된 역설들

 

국경을 넘어 입양된 아이의 체환(transubstantiation)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그 아이를 친족의 언어(kin idiom)로 표현되는 더 넓은 관계망 안에 고정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이것은 아이가 도착한 순간부터 입양 부모가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입양의 주된 동기는 가족을 만들고, ‘정상적인 가족생활(normal family life)’을 영위하며, 기존의 친족과 새로운 관계의 형태를 수립하기 위한 것이다. 스스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부부에게는, 이는 일종의 가치 상실—‘남편/아내로서의 가치’를 축소하는—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가 도착하고 나면, 부모들은 아이가 더 넓은 친족 네트워크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다.

실제로 연구들은, 입양된 아이들이 생물학적 자녀들보다 조부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점을 보여준다(Botvar, 1994: 18). 이는 아이를 부모의 친족적 궤적(kinned trajectory) 속에 통합시키기 위한 의도적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부모는 아이에게 ‘친족적 미래(a kinned future)’를 보장하려 한다. 자신들의 친족과의 빈번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생물유전적 관련성(biogenetic relatedness)의 결여는 무의미해진다.

 

앞서 언급했듯이, 입양 부모들은 ‘좋은 부모(good parents)’가 되는 것에 매우 신경을 쓴다. 입양기관들은 부모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조직하여 이를 지원한다. 노르웨이에서 입양 부모가 된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자신의 지위에 대한 높은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과 반성(reflexivity)을 요구한다. 이는 동시에 아이의 발달에 대한 불안하고 지속적인 점검으로 이어진다.

입양된 아이의 키닝은 분명 생물학적 자녀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입양 부모들은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가족’이 되고자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이 되는 특별한 조건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경우 부모들은 (피상적인 수준을 제외하면) 아이의 특별한 출신을 무시하고, 아이를 체환(transubstantiation)시키기 위한 노력에 신뢰를 둔다.

동시에, 입양기관·심리학자·전문가 등 외부의 목소리들은 부모들에게 아이의 차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그가 ‘본래의 문화(original culture)’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가르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주장 속에는 ‘자신의 뿌리를 알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망’이 전제되어 있다. 이 주제는 언론과 국회에서도 반복적으로 다루어진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인 〈토레가 그들을 찾아준다(Tore på sporet)〉는 ‘올해의 방송인(Television Personality of the Year)’ 상을 여러 차례 받은 진행자 토레 스트뢰모이(Tore Strømøy)가 실종된 가족 구성원을 찾아주는 내용으로, 감정적이고 극적인 재회 장면으로 유명하다. 해외 입양인들도 여러 차례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시청자들이 자신의 생물학적 가족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향은 입양인들의 생물학적 뿌리에 대한 ‘보편적 욕망’이 존재한다는 문화적 통념을 강화한다. 2002년 노르웨이의 생명공학법(Bio-Technology Act) 논의에서 정치인들은 정자·난자 기증과 같은 ‘보조 생식(assisted procreation)’ 관련 사안에서 “조화로운 성인으로 성장하려면 생물학적 부모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는 전제를 거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결국 익명 기증(anonymous donation)은 금지되었다.

1986년 제정되고 1999년에 일부 개정된 입양법(Adoption Act) 역시 복합적 메시지를 전한다. 한편으로는 입양아와 생물학적 자녀가 법적·사회적으로 완전히 동등하다고 명시하지만, 동시에 성년에 도달하면 생물학적 부모의 신원을 알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나와 다른 연구자들(Botvar 1999; Brottveit 1999)에 따르면, 실제로 이러한 강한 욕구를 가진 입양인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소수는 매체에서 크게 주목받으며, 결과적으로 '“모든 입양인은 자신의 부모를 알고 싶어 한다'는 믿음을 강화시킨다.

 

노르웨이 사회 전반에서 생물학적 관련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입양기관들은 부모들에게 기증국(donor country)의 문화를 배우고 아이에게 익숙하게 하도록 점점 더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문화(culture)’는 매우 고정되고 피상적이다. 음식, 의복, 공예품 등 소비 가능한 문화적 표식(cultural markers)에 한정되어 있으며,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문화적 차이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입양기관이 예비 부모에게 제공하는 자료에서도, 원출신국의 사회·경제·정치 제도나 현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인터뷰에 응한 부모들 또한 이러한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많은 부모들은 관계의 ‘비생물학적 성격(non-biological quality)’을 더 솔직히 인정하게 된다. 이는 체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부모들은 아이가 자신과는 다른 생물학적·민족적 기원을 지녔다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나는 이른바 ‘입양 부모의 딜레마(adoptive parents’ dilemma)’, 키닝 과정에서 아이의 생물학적 기원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사회적·정서적 문제의 하나의 해법이 아이의 출신국을 방문하는 가족 귀환 여행(family return visits) 속에서 발견된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이 방법은 점점 더 많은 가족들에 의해 실천되고 있다.

 

 

#‘뿌리’: 귀환 방문(또는 ‘모국 여행’)

 

출신(origin), 혈통(descent), 족보(genealogy)의 중요성은 서구의 다양한 사람됨(personhood)과 정체성 담론 속에서 널리 퍼져 있다. 이 담론과 점점 더 밀접하게 연결되는 개념이 ‘뿌리(roots)’이며, 이는 노르웨이의 국제입양 담론을 형성하는 의견 주도층 사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최근까지도 국제입양아는 일종의 ‘백지 상태(tabula rasa)’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그들은 ‘알 수 없는 경험과 유전자를 가득 담은 배낭(backpack)을 메고 도착한 아이들’로 이야기된다(Howell, forthcoming).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들의 처지에 내재한 모순들이 점점 피할 수 없는 것이 되며, 부모들은 입양된 자녀와 함께 이에 대한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 입양 담론에서 ‘뿌리’는 핵심 상징(key symbol)이 되었고, ‘귀환(return)’, ‘모국(motherland)’, 또는 ‘뿌리(roots)’ 여행이라는 중요한 장면(key scenario)을 만들어냈다(cf. Ortner 1973). 이러한 여행은 입양된 아이의 출신국을 방문하는 것이다.

나는 입양 부모들이 이러한 여행을 자신들의 ‘입양 부모 됨(being adoptive parents)’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로 점점 더 중시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현상은 서구 문화 전반에서 강화되고 있는 ‘뿌리’에 대한 강조와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인이나 다른 유럽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족보 연구에 대한 집착이 커지고 있으며, 개인의 출신지(place of origin)에 부여되는 가치가 높아지고, 언론에서도 유전학(genetics)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모국 여행(motherland tours)’은 인종, 자연, 문화에 대한 서구 담론 속 혼란을 드러낸다.

 

‘뿌리’에 대한 관심이 최근 들어 급속히 확산되었지만, 입양기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입양아의 출신국으로 가는 귀환(또는 모국) 여행을 조직해왔다. 입양된 아이의 출신국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는 것은 기관들이 점점 더 권장하는 일이 되었다. 내가 참석했던 부모 교육과정(parenthood preparatory courses)에 참여한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출신국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할 뿐 아니라, 직접 그 나라를 ‘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이러한 여행의 명시적 목적은 생물학적 가족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이가 자신의 ‘이중 정체성의 근원(dual source of identity)’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이면에, 아이가 ‘친족적으로 노르웨이 사람(kinned Norwegian person)’이라는 게 확인되는 욕망이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모국 여행’ 보고서는 입양기관의 간행물에서 자주 등장한다. 또한, 개별 입양인이 (대개는 생모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는 기사들도 있다.

하지만 실패담은 보고되지 않는다. 성공담만 실린다. 예컨대, 한 기관지의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성인 국제입양인, 보고타의 거리 아이들 속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다”. 이는 콜롬비아의 고아원에서 세 살 때 입양되어 노르웨이로 온 한 소녀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거리의 아이가 되지는 않았지만, 여행을 통해 자신이 ‘그 운명을 가까스로 벗어났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을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생물학적 가족을 만나지도, 만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Adopsjonsforum, 1999.9.: 17).

 

조직적인 귀환 여행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입양아의 ‘배낭(backpack)’ 속에 담긴 내용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기면서, 부모들은 아이(그리고 자신)에게 그 배낭을 열어 안을 들여다볼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 그들은 아이의 ‘문화적 뿌리(cultural roots)’를 알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아이의 개인사(personal history)에서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고 싶어한다.

한국으로의 여행에 참여한 부모들은 “퍼즐의 또 하나의 조각이 제자리에 들어갔다”고 끊임없이 외쳤다. 하지만 이러한 귀환 여행을 선택하는 부모와 자녀의 동기는 복합적이다. 국제입양 세계의 다른 많은 현상과 마찬가지로, 귀환 여행에 대한 태도 또한 양가성과 모호성(ambivalences and ambiguity)으로 가득 차 있다. 부모들이 실제로 아이의 출신국이나 개인적 과거를 알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들이 만든 새로운 가족의 ‘현실’을 재확인하기 위한 것이 주된 동기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으로의 ‘모국 여행’

 

"‘피는 물보다 진하다(Blood is thicker than water)’는 문장은 친족 연구에서의 격언일 뿐 아니라, 유럽 문화의 근본적인 공리(axiom)다. 이 명제가 생물학적으로 참이라 해도, 그리고 과학적으로 입증된다 해도, 문화는 언제나 그 사실에 의미를 덧붙인다. 문제는 그 사회문화적 측면이 무엇이며, ‘의미(meaning)’가 생물학적 사실로서가 아니라 ‘의미로서’ 다른 의미들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리는 사회생물학자들에게조차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그들은 가까운 친족 관계의 일부 측면만을 설명할 뿐이며, 많은 부분은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채 남는다" (Schneider 1984: 199).

 

슈나이더(Schneider)의 이러한 통찰은 내가 직접 참여했던 한국 방문—13가족이 함께한 귀환 여행—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출발 전, 나는 참가 가족 전원을 인터뷰했다. 아이들의 나이는 13세에서 30세까지였고, 대부분은 15~17세 사이였다. 그들 대부분은 두 살 이하의 나이로 노르웨이에 도착했다. 입양된 아이들은 “자신의 출신국(country of origin)을 직접 보고 싶다”고 막연히 말했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머물렀던 고아원을, 다른 아이는 태어난 마을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여행의 의미는 아이들보다 부모에게 더 컸다. 여행 전후로 그 인상은 더욱 분명해졌다. 실제로, 여행을 주도하고 계획한 것은 부모였으며,

부모들이 아이들보다 이 여행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사실은 인도 방문 경험이 있는 다른 입양가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Howell & Hermansen, 2001).

노르웨이의 모든 한국 입양은 홀트(Holt)라는 단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단체는 한국전쟁 직후 한 미국인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서울 본부를 중심으로 여러 시설을 운영한다. 예컨대 입양되지 못한 장애아를 위한 고아원, 그리고 전국에서 입양이 결정된 아이들을 잠시 보호하는 단기 보호소 등이 있다. 아이들은 임시 위탁모의 돌봄을 받다가 해외 가족에게 보내진다. 이번 귀환 여행은 이 홀트 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 직원 한 명이 동행하여 일주일 동안 한국 각지를 버스로 함께 돌았다.

 

한국에서 부모들은 도착 순간의 ‘의미’를 강조했다. 고아원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이의 기록 파일을 열람할 때, 출생 병원을 방문할 때, 혹은 아이가 버려졌던 마을회관의 계단에 섰을 때. 아이들은 모두 즐겁게 참여했지만, 표면적으로는 행사보다 쇼핑이나 음식에 더 큰 흥미를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이들 또한 자신들의 ‘과거의 특별한 질감’을 체험하는 듯했다.

신생아용 아기 침대가 줄지어 놓인 방에서 입양 부모들을 기다리며 누워 있던 아기들이 있었던 그 방들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아기 방이 약 2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은 곧, 벽의 페인트조차 자신들이 그곳에 있었던 그 시절 그대로라는 뜻이었다. 이 정보는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감탄사를 이끌어냈다. “생각해 봐요, 나 이 침대에 누워 있었을 수도 있잖아요.” “이 방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는데, 내가 여기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상해요.”

아이 개개인의 파일에는 새로운 정보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문서들에 직접 손대고 접촉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듯했다.

자신의 초기 삶에 대한 기록을 원형 그대로 읽고, 입양원이 자신들을 처음 찍어둔 사진을 직접 손에 쥐고 보는 경험은 ‘내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에 대한 물리적 확인을 제공했다.

17세 한 소년은 내게 말했다. “이제 난 내가 ‘과거(past)’를 가지고 있다고 느껴요.” 기숙사의 물질성, 그리고 서류 파일의 물질성은 그 과거에 실체를 부여했다.

 

이런 귀환 방문을 통해, 아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들의 ‘본래 정체성(original identities)’으로 되돌아간다. 체환(transubstantiation)은 일시적으로 중단된다. 비유하자면, 그들은 —적어도 잠시 동안은— 단지 ‘포도주와 빵일 뿐’이다. 혹은 정말 그런가?

이 노르웨이적 정체성의 중립화는 한국 입양기관의 태도에 의해 뒷받침된다. 그 기관은 아이들의 ‘한국성(Koreanness)’을 강조한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999 홀트 가족 & 모국 방문(Holt Family & Motherland Tour)” 같은 환영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부모들은 딸들을 위해 값비싼 비단 한복(한국 전통 의상)을 구입했고, 일부 부모는 서예가에게 아이들의 본래 한국 이름을 한자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모순적이었다. 노르웨이 성인들의 수많은 말과 행동은 아이들에게 “너희는 노르웨이 사람이다”라고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동시에 한국인이며 한국인이 아니었다. 수백만의 한국인들 한가운데 서 있으면 겉모습은 한국인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한국인처럼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한국어를 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한국 역사, 관습, 제도, 도덕적 가치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이 점에서 그들은 입양 부모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음식에도 익숙하지 않았고, 젓가락을 쓰는 일에서도 똑같이 서툴렀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에는 자신들과 ‘관계됨(relatedness)’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없었다는 점이다.

나는 많은 초국가적 입양인들로부터 들었다. 그들은 거울을 볼 때마다, 거기 비(非)노르웨이적 얼굴을 볼 때마다 자신이 다르며 소수자임을 떠올린다고 했다. 이는 방향 감각 상실, 곧 혼란(disorientation)을 불러올 수 있다. 한국에 와서 그들은 기대와 달리, 자기와 닮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에게 감정적 공감(empathy)을 느끼지 못했다고 내게 전했다. 그들은 그것이 일종의 혼란감을 낳았다고 말했다.

나는 같은 종류의, 그러나 더 강한 혼란을 인도 출신 입양인들과의 귀환 후 인터뷰에서도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인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옷차림, 몸짓, 움직임, 행동양식 면에서 자신과 닮은 외모의 ‘현지 사람들’이 실제로는 훨씬 더 낯설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한국 방문 동안, 노르웨이 가족들은 사람보다 장소와 사물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분명 ‘사람 없는 역사’,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친족 없는 역사(history without kinned people)’를 욕망하는 듯했다. 아이를 유기된 뒤 돌보았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유급 위탁모나 고아원 간호사 등—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반면 생물학적 친족의 정체성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기억의 정치(the politics of memory), '가족 이야기의 선택적 성격(selective character of familial stories)'(Youngblood, 2001: 64)이 여기서 분명히 작동하고 있다. 실제 출신국에 도착했을 때, '뿌리(roots)'는 장소, 음식, 의복 등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 사람들로 치환되었다.

아이의 개인사를 찾는 과정에서, 첫 번째로 ‘식별 가능한 의미 있는 장소(first identifiable place of significance)’는 고아원이었다. 두 번째는 아이가 태어났거나 발견된 곳이었다. 이와 유사한 결과는 인도를 방문한 가족들, 그리고 다른 출신국을 방문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반복되었다.

많은 부모들은 나에게 “아이들이 모국 방문 전보다 방문 후에 더 ‘노르웨이스러워’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퍼즐의 빈 조각을 채우기(filling in the gaps in the jigsaw puzzle)’는 분명한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새 조각들이 사소해 보일지라도. 이 조각들은 가족의 통합성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구성원 각각의 ‘서로 다른 출신’을 인정한다. 아이의 체환된 정체성(transubstantiated identity)은 본질적으로 도전받지 않는다. 사실상, 아이의 과거를 함께 추적하는 일은 가족의 모험(family adventure)이 되고, 그 사건은 이후 가족사(family history)의 일부로 편입된다.

 

대부분의 ‘뿌리 여행(roots tours)’ 혹은 ‘모국 여행(motherland tours)’은 그 이름에 실제로 부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은 자신의 출신을 끌어안는 대신 자신의 노르웨이적 정체성을 다시 확인한다. 이는 입양된 아이들의 본질(essence)이 노르웨이의 친족적 사회성(Norwegian kinned context) 속에서 이미 효과적으로 체환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부모와 아이 모두가 “이번 방문에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관해 양가적 감정(ambivalence)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부모들은 일종의 위험을 감수한다. 만약 체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만약 아이가 노르웨이와 부모로부터 등을 돌린다면?

하지만 나는 그런 두려움을 노골적으로 말하는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여정은 늘 찬사로 묘사되었다. 아마도 최악의 두려움이 실제로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흔히 강조된 점은, 이 여행들이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했다는 것, 그리고 여러 가족이 함께 여행하면서 경험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입양인들은 자신들이 인도나 한국의 동년배보다 함께 여행한 다른 입양인들과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부 입양인들은 생물학적 친족을 찾고 싶어 하며, 일부는 실제로 찾아낸다.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이유는 복잡하며, 여기서는 일부만 간단히 언급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적극적으로 친족을 찾는 사람들은 소수이며,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노르웨이에 잘 정착하지 못했고 입양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개인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출신국과 생물학적 친족에게서 찾고자 한다.

그러나 대화와 인터뷰를 통해 볼 때, 생물학적 친족을 만나고자 하는 훨씬 더 흔한 동기는 “내가 누구를 닮았는지 보고 싶다”는 욕망이다. 노르웨이 (그리고 북유럽 전반)에서는 아기나 어린아이를 두고 “저 애는 할아버지 코를 닮았네, 엄마 눈이네”라며 혈통의 연속성을 말과 시선으로 확인하는 문화가 있다. 그러나 입양아의 경우 이런 말은 들을 수 없다(대신 성격이나 기질, 체형 같은 걸 두고 “닮았다”고 말하는 경우는 있지만). 많은 입양인들은 이것을 일종의 상실로 경험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같은 생물학적 실체(biogenetic substance)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어떤 흐름 속에 위치시키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생물학적 친족을 실제로 만나보는 일은 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순간, ‘공유된 자연적 실체(shared natural substance)’ 그 자체는 종종 중요성을 잃는다. 입양인들과 그 생물학적 친족은 그 외에 공통으로 나눌 것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적 혈연 관계만으로는 의미 있는 사회성(significant sociality)의 기반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론

 

해외에서 입양된 아이들은, 자신의 도착과 거주라는 개인적 역사 외에는 노르웨이에 사회적으로 뿌리내린 공간적·시간적 연결을 주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주민들과 다르다. 그러나 입양된 아이들은 입양 부모에 의해 이미 존재하는 친족 기반 네트워크와 역사 속으로 ‘후원(sponsored)’되어 들어간다.

『The Ethics of Kinship: Ethnographic Enquiries』의 서문에서 파비옹(Faubion, 2001: 13)은 친족 관계를 “주체화(subjectivation)의 체계 ―혹은 여러 체계들의 배열(array of systems)”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주체화’ 개념을 푸코(Foucault)로부터 이어받으며, 이 용어에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즉, “‘개인들이 어떤 종류의 주체로 명명되거나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들’과, ‘개인들이 스스로를 어떤 종류의 주체로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들’”(Faubion, 2001: 12)을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주체화’ 개념은 부모들이 자녀를 ‘노르웨이 사람(Norwegian persons)’으로 만들려는 시도에 대한 나의 분석을 보완한다. 국제입양아를 노르웨이인 친족과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이 구성된 존재로 ‘체환(transubstantiation)’시키려는 시도는, 아이를 특정한 주체화의 경로 위에 고정시키는 효과를 낳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차이의 징후들은 대체로 희미해지고, 생물학적 부모는 입양아 개인의 서사 속에서 부차적 인물로만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개념과 실천은 인류학의 오래된 친족 논의를 환기시킨다. 모건(Morgan, 1870) 이래로, 친족'자연(nature)과 문화(culture)가 사회마다 다른 방식으로 만나는 영역'이라는 명제는 인류학의 상식처럼 여겨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기준점으로 삼는 경향은 오랫동안 이 학문에 지속되어 왔다(Schneider, 1984; Weismantel, 1995). 스트래선(Strathern, 1992)이 새로운 생의학적 연구와 생식기술(reproductive technology)의 함의를 탐구했을 때에야 비로소 ‘자연’은 분석적으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들이 ‘자연’의 범주를 무의미하게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생물학(biology), 유전자(genes), DNA 등으로 다시 나타나는 자연 개념은 대부분의 입양가족에게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내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바로 생물학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을 동시에 유의미하게 유지하면서도 양자를 모순되지 않게 조율하려는 이 곡예적 균형(juggling act)이, 입양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큰 도전으로 작용하는가이다.

 

국제입양이라는 실천은 노르웨이적 '사람됨(personhood)'과 ‘친족 관계됨(kinned relatedness)’의 가치가 지닌 여러 모호성을 드러낸다. 노르웨이에서의 ‘키닝(kinning)’ 과정은, 그것이 생물학적이든 입양된 아이들이든 간에, 혈액(blood), 육체(flesh), 토지(land), 장소(place), 그리고 사람(people) 간의 융합(perceived fusion)을 전제한다. 이 융합에는 강한 시간성(temporal dimension)이 깃들어 있다.

입양부모의 과제는 입양된 아이를 마치 생물학적 자녀처럼 친족화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노르웨이 친족 네트워크 안의 모든 관계들을 통해 사회적 존재(social beings)로 존재하게 된다. 이 경우, 친족은 파비옹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의 ‘주체화의 체제(regime of subjectivation)’로 유용하게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친족 체계는 단순히 “위협받는 개인에게 가장 안전한 사회적 안전망(our most secure safety net)” 이상의 것이 된다(Howell, 2001: 16).

나는 서두에서 인용한 한 입양모의 말—“국제입양아를 둔 가족은 어떤 의미에서 항상 다르다”—에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듯, ‘키닝(kinning)’와 ‘체환(transubstantiation)’의 과정을 거치며 입양 부모들은 자녀를 자신들의 친족 속에 통합할 뿐 아니라, 스스로 부모로 ‘변형(transform)’된다. 그 결과, 사회적인 것과 생물학적인 것의 구분은 노르웨이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는 여전히 유지되지만, 입양 가족 내부에서는 그것이 사실상 무효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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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이 프로젝트는 1998년에 마리트 멜후스(Marit Melhuus)와의 공동연구 ‘현대 노르웨이에서의 친족 의미(The meaning of kinship in contemporary Norway)’ 의 일부로 시작되었으며, 노르웨이 연구위원회(Norwegian Research Council)의 지원을 받았다. 입양기관인 베르덴스 반(Verdens Barn)과 아돕숀스포룸(Adopsjonsforum)의 지속적인 협조 덕분에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초기 버전들은 런던 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Goldsmiths’ College), 헬싱키 대학교(University of Helsinki), 베르겐 대학교(University of Bergen) 인류학과에서 발표되었다. 나는 이 모든 논평자들과 두 명의 익명 심사자(JRAI readers), 그리고 개정판을 읽고 발표상의 몇몇 약점을 지적해준 키스 하트(Keith Hart)에게 감사를 표한다.

 

1

이 연구는 필연적으로 다중 현장(multi-sited)에서 이루어졌으며 범위 또한 넓었다. 우연(serendipity)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나는 대안적 민족지 전략을 상상력 있게 찾아야 했다. 해외 입양 자녀를 둔 모든 가정과 직접적인 접촉을 한 것은 아니지만, 국내 여러 지역과 해외의 다양한 관련 장(arenas)과 활동들에 폭넓게 참여했다.

내가 네팔에서 입양한 딸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사람들의 삶의 친밀한 영역에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입양 부모, 가족, 그리고 입양인들과 함께 여러 사회적 모임에 참여하며 시간을 보냈다. 예비 입양부모를 위한 교육 과정, 사춘기에 접어든 입양아를 둔 부모 대상 강의, 입양아가 새 삶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부모를 위한 지원 모임 등에도 참여했다. 또한 120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지를 바탕으로 한 비공식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으로의 귀환 여행(return visit)에 동행한 가족들, 그리고 에티오피아로 아이를 데리러 간 예비 입양부모 그룹과도 함께했다.

현지조사는 한 입양기관에서 이루어졌으며, 공무원, 정치인,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등 다양한 인물들과의 면담과 대화로 자료를 추가로 수집했다.

 

2

아버지가 최소 한 달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1년의 출산휴가를 소득의 80% 수준에서 청구할 수 있다.

 

3

입양아들이 ‘자연스럽게’ 노르웨이인이 될 것이라는 과거의 가정은 이제 생물학적 관계와 아이의 ‘원래 문화(original culture)’의 중요성을 (불안하게) 강조하는 경향으로 대체되었다.

 

4

예비 입양부모는 고아원에 자신들의 정보를 담은 서류(dossier)와 사진을 보내야 한다. 아이 한 명이 배정되면, 부부는 아이의 사진과 간단한 설명서를 받고 그를 받아들일지 며칠 안에 결정해야 한다.

나는 아직 거부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사진과 보고서 한 장만으로도 그 안에서 자신과 어떤 ‘울림(resonance)’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마치(as-if)’ 혈연 관계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즉각적으로 형성되고, 그 이후 ‘탄생의 순간’을 되찾는(recapture) 다양한 맥락 속에서 공고화되는 것이다.

 

5

같은 사건은 굴레스타드(Gullestad)의 최근 논문(2002: 55)에서도 다른 해석의 목적으로 언급되었다. 국제입양의 중요한 측면에는 인종(race)과 국민성(nationhood)의 문제도 포함된다. 이 주제들은 후속 논문에서 다룰 예정이다.

 

6

많은 입양가족들이 이러한 귀환 여행을 자발적으로 수행한다. 일부 입양인들은 가족 없이 혼자 여행하기도 한다. 조직된 여행(tour)에 대한 참여가 늘어나는 현상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귀환 방문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 미국 등, 국제입양을 수행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루어진다.

한국의 입양기관 직원의 말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노르웨이인들이 가장 열성적이라고 한다.

 

7

내가 언급하는 것은 대다수의 경우다. 일부 소수의 입양인들은 자신의 원래 민족적 정체성과 재회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지닌다. 그들은 해당 국가로 이주해 언어와 역사를 배우고, 생물학적 친족을 찾으려 노력한다.

일부는 생물학적 가족과의 만남을 통해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인상으로는, 이는 소수에게만 해당한다. 그럼에도 그러한 사례들은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강화시키며, 공적 관심(public attention) 또한 불균형적으로 많이 받는다.

 

8

부모는 ‘자유의지’라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한다고 느껴야 한다. 많은 입양인들이 실제로 생물학적 친족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과, 자신을 버린 이유를 알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을 길러준 부모에 대한 충성심(loyalty) 또한 그들을 갈등하게 만든다.

 

 

송준규 번역
zingari.JQ@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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