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Meucci, Alberto(auth.), John Keane, Paul Mier(eds.), 1989, "New Perspectives on Social Movements: An Interview with Alberto Melucci", Nomads of the Present: Social Movements and Individual Needs in Contemporary Society, Temple University Press, pp.180~232.
---
9. 사회운동의 새로운 관점: 알베르토 멜루치와의 인터뷰*
*1988.2.26~27. 밀라노에서 존 키언과 폴 미엘에 수행한 인터뷰
---
#연구 배경
##1Q: 지난 20년 동안 선생님의 사회학 연구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운동이 성장하고 갖는 의미에 집중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연구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 영어권 독자들이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이런 운동들에 관심을 갖게 만든 경험들이 —개인적, 지적, 정치적 경험들— 무엇이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여러 개인적·지적 경험이 제 사회운동 이해를 형성했습니다. 저는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났고, 좌파 성향의 가톨릭 문화 속에서 자랐습니다. 밀라노 가톨릭대학교에서 공부했고, 거기서 철학 석사 학위를 마쳤죠. 1968년 무렵에는 대학 조교가 되어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환멸을 느끼는’ 젊은 지식인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가톨릭 청년운동에 참여하던 것에 불만이 컸습니다. 제가 부정하지 않았던 제 종교 경험의 영적인 측면과, 이탈리아 가톨릭 교회의 매우 전통적인 사회·정치적 관행 사이에 모순이 있었거든요.
이런 분위기는 1968년 학생운동이 성장하면서 더 강해졌습니다. 젊은 대학 조교로서 저는 그 운동에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학생들의 동원은, 제가 이전에 가톨릭 청년운동에 깊이 관여하면서 이미 겪었고 또 거부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불관용과 통합주의(integralism)에 대한 갈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공동체적 경험에 깊이 참여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운동 속에서 그것이 다시 나타나는 데 민감했고, 그 매력에 대해 ‘백신을 맞은(vaccinated)’ 상태였다고 할 수 있죠. 제가 통합주의에서 문제시했던 점은, 그것이 삶에 대한 다원주의적(pluralist)이고 ‘탈주술화된(dis-enchanted)’ 태도를 거부한다는 점입니다. 통합주의의 영향 아래서 사람들은 불관용하게 됩니다. 그들은 현실의 모든 문을 여는 ‘만능 열쇠(master key)’를 찾으려 하고, 그 결과 현실의 서로 다른 층위들을 구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들은 통일성을 갈망하고, 복잡성에 등을 돌립니다.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편협하고 독단적이며 판단적인 사람이 됩니다. 이런 종류의 총체화하는 태도(totalizing attitudes)를 처음 마주했던 경험은, 통합주의가 어떤 조건에서 번성하는지에 대한 오래 지속되는 관심을 제게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저는 그것의 지적·정치적 위험에 민감합니다. 제 집합행동 연구는 바로 그 위험을 드러내고, 또 상쇄하려고 시도해 왔습니다.
제가 초기부터 이탈리아 공산당(Partito Comunista Italiano, PCI)과 ‘현실 사회주의(real socialist)’ 세계를 접했던 경험은, 이런 통합주의에 대한 제 알레르기를 더 강화했습니다. 제 친구들과 동료들 가운데는 공산당에 가입한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결코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베트남전 반대 같은 몇몇 정치 캠페인에는 참여했죠. 그러면서 저는 이탈리아에서의 공산주의 경험이 가톨릭 근본주의와 얼마나 가까운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세계 모두와의 거리는 폴란드로 여러 차례 연구 방문을 하면서 더 깊어졌습니다. 1968년에 저는 폴란드 과학아카데미에서 레셰크 코와코프스키(Leszek Kołakowski)와 함께 연구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가 정치적 이유로 해고된 지 딱 일주일 뒤에 바르샤바에 도착했어요. 그는 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이었기 때문에, 저는 아무도 말을 걸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아주 이상하고 불안한, 카프카적인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매일 저는 어떤 사람들과 공식 면담을 했는데, 그들이 경찰인지 지식인인지 대학 행정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죠—그런데도 의식처럼 반복되는 말은 늘 같았습니다. “자, 멜루치 씨, 여기까지 오셨으니 계획이 뭡니까?” 저는 보통 “코와코프스키와 함께 연구하라고 지원금을 받았다”고 설명했어요. 그러면 전형적인 답은 이랬습니다. “네, 물론이죠.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저는 결국 코와코프스키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전체주의 아래 삶의 현실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사회주의, 계급, 마르크스주의에 —이탈리아 맥락에서는 PCI를 뜻하죠— 대한 제 의심은 더 강해졌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일상생활과 민주국가들의 일상생활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더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 경험만이 나중에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만든 원천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1960년대에 제게 가장 강하게 영향을 준 지배적 사회학 패러다임—마르크스주의와 기능주의—에도 지적으로 불만이 있었습니다. 60년대 초반, 저는 젊은 대학원생으로서 철학적·사회학적 관심이 마르크스주의와 종교의 관계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이 주제를 두고 상당한 논쟁이 있었죠. 저는 석사 논문에서 그 일부를 탐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그 논문은 폴란드 체제에 대한 사례연구를 시도하면서 두 가지 핵심 질문에 답을 제시하려 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는 어떤 종류의 계급 분열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폴란드 문화는 사회주의와 어떻게 공존하는가? 종교와 마르크스주의 둘 다를 질문하게 되면서 저는 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졌습니다.
이후 저는 밀라노 국립대학교에서 2년짜리 사회학 대학원 과정을 마쳤습니다. 갈리노(Gallino), 파가니(Pagani), 피초르노(Pizzorno) 같은 이탈리아 최고의 사회학자들에게 배웠죠. 그들은 사회학 전통, 파슨스적 기능주의, 경험적 연구 방법에 대한 제 지식을 심화시켜 주었습니다. 그 당시 이탈리아 사회학은 미국 사회학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해 이탈리아 문화에서 여전히 지배적이던 철학적 관념론의 영향에 맞서, 이탈리아 사회학은 새로운 개념과 방법을 정당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곤란한 상태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쪽에는 현대 사회 현실에 대한 제 경험적 관심을 조직해 주는 기능주의 이론 틀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갈등과 다른 사회 현상을 경험적으로 바라보는 데 무능해 보였던 마르크스주의 접근이 있었거든요.
이렇게 서로 화해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지적 원천 사이에서 느낀 불편함은, 제가 프랑크푸르트학파(Frankfurt School)—특히 하버마스(Habermas)—의 저작을 접하고, 1970년에 파리로 가서 사회과학고등연구원(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 현재 EHESS)에서 알랭 투렌(Alain Touraine)에게서 박사과정을 하게 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투렌를 만난 건 저에게 지적으로 매우 중요했습니다. 저는 투렌의 접근이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경제주의와 기능주의 이데올로기, 이 둘의 한계를 모두 벗어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사회적 행위의 중요성과 자율성을 강조했고, 이것은 제 작업에 오래 지속되는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적으로 말하자면, 투렌가 발전시킨 사회운동이라는 주제는 갈등과 계급에 관한 제 이전 사회학 작업 전체를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가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마지막 원천은 심리학과 임상 실천(clinical practice)에 대한 제 관심입니다. 저는 늘 개인의 심리적 차원에 관심이 있었지만, 처음에는 주로 사회문제에 더 끌렸습니다. 저는 전문 심리학자가 될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분적으로는 우연히, 저는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개인적 이유로 저는 심리치료에 들어갔고, 그 분야에 깊이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직관이라든가, 타인과 소통하고 그들의 깊은 내면 현실과 접촉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개인적 자질과 기술이 제게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1970년대 동안 저는 임상 실천 훈련을 계속했고, 파리대학교(Université de Paris)의 ‘임상 인간과학(Sciences Humaines Cliniques)’ 교육연구단위(Unité d'Enseignement et de Recherche, UER) 에서 이번에는 심리학 박사 학위를 하나 더 마쳤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는 것과 매우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집합행동이 사회변화만이 아니라 개인 경험의 변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제가 더 민감해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 훈련은 또한 개인적·사회적 삶을 연구할 때 중요한 방법론적·인식론적 쟁점들에 대한 제 이해를 날카롭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정신분석을 받았고, 정신분석을 면밀히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론적 토대—심적 삶을 인과적이고 때로는 기계론적(mechanistic)으로 설명하는 방식—에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임상 상황에서 정신분석은 종종 개인의 현재 문제의 과거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반면 저는 그 당시 전개되고 있던 현상학적·실존주의적 접근, 그리고 게슈탈트 치료(Gestalt therapy)나 신체 치료(body therapies) 같은 인본주의 심리학(humanistic psychologies) 쪽에 더 끌렸습니다. 저는 인과 설명을 중심에 두지 않고, 사람들이 어떻게 행위하며 원한다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을 두는 현상학적 태도의 중요성을 보게 됐습니다. 이것은 과정 지향적 접근이며, 그래서 정신분석과 달리 경험의 내용—특히 과거에서 온 내용—에 덜 집착합니다. 제가 현상학적 접근을 선호한다는 점은 제 경험적 연구 방법에서, 그리고 실제로 사회운동에 대한 제 전반적인 태도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2Q: 지난 20년 동안 서구 사회의 변화하는 성격을 두고 사회과학자들 사이에 상당한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조직자본주의(organized capitalism)’, ‘산업사회(industrial society)’, ‘독점자본주의(monopoly capitalism)’ 혹은 ‘고도자본주의(advanced capitalism)’ 같은 오래된 용어들은 ‘후기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 ‘기술관료사회(technocratic society)’, 혹은 선생님이 제안하신 ‘복잡사회(complex society)’ 같은 새로운 용어들로 대체되어 왔죠. 선생님의 사회운동 분석 상당 부분은 현대 사회의 ‘새로움(novelty)’에 대한 가정 위에 서 있는 듯합니다. 특히 선생님의 사회운동 정의에서 핵심 요소 하나는, 사회운동이 그것이 작동하는 사회체계의 한계를 ‘깨뜨리는(breaks the limits)’ 집합행동의 한 유형이라는 점이니까요. 그렇다면 선생님이 ‘현대 서구 사회는 복잡하다(complex)’라고 말할 때, 그게 무슨 뜻인가요? 우리는 어떤 종류의 체계 속에 살고 있는 건가요?
이 질문은 사회운동 연구에서 중요하고,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요즘에는 누구도 설득력 있는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체계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일반적으로는 은유, 형용사, 접두사에 기대는 경향이 큽니다. 그리고 ‘신자본주의(neocapitalism)’나 ‘후기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 같은 용어들이 쓰이는 것에서 보이듯이, 근대성의 두 가지 주요 모델—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Marxian theory)과 산업사회에 대한 베버주의 이론(Weberian theory)—은 지금 수정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체계가 변했다는 느낌을 갖고 있지만, 그 체계가 어떤 방식으로 변했는지를 설명할 언어가 우리에게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이 막다른 상태(impasse)를 인정하는 편을 택합니다. 그리고 다른 질문과 다른 답을 통해서 그 막다름을 풀 수 있도록, 그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쪽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제가 최근 글들에서는 당신이 방금 언급한 온갖 용어들을 다소 ‘구분 없이(rather indiscriminately)’ 사용하게 되는 겁니다.
##3Q: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이런 여러 개념들을 일부러 ‘규율 없이(undisciplined)’ 사용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하면 그 개념들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새로운 개념을 만들도록 자극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요?
네. 저는 우리가 근대성의 자본주의 모델 그리고 역사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사회주의, 이 둘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대를 향해 들어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최소한 세 가지 주요 과정이 진행 중이고,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성격—그리고 그 사회의 한계(limits)—에 대한 논의를 더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첫째, 이 체계 안에서 '정보(information)'가 핵심 자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현실에 접근하는 방식은, 정보의 의식적 생산과 통제에 의해 가능해지고 또 형성됩니다. 지각(perception)과 인지(cognition)를 통해 만들어지는 ‘형식(forms)’ 또는 이미지(images)가, 우리가 살아가는 물질적·소통적 환경과 맺는 관계를 점점 더 조직하고 있습니다. 자연자원(natural resources)이 상품으로 전환되는 과정 또한, 이런 인지적·소통적 ‘형식’의 생산과 통제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물질 생산(material production)에 기반한 권력은 더 이상 중심적이 아닙니다.
둘째, 이 체계는 '행성적(planetary)'이 되었습니다. 경계 바깥에 아무것도,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상호의존적인 세계체계(World system)가 된 겁니다. 이런 점에서, ‘행성화(planetarization)’의 토대만을 놓았던 자본주의 체계와는 다릅니다.
셋째는 '개별화(individualization)'입니다. 체계 안의 주요 행위자는 더 이상 계급의식, 종교적 소속, 종족성으로 규정되는 집단이 아니라,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행위에 참여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스스로를 개별화(individuate)하려 애쓰는 개인(individuals)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어떤 종류의 체계로 들어가고 있는지 저는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세 과정이 정말로 중요하다면, 그에 상응해서 현재 체계에 대해 우리가 던지는 질문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이 체계가 단일하고(monolithic) 완전히 관리되는(totally administered) 것으로 가정하지 않기 때문에, 체계 내부의 불균형(disequilibria)과 사회적 갈등(social conflicts)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또한 바뀌어야 합니다.
#마르크스주의 계급론 비판
##4Q: 선생님의 ‘복잡사회’에 대한 관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거시구조(macro-structures)와 그 사회의 갈등 사이의 인과적 연결을 세우려는 마르크스주의적 접근과는 여러 면에서 어긋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최근 마르크스주의가 현재 체제를 분석하면서 강조해온 핵심 주제들—예컨대 국가의 재정 위기,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재구조화, 조합주의 같은 것들—이 선생님의 복잡사회 분석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요. 왜 그렇습니까? 선생님은 이런 종류의 거시 분석이 복잡사회에서는 부적절하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그것이 산업자본주의라는 과거 시대에 속한다고 보시나요? 혹은 사회운동의 형성을 분석하는 데 근본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시나요?
마르크스주의 유형의 거시-구조 분석(macro-structural analyses)은, 제가 최근 미국의 사회운동 분석들을 비판하면서 설명하려 했듯이,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원동원이론(resource mobilization theory) 같은 시장 기반 분석들은, 구조적 경계와 거시 권력 관계라는 개념을 아예 치워버리고, 모든 것을—정당하지 않게—계산(calculation), 흥정(bargaining), 교환(exchange)으로 환원해 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요점, 즉 우리가 분명한 논리와 분명한 한계를 가진 체계 안에 살고 있다는 점을 —비록 그 한계가 지금은 불분명하고 특정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강력한 작업 가설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국가의 ‘재정 위기(fiscal crisis)’, ‘조합주의(corporatism)’, ‘경제 재구조화(economic restructuring)’ 같은 개념으로 체계를 분석하는 최근 마르크스주의 논의들은 흥미롭고 자극적입니다. 그것들은 체계의 어떤 중요한 메커니즘을 설명해주기도 하죠. 다만 제가 문제 삼는 건, 그런 분석들이 자기들의 특정한 설명을 현대 사회 전체에 대한 일반 이론(general theory)처럼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마치 우주 전체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늘날 사회의 몇몇 핵심 메커니즘에 대한 ‘지역적(regional)’ 설명을 내놓고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물론 그런 이론들은 우리에게 지적·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현상들을 기존의 지적 틀 속에 집어넣어서, 우리의 불확실성을 닫힌 원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제게는 그것이 지적 환원주의(intellectual reductionism)의 한 형태로 보입니다. 제가 앞에서 말했던 그 ‘막다른 상태(impasse)’를 창조적으로 선언할 필요를 부정해버리거든요. 즉, 우리가 체계에 대해 가진 이해의 한계와, 우리 앞의 복잡한 문제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기보다는, 단순하고 현실 그 자체를 담아낼 수 없는 총체화 개념들(totalizing concepts)에 기대어버리는 겁니다.
##5Q: 선생님의 초기 작업을 보면 ‘계급 분석’을 사용하는 데 강한 양가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집합행동을 분석하는 마르크스주의 프로젝트의 핵심 특징은 ‘계급투쟁(class struggle)’에 초점을 둔다는 점인데요. 선생님은 그런 분석이 집합행동을 살피는 데 부적절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초기 저작에서는 새로운 사회적 갈등의 뿌리에 놓인 ‘계급 관계(class relationships)’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양가성이 생기나요? 마르크스주의 계급 분석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제 초기 작업에 ‘계급 분석’에 대한 양가성(ambivalence)이 나타난다는 건 확실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제 초기 연구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영향을 받은 방식으로 계급 분열(divisions)과 갈등(conflicts) 문제를 다뤘습니다. 그런데 그 연구를 진행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계급(class)’ 담론이 사실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현상을 지시하고 있는데도 그것들이 자주 혼동된다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계급’이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사회 내부의 사회적 분화(social differentiation)와 계층화(stratification)의 양식을 가리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의 기본 자원(basic resources)의 생산(production)과 분배(distribution)에 의해 규정되는 갈등적 관계(conflictual relationships)를 가리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사회 계층화 분석은 계급을 실재하는 사회 집단으로 보지만, 동시에 사회적 생산의 역동(dynamics)을 분석하기 위해 ‘계급 관계(class relationships)’라는 개념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저는 여기서 더 나아가, 후자의 의미가 —즉 사회적 행위자(social actors)가 기본 자원을 생산하고(produce) 전유(appropriate)하는 관계들 속에서 갈등이 발생한다는 논지— 집합행동을 분석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한 사회의 기본 자원 생산은 갈등으로 가득 차 있다는 원래의 마르크스주의적 생각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갈등으로 점철된 관계들을 모두 기술하고 분석하는 데 ‘계급’이라는 용어가 꼭 필요하다고는 확신하지 않습니다. ‘계급 관계’는 생산 관계의 매우 특정한 역사적 형태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 고유한 것이며, 그 사회에서는 ‘부르주아지(bourgeoisie)’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사이의 투쟁이라는 —즉 경제 체계에서의 위치(position in the economic system)로 규정되는 사회 집단들 사이의 투쟁— 형태를 취합니다.
마르크스주의 계급 분석 모델이 부적절한 두 번째 이유도 있습니다. 19세기의 고전적 산업자본주의 이후로, 사회적 분화와 사회적 갈등의 패턴은 변화해 왔습니다. 물론 사회학적으로 보자면, 현대 사회의 특정 영역에서는 계급 분열이 여전히 뚜렷하게 나타나며,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계급’ 개념을 사회학적 분석에서 곧바로 폐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산업자본주의 단계 이후로 사회 구조는 점점 더 유연해졌고 변화에 더 크게 노출되어 왔습니다. 사회적 위치와 집합행동 사이의 관계도 더 우발적이 되었고, 기본 자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더 이상 계급 용어로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6Q: 마르크스주의 계급 분석에 대한 더 심각하지만 덜 분명한 반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혁명을 통해 사회를 변혁하도록 ‘특권화된 주체’가 예정되어 있다는 특정한 역사관에 의존한다는 점인데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The Holy Family』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문제는 어떤 프롤레타리아, 혹은 프롤레타리아 전체가 당장 무엇을 목표로 여기는가가 아니다. 문제는 프롤레타리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존재에 따라 역사적으로 무엇을 하도록 강제될 것인지이다”. 이런 관점은 혁명 시대 특유의 형이상학적 전제에 기대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마르크스가 분명히 받아들인 ‘사회운동’이라는 발상 자체가 그 시대의 발명품 아닙니까? 그 개념을 쓰는 순간, 지금은 낡아버린 기술적 지배, 투쟁, 혁명, 진보 같은 허구적 이미지들에 사용자들이 갇히게 되는 건 아닐까요?
제 사회학 박사논문은 19세기 프랑스 기업가들의 이데올로기와 실천을 검토했습니다. 프랑스는 영국보다 늦게 산업화를 겪었기 때문에, 프랑스 기업가들은 진보와 산업화의 본질에 관한 근본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논쟁했습니다. 그들의 담론은 ‘움직이는 세계’의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었죠. 진보, 산업혁명, 철도, 기계, 세계적 정복,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 같은 이미지들 말입니다.
제가 그 지배적인 기업가 담론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그것이 사회주의적 반대자들의 담론과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노동 윤리(work ethic)는 양쪽 담론에 공통적입니다. 역사라는 것이 목적론적(teleological) 궤도를 따라 진행된다는 형이상학적 전제, 그리고 어떤 특정 행위자가 그 역사 과정의 ‘진리’를 인식하고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 역시 공통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사회운동’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런 공유된 형이상학적 이미지들의 별자리 속에 속합니다. 이 개념은 어떤 중심 행위자가 존재하고, 그 행위자의 모든 행동이 어떤 최종 목적지를 향해 직선적으로 움직이는 과정 속에 포섭되어 있다는 생각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사회운동 개념은 ‘진보(Progress)’와 ‘자유(Freedom)’라는 개념들과 분리해 내기가 어렵고, 바로 그 때문에 저는 오늘날 이 개념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을 느낍니다.
##7Q: 『Nomads of the Present』에서 선생님은, 현대의 운동들이 더 이상 자신들이 어떤 보편적 계획을 완수하고 있다는 감각에 의해 이끌리지 않는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그 운동들이 장기적 목표조차 갖지 않으며, 동원(mobilization)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제한되고, 전적으로 현재에 거주하는 유목민(nomads)과 닮아 있다고 주장하시죠. 이것이 선생님이 ‘사회운동’이라는 개념을 더 이상 그럴듯하지 않다고 보시는 이유인가요?
네. 하지만 제가 그 개념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거기서 더 나아가, 그것이 거창한 정치 프로그램(grandiose political programmes)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은 실제로 폭력(violence)과 전체주의(totalitarianism)로 귀결되어 왔습니다. 이런 비극적 시나리오는 오늘날 ‘제3세계(Third World)’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래되고 부정의한 체계를 대체할, ‘투명한 권력(transparent power)’의 새로운 체계에 대한 비전은, 우리 세기에 너무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냈습니다. 최소한, 그 희생자들을 존중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거창하고 위험한 환상(illusions)에 먹이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8Q: 마르크스주의가 전제하는 ‘운명으로서의 역사’(history as destiny)라는 관점은, 또 다른 이유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노동계급 운동과 공존했던 —언제나 평화롭지만은 않았던— 다른, 그리고 종종 중요한 집합행동의 유형들을 외면해버립니다. 예컨대 크레이그 캘훈(Craig Calhoun)은 『The Question of Class Struggle』에서, E.P. 톰슨(E.P. Thompson) 등이 옹호해온 초기 영국 노동자운동에 대한 통념적 관점이 상당히 오해를 낳는다고 지적합니다. 캘훈에 따르면 1810년대의 운동들은 원시적이거나 과거지향적(primitivie/backward-looking)이지 않았고, 노동계급 운동의 선형적 발전(linear development)의 일부로 다뤄져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그 10년은, 서로 구별되는 독자적 항의와 집합행동의 형태를 획득한 민중주의(populist) 운동들이 형성된 시기였습니다. 캘훈에 따르면 그 운동의 사회적 기반은 공동체적 토대(communal foundations)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운동의 급진화(radicalization)는 새 공장체계에서의 계급적 착취가 아니라, 전통적 공동체 삶이 뿌리째 흔들리고 해체된 데서 촉발되었다는 것입니다. 캘훈의 관점에서 그 초기 사회갈등은 계급운동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계급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급진적이었습니다. 캘훈의 논지는 폭넓고 중요한 함의를 갖습니다. 그것은 집합행동에 대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이 매우 일차원적이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또한 여성의 초기 운동, 시민의 운동, 노예제에 대한 투쟁 같은 다른 비계급적 행동형태들이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중요한 특징이었는지라는 질문도 제기합니다. 캘훈의 주장에 비추어 볼 때, 현대의 집합행동 이론은 원래의 마르크스주의 접근이 가진 협소함에 맞서, 이들의 역할과 중요성을 근본적으로 재사유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선생님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 너무 충실하신 건 아닌가요?
저는 노동계급 운동보다 더 급진적인 행동형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산업자본주의 시기에도 집합행동은 다차원적(multidimensional)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집합행동의 이질성(heterogeneity)을 하나의 핵심 개념으로 —예컨대 계급투쟁이나 프롤레타리아트의 객관적 역사적 역할— 통일해버리거나, 혹은 경험적 일반화를 통해 통일해버리려는 경향은, 사회운동 연구 전통 전체에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향은 오해를 낳습니다(misleading). 왜냐하면 집합행동은 언제나 구성적(composite)이고 복수적(plural) 성격을 띠기 때문입니다. 집합행동은 여러 층위, 의미, 행동 형식의 다중성(multiplicity)을 포함합니다 —특정 맥락에서 어떤 행동유형이 가장 효과적이고 눈길을 끌 때조차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집합적 동원(collective mobilizations)은 ‘진보(progress)’나 ‘반응(reaction)’ 같은 단순한 도식으로 요약될 수 없습니다.
찰스 틸리(Charles Tilly)의 저작들은 이 점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의 『The Rebellious Century』와 『From Mobilizations to Revolution』에 제시된 역사 연구는 매우 유익하며, 집합행동의 이질성에 대한 많은 경험적 증거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론적 차원에서 그는 여전히 기본적인 마르크스주의 틀 안에서 작업합니다.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는 동기가 ‘이익(interests)’이라는 그의 주장은, 마르크스주의적 계급이익(class interests) 개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의 분석틀은 집합행동의 정치적 차원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편향은 —이는 다시 사회운동의 다차원적 성격을 가립니다— 집합행동이 정치체계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틸리의 집착, 그리고 그가 공적 자료(public data sources)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드러납니다. 공적 자료는 아마도 정치 권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동유형 쪽으로 편향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이런 정치적 분석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운동의 복잡성(complexity)을 가려버리기도 합니다.
#사회병리적 접근 및 자원동원론 비판
##9Q: 선생님이 사회운동에 대한 사회학적 이론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는, 마르크스주의 전통만 비판하는 게 아니라, 주류 사회학에서 받아들여져 온 집합행동 이론들과도 어긋나는 듯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영향력 있었던 주류 이론들 가운데 하나는 —콘하우저(Kornhauser), 스멜서(Smelser) 등의 연구와 연결되는— 집합행동이 현대 사회가 만들어내는 긴장과 균열에 대한 병리적(pathological) 반응이라는 관점입니다. 여기서는 집합행동의 비합리적(non-rational), 심지어 비이성적(irrational) 요소가 강조됩니다. 집합행동은 구조적 변화로 인해 사회적 통제와 정당화의 기관들이 붕괴하면서 생겨난 결과로 이해되죠. 그 결과로 발생한 긴장, 불만, 공격성이, 아노미적이고 좌절하며 부적응한 개인들을 집합행동으로 몰아넣고, 그 집합행동은 다시 변덕스러운 목표들과 소문, 선전, 그리고 다른 조잡한 의사소통 방식들에 기대어 유지된다고 봅니다. 이 관점에 대해 선생님은 어떤 반론을 갖고 계신가요?
사회운동을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와 긴장에 대한 병리적 반응으로 보는 믿음은, 스탈린주의와 나치즘의 경험에 의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만하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경험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봉기하는 대중(insurgent masses)을 두려워하게 만들었고, 전체주의 정당과 지도자들이 대중을 조작하고 통제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죠. 하지만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역사적 상황에서 다시 바라보면, 그 관점의 분석적 토대는 매우 약하다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우선, 그 관점은 사회질서가 ‘정상 상태’라는 의심스러운 가정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집합행동은 사회질서 내부의 불균형(disequilibrium)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병리로 간주됩니다. 또 그 관점은 집합행동의 구성적이거나 창조적인 차원(constructive or creative dimensions)을 무시합니다.
덜 구조화된 형태의 집합행동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공허 속에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다른 행위자들과의 관계 속에 얽혀 있으며(enmeshed),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의미를 생산하고(produce meanings), 자신의 필요(needs)를 표현하며, 관계를 활성화합니다. 집합행동은 결코 순수하게 비이성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노미적이거나 주변적 행동처럼 보일 때조차— 항상 어느 정도는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참여자들에게 의미 있는 현상입니다.
사실 이 점은 스멜서가 집합행동 이론에 기여한 중요한 논의들 속에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스멜서는, 집합행동이 병리라는 콘하우저 등 다른 학자들의 견해와는 이 점에서 분기하니까요.
##10Q: 1970년대 초 이래로 자원동원이론(resource mobilization theory)은 사회운동 연구를 지배해 왔습니다. 전통적인 집합행동 이론들과 달리, 이 접근은 불만(grievances)과 박탈(deprivations)이 사회운동의 출현을 설명하는 데 충분한 (혹은 아주 중요한) 조건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자원동원이론은, 사회운동의 특징이 낮은 수준의 조직성이라고 보는 전통적 관점에 대한 선생님의 비판도 받아들입니다. 대신 사회운동의 출현과 성장에서 이미 존재하던 조직들(pre-existing organizations)의 결정적 중요성을 강조하죠. 또 자원동원이론은, 최근 사회운동의 성장을 분석할 때 자원의 가용성 —모집 네트워크(recruitment networks), 참여의 비용과 편익(costs and benefits), 조직(organizations), 자금(funding), 전문가의 확보(availability of professionals)— 같은 요인들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접근은 예컨대 미국 시민권운동의 성공을 분석하는 데 그럴듯하고 유용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몇몇 연구자들에 따르면 자원동원이론은 시위운동을 보통 ‘동기화’하는 불만과 부정의(injustices)를 과소평가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원동원이론에 대한 선생님의 비판도 똑같은 반론을 피하기 어렵지 않나요?
제 연구는 자원동원이론을 활용해 왔고, 동시에 그 이론의 주창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그것을 확장해 왔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저는 그 접근을 ‘자기 자신을 넘어’ 밀어붙이려 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자원동원이론이 처음에 제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말씀하신 것처럼— 마르크스주의 전통 전반에서 두드러지는 순진한 전제, 즉 집합행동의 동기화 힘은 ‘이익’이라는 전제를 문제 삼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고통(suffering)과 사회적 불평등(social inequality)이 필연적으로 집합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상식적 가정도 거부합니다. 자원동원이론은 이런 관점들에 대해 회의적(sceptical) 태도를 취합니다.
이 이론은, 이미 존재하는 부정의와 불만이 행동을 설명하는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운동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산하는가(how movements produce themselves)'를 묻는 중요한 이론적 공간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세 가지 차원 사이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관계(complex and dynamic relationship)를 분석할 필요를 제기합니다. 곧 ① 이미 존재하는 '사회문제(social problem)', ② 행위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공통 이익(common interests)’ 감각의 형성, ③ 집합행동 그 자체입니다. 저는 이런 통찰들을 사회운동 형성에 대한 제 이해 속에 포함시키려 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단지 부정의 때문이라거나, 혹은 공통으로 공유되거나 부여된 이익만을 근거로 해서 함께 행동하기로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저는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1Q: 그렇다면 이 점을 더 밀어붙여야 하지 않을까요? 선생님이 말하듯이, 사람들이 '인식한' 불만과 부정의는 집합행동의 단순한 출발점이 아닙니다. 어떤 것이 불만과 부정의로 ‘인정’되는 것 자체가, 언제나 부분적으로는 상호작용의 산물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10년 동안 서유럽 평화운동은 단지 이미 존재하던 핵 위협에 반응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 운동은 핵 위협에 대한 대중적 감각을 구성하고 고조시키는 데도 기여했죠. 이런 점은 최근 운동들 전반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특징 아닌가요?
그건 확실히 그렇습니다. 행위자들이 어떤 것을 ‘불만’으로 규정한다는 것 자체는, 그들이 객관적 문제가 자신들에게 ‘문제적(problematic)’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해주는 인지적·상호작용적 기술을 갖고 있음을 전제합니다. 객관적 문제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상호작용의 과정 속에서 그것을 그렇게 지각하고 정의할 수 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것은 ‘문제’로서 존재하게 됩니다.
##12Q: 자원동원이론이 특히 미국 사회과학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려왔다는 사실은 눈에 띕니다. 거의 자원동원이론은 ‘미국적 현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왜 그렇습니까? 미국 특유의 지적 전통 때문인가요? 미국 사회운동의 성격이 달라서인가요? 아니면 ‘비즈니스적 사고‘business thinking’(Perrow)나 ‘기업가적(entrepreneurial) 모델’(McCarthy and Zald)의 강조 같은 것의 우세 때문인가요?
자원동원이론은 확실히 미국적 현상이고, 그 이유는 세 가지 방식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우선, 사회운동의 삶에서 사회적 자원의 가용성을 핵심 요인으로 보는 초점은, 미국과 서유럽의 집합행동 사이에 있는 중요한 차이를 표현합니다. 미국의 사회운동은 언제나 시민적 삶(civil life)과 더 밀접하게 얽혀 있었고, 따라서 압력단체(pressure groups)와 자발적 결사(voluntary associations)에 토대를 두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유럽의 사회운동은 계급 행위자(class actors)와 정당(political parties)에 더 밀접하게 묶여 있었고, 계급 이익을 정치적 목표로 전환시키는 데 훨씬 더 관심이 컸습니다. 이런 중요한 차이는, 유럽과 미국 사이의 서로 다른 사회구조와 국가개입 패턴을 반영하는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사회의 상대적 개방성과 중앙집권적 국가구조의 부재는, 더 분산적이고 비정치적인 동원 형태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중앙집권적 국가구조가 집합행동에 일종의 자석처럼 작동해 왔죠.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에서는, 표현된 사회적 불만이란 언제나 국가권력의 편재(omnipresence)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래서 국가권력과 상호작용하거나 그것에 맞설 수 있는 정당 및 다른 정치조직들에 의존하려는 유혹이 강해져 왔습니다. 이런 일반적 경향의 극단적 역사 사례가 바로, 관료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차르 체제에 맞서 ‘전문 혁명조직’을 구축했던 볼셰비키 전략이었습니다.
자원동원이론은 미국 지성사(intellectual life)의 특정한 패턴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기업과 행정의 분석에서 조직이론(organization theory)이 전례 없이 발전해 왔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원동원이론은 미국적 현상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조직이론 패러다임의 개념과 통찰을 사회운동 연구 영역으로 —지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번역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자원동원 접근은 또 다른 의미에서도 미국 특유의 지적 현상(intellectual phenomenon)입니다. 미국에서는 마르크스주의 및 급진 사상이 사회학 전통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회운동 연구 분야에서 자원동원이론은 ‘대체 급진주의(ersatz radicalism)’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미국 사회학의 보수적 지향에 대한 일종의 급진적 반대처럼 보이죠. 그러나 우리가 앞서 논의한 오래된 집합행동 이론들에 대한 그 비판은 비교적 절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자원동원이론은 새로운 정통(new orthodoxy)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도화된 급진주의(institutionalized radicalism)’의 한 형태입니다. 예컨대 미국사회학회 안에서 새로 생긴 사회운동 섹션에서 지배적 패러다임이 된 것이 그 사례입니다. 지적 정당화라는 측면에서 자원동원이론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운동 연구 분야에서 세계 학술 시장을 정복하기 시작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구조이론 및 이원론적 접근의 한계
##13Q: 서유럽에서는 이른바 ‘구조이론(structural theories)’이 사회운동 분석에서 여전히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구조이론은 현재 체제의 사회경제적·정치적 수준에 초점을 맞춰, 집합행동을 체제의 거시수준(macro-levels)에서 벌어지는 위기나 조정에 대한 반응으로 설명하죠. 예컨대 하버마스는, 새로운 사회운동이 추상적이고 물상화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제·정치 메커니즘이 ‘생활세계(life-world)’를 ‘침투’해 들어와, 개인적·집합적 정체성이 구성되고 방어되는 사회생활의 영역을 파괴하는 과정—‘생활세계의 식민화(colonization of the life world)’—의 부산물로 가장 잘 이해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진정으로 보편주의적이라고 간주되는 여성운동을 제외하면― 운동들은 ‘일상생활의 관료화(bureaucratization of everyday life)’에 맞선 방어적 반응으로 해석됩니다. ‘문화적 재생산(cultural reproduction)’의 영역에서 —생활세계와 정치경제가 맞닿는 접면— 출현한 새로운 운동들은, 개인적·집합적 정체성을 찾는 과정 속에서 주로 저항과 후퇴(resistance and retreat)에 관여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선생님께서 이런 유형의 기원 분석에 유보적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생활세계의 식민화는 복잡사회에서 분명 관찰 가능한 경향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버마스의 논지에 대해 이론적·경험적 유보를 갖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현대 운동 분석은 충분히 ‘분화(differentiated)’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운동들을 통일된 실체(unified entities)로 다루고, 그 결과 현대 운동 내부의 서로 다른 현실들을 —행위자들과 지향의 다양성(variety of actors and orientations)— 가려버립니다.
이런 이론적 반론은 몇 가지 경험적 의심에 의해 더 강화됩니다. 자료를 보면, 이 운동들 안에는 뒤를 돌아보는(backward-looking) 반응적 행동 형태만큼이나, 앞을 향하는(forward-looking) 적극적 저항 형태도 최소한 그에 못지않게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운동 내부의 사람들은 집단, 센터,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데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합니다. 이런 행위는 단지 방어적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개인적 성장을 경험하고, 대규모 조직이 자신들을 (위협적으로) 조작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맞서 ‘안전 감각(sense of security)’을 형성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종류의 행위는 식민화 현상 그 자체에 의해 오히려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14Q: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하버마스가 식민화 과정이 의도치 않게 자기 자신을 거슬러 되돌아오는 방식을 과소평가한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식민화는 매우 양가적 과정입니다. 그것은 생활세계를 (시도적으로) 지배(domination)하려는 것을 포함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일상생활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주입(injection)’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복지국가의 보건정책은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건강 정보와 질병 예방 정책은 —에이즈 대응 캠페인이 보여주듯— 다른 어떤 정책 영역보다도 더 깊숙이 일상생활을 침투합니다. 보건의료 서비스는 가장 친밀한 차원에서 사람들을 조작하고 통제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바로 그 동일한 경로들을 통해 건강의 조건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자신의 건강상 필요와 권리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획득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새로운, 그리고 더 의미 있는 관계들 속에서 조직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런 새로운 행동 형태를 ‘발명(inventing)’해내는 과정은 언제나 권력과 자원의 불평등에 의해 좌절되곤 합니다. 그래서 갈등과 운동은 식민화 과정의 근본적 측면이 됩니다. 그럼에도 대규모 조직에 의한 일상생활의 식민화는 일차원적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행정적 통제의 형태를 확장하는 동시에,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사회성의 형태들을 촉진하기도 합니다.
##15Q: 지금까지 말씀하신 바는, 사회운동을 분석해온 19~20세기 이론 전통 전체에 대해 선생님이 불만을 갖고 계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선생님은 마르크스주의 계급분석, 자원동원이론, 하버마스의 구조이론 같은 기존 접근들과의 불일치를 이미 분명히 하셨죠. 그렇다면 이제 저희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주요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선생님의 ‘적극적’ 기여가 무엇인지 탐색해보고 싶습니다. 『Nomads of the Present』에서 특히 흥미로운 주장은, 이전 접근들이 모두 ‘이원론적 사고(dualistic thinking)’에 의존해 왔고, 그 결과 집합행동이 생산되는 복잡한 과정들을 간과해 왔다는 점인데요. 이 점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원론적 사고는 사회생활의 객관적 차원 또는 주관적 차원 가운데 어느 한쪽을 강조합니다. 즉 사회의 구조 속에 새겨진 강력한 힘을 —예컨대 경제적 생산과 교환 영역에서의 ‘운동 법칙(laws of motion)’— 강조하거나, 혹은 행위자들의 신념, 의도, 표상, 문화적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식이죠.
이런 사고방식은 근대 사회과학 전체, 특히 사회운동 분석을 지금까지 이끌어 온 역사철학들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런 역사철학들은 대개 사회운동에 혁명적 역할을 부여하거나, 국가권력의 장악이 집합행동의 핵심 목표라고 가정하거나, 집합행동이 사회질서를 전복한다는 보수적 신화를 받아들입니다.
제가 이원론적 사고에 대해 갖는 넓은 차원의 반대는, 그것이 사회적 행위가 어떻게 구성되고 ‘활성화(activated)’되는지를 —즉 행위자들이 자신들이 상호작용하는 환경이 제공하는 (제한된) 자원에 의존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행위를 만들어내고 작동시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구조이론은 행위의 ‘환경적 한계’를 설명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행위는 결코 주어진 사실(a given fact)이 아닙니다. 그것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생산(socially produced)됩니다.
특정한 구조들의 경계 안에서, 사람들은 인지적(cognitive)·정동적(affective)·상호작용적(interactive) 관계들에 참여하고, 자기 자신의 사회적 행위와 (어느 정도는) 자신들의 사회적 환경까지도 창조적으로 변형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기껏해야 예비적 정식화(preliminary formulation)일 겁니다 —집합행동에 대한 이원론적 분석을 넘어서는 첫걸음 같은 것이죠. 하지만 이론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저는 이 첫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밀라노 프로젝트 연구 방법론
##16Q: 밀라노 지역의 여러 운동들에 대한 선생님의 경험연구는, 선생님 작업에서 두드러지지만 —그런데도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 중 하나입니다. 집합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사용하셨나요? 그리고 이 경험연구의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밀라노 연구 프로젝트는 4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연구자 10명으로 구성된 팀이 수행했고, 네 가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 운동 활동가 집단들과 상당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여성들, 도시 청년 집단(펑크나 사회센터 같은 곳), 생태주의자들, 그리고 공식 교회 바깥에서 활동하며 강한 영성주의적 지향을 지닌 신종교 집단들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전반적 목표는 단지 현대 사회운동에 대한 일반적 지식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목표는, 집합행동이 ‘구성되는(constructing)’ 과정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었습니다.
##17Q: 이건 사회운동 연구 분야에서 아마도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그런데 가장 덜 탐구된— 문제 중 하나일 겁니다. 아주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질문, 즉 왜 개인들이 사회운동에 관여하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건드리니까요.
맞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집합행동에 대한 경험연구에서 지배적인 두 가지 유형의 연구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몇 가지 어려운 방법론적 문제를 제기합니다.
하나는, 사회구조 속에서 행위자들이 차지하는 위치와 그들의 신념 및 행위 양식 사이의 경험적 연결을 보여주려는 접근입니다. 이 접근은 설문조사, 인터뷰 등 여러 수단을 통해 노동자, 학생, 운동 활동가 같은 집단의 사회적 배경, 태도, 활동에 관한 자료를 수집합니다. 그리고 집합행동의 구조적 변수와 행동적 변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려고 하죠.
다른 하나는, 사회운동의 이데올로기에 —즉 사회적 행위자들이 문서나 연설에서 자기 자신과 자기들의 사회 현실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초점을 맞추는 접근입니다.
제 생각에 두 접근 모두 매우 유용합니다. 하지만 둘 다,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모여 ‘운동’이라고 불리는 무언가를 구성해내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합니다. 제 경험연구는 바로 이 문제에 집중해 왔고, 이를 검토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론을 개발하려고 시도해왔습니다.
기본적으로, 연구 방법론은 세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우리는 밀라노 지역에서 집합행동에 관여하는 다양한 집단들을 폭넓게 조사했습니다. 이 첫 단계는 경험적 가정 하나에 기대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 집단들이 스스로를 어떤 운동의 ‘활동적 구성원(active members)’으로 규정한다는 바로 그 점(virtue of their self-definition) 때문에 사회운동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는 가정이었습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 모든 집단들과 심층 인터뷰(in-depth interviews)를 진행했습니다. 여기서 즉각적인 목표는 단지 집단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우리와 그 집단 자체 사이에 ‘작업 관계(working relationship)’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단계는 연구팀에게 큰 노력과 집중적 훈련을 요구했는데, 방법론적으로 매우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단계 덕분에 우리가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실험적(experimental)’ 단계에서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구축된 그 이전의 관계를 더 심화시키고 확장했습니다. 우리는 각 운동에서 관찰 대상으로 한 집단을 하나씩 선정했습니다. 이 실험 단계에서 집단 구성원들은 비디오로 기록되는 세션에서, 자신들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우리를 위해서이기도 하게 행동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집단 구성원들에게도, 자신들의 관계를 ‘활성화’하고,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성찰하며,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집합적 정체성(collective identity)을 산출하는 과정을 —즉 자기 자신을 운동의 참여자로 정의하게 되는 과정— ‘모의(simulate)’해볼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18Q: 선생님이 방금 개괄하신 경험연구 방법은, 투렌의 ‘사회학적 개입(sociological intervention)’ 방법과는 분명히 어긋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투렌은 사회학자의 역할을 사회운동의 ‘진실을 말하는 사람(truth-teller)’으로 보죠. 연구자는 사회운동을 잠재적 통일체(potential unity)로 보고, 그 운동의 ‘가장 높은 의미(highest meaning)’는 인과적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봅니다. 연구 프로그램은 행위자들이 자신의 투쟁을 자기 분석(self-analysis)하는 과정에 ‘선동(incitement)’이나 ‘가설(hypothesis)’로 개입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연구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성공적인 ‘전향(conversion)’을 —즉 운동 참여자들에게 그들의 행위가 지닌 ‘가능한 최고 의미’를 밝혀주는 가설을 정식화하는 것— 달성하고, 그리하여 젊은 사회운동이 ‘진정한 정체성(true identity)’을 찾도록 돕는 것이죠. 이 방법론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투렌이 행위의 자기-생산(self-production of action)을 —‘행위 속에서의 행위(action in action)’— 분석하는 데 기여한 방법론적 공헌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물론 행위를 관찰하는 데 따르는 몇몇 방법론적 문제들은 오래전에 커트 레윈(Kurt Lewin)이 제기한 바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자각은 심리학과 사회심리학에서도 분명히 나타나지만, 두 경우 모두 —제 심리학 훈련이 분명히 보여주었듯— 그 방법론적 기법은 개인이나 소집단에만 적용 가능합니다.
제가 알기로 투렌은 사회운동의 행위 장(field of action)을 분석하기 위한 ‘특정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지적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결코 작은 성취가 아닙니다. 방법론적 결핍에 대한 자각 자체가, 이미 그것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니까요. 이런 점에서 제 경험연구 기법들 역시 투렌의 ‘사회학적 개입’ 방법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연구방법에서 두 가지 측면을 비판합니다.
첫 번째 이의 제기는, 투렌이 사회운동에는 ‘가능한 최고 의미’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데 있습니다. ‘가능한 최고 의미’라는 생각은, 어떤 역사적 시기든 하나의 중심적 사회운동이 존재한다는 가치부하적(value-laden) 가정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정은, 다른 모든 형태의 집합행동은 ‘더 낮은(lower)’ 것으로 간주된다는 결론을 동반합니다.
제 연구방법은 이런 규범적 가정을 피합니다. 제 방법은 집합행동의 진리를 알고 있다고 가정하지도 않고, 행위자들에게 무엇이 좋은지 안다고 전제하지도 않습니다. 누구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것도 아니죠. 대신 제 방법은 집합행동의 서로 다른 수준(levels)과 의미(meanings)를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들이 위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고 가정하지 않은 채로, 그 차이들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제가 앞에서 설명한 ‘실험적 단계’가 바로 그 지점입니다. 그것은 집합행동의 서로 다른 의미들이 모두 표면으로 드러나도록 독려합니다. 실험 단계에서 제가 두는 유일한 가정은, 행위자들이 자기 행위의 의미를 —비록 완전히는 아닐지라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늘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부분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혼란스럽거나, 우리가 하는 일에 감정적으로 휘말릴 때는 어떤 것들을 보지 못하죠 —그러다가 서로 다른 의미들을 분석하면서 자기 행위를 자각하게 될 때에야 보게 됩니다.
집합행동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집합적 행위자들은 자신들이 부분적으로만 통제할 수 있는 지식, 교환, 관계의 체계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집합적 행위자들 역시 자기 행위의 의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 행위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연구자와 행위자 사이에는 ‘계약적 관계(contractual relationship)’가 가능해집니다. 연구자는 자신의 과학적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정보가 필요합니다. 연구자는 (예컨대 지식 같은) 특정한 기술과 자원을 갖고 있는데, 행위자들은 그것이 자기들의 행위를 명료화하는 데 가치가 있다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가 이런 자원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위자이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분석가가 될 수는 없는 사람들에게 분석을 제공할 수는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연구자는 자신의 과학적 목표를 추구하는 동시에, 행위자들이 자기 행위의 상호작용적 성격을 더 자각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는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행위 양식 속에서 자신을 ‘위치시키도록(locate themselves)’ 돕고, 그 결과 그들이 자신의 선택과 행위에 더 큰 책임을 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능한 결과는 연구자가 선교사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연구자와 행위자가 각각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그 계약적 관계의 부산물(by-product)입니다.
##19Q: 그건 집합행동의 ‘형식(form)’보다는 ‘내용(content)’을 바꾸는 데 집중하고, 연구자와 행위자 사이의 위계적 관계를 함축하는 투렌의 ‘전향(conversion)’ 기법과는 아주 다르군요.
네, 다만 저는 그 위계적 관계가 투렌의 방법론에 의해 반드시 함축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20Q: 투렌에 대해 선생님이 갖고 계신 다른 방법론적 반대는 무엇인가요?
그건 ‘전향(conversion)’을 달성하기 위한 그의 절차 논리와 관련된, 기술적(technical)인 쟁점입니다. 잠시 앞서의 비판은 접어두고, 어떤 연구자가 한 운동의 행위가 지닌 ‘가능한 가장 높은 의미(highest possible meaning)’를 알고 싶어 하고 또 그 의미를 운동에 ‘전달(transmit)’하고 싶어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문제는, 연구자가 관찰된 행위가 자기 개입(interventions)의 산물인지 아닌지를 결코 확신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투렌의 연구 절차는 자기 효과(own effects)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 ‘전향’ 과정이, 연구자가 관찰 중인 집단과 상호작용한 결과일 뿐인지, 혹은 어느 정도까지 그런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밀라노 연구는 이 난점을 극복하려고, ‘실험적(experimental)’ 단계에서 행위의 형식적이고 현상학적 수준에 집중했습니다. 다시 말해, 관찰 대상 집단들과의 교류 속에 어떤 해석적 내용도 조심스럽게 들여놓지 않으려 했습니다. 우리가 시도한 것은 오직 그 집단들에게, 그들의 행위가 ‘왜’ 그런지가 아니라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관한 정보를 피드백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관찰되는 행위자들에게 미치는 효과를 허용 가능한 정도로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집단이 우리에게 실제로 드러낸 것이 그 집단 자체의 산물이며, 또한 우리와의 의식적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합리적으로 가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구의 최종 단계에서는, 집단들과의 실제 상호작용과는 분리해서, 설명적 가설을 통해 우리의 관찰을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알랭 투렌 너머
##21Q: 투렌과의 또 다른 중요한 의견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투렌은 어떤 사회에서든 중심적인 사회운동은 하나뿐이라고 주장하고, 그래서 산업사회에서 노동운동이 가졌던 중심적 역할을 내일은 어떤 새로운 사회운동이 이어받게 될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집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런 질문 방식이 불편해 보이는데요. 그건 선생님의 총체론(holism)에 대한 반대 때문인가요?
네. 투렌이 말하는 ‘중심 운동(central movement)’이라는 생각은, 운동을 하나의 ‘등장인물(personnage)’로 —역사의 무대 위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통일된 행위자(unified actors)— 가정하는 전제에 여전히 매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오늘날 ‘복잡사회’의 조건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제가 앞에서 말했듯이, 체계의 지배적 구조와 한계, 다시 말해 핵심 자원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전유되며, 또 그것을 둘러싸고 어떤 투쟁이 벌어지는지를 분석하는 과제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다만 이런 분석이, 그 체계가 단일적(monolithic)이라는 뜻도 아니고, 그 체계 안의 집합행동이 하나의 통일된(unified) 운동으로 표현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복잡사회 안에서 —투렌 자신도 인정하듯— 집합행동은 고도로 분화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걸려 있는 자원과 쟁점에 따라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합니다. 그래서 어떤 갈등이 왜 ‘핵심 갈등(core conflicts)’이 되는지 설명하기가 어려워지는데, 특히 그것이 오직 제한된 기간 동안, 그리고 특정 쟁점들과 관련해서만 핵심 갈등이 되는 경우에는 더 그렇습니다.
##22Q: 『La Voix et le Regard』와 『Le Mouvement Ouvrier』에서 투렌은 노동운동이 중심적 사회운동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했고, 정치적으로 제도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선생님도 이 견해에 동의하십니까?
서유럽과 북미에서 노동계급 운동이 점점 더 제도화된 정치적 장(institutionalized political arena)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기본적으로 투렌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전통적인 자본주의적 의미에서의 노동계급 갈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탈산업적(post-industrial)’ 생산 형태에 특유한 새로운 유형의 집합행동이 —예컨대 여성, 청년, 이주민, 일터 바깥에서의 사회적 존재 방식으로 규정되는 다른 집단들의 행동— 새롭게 등장하고 있으며, 동시에 더 전통적인 산업 갈등과 서로 합쳐지거나(merging) 등장하는(emerging) 양상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23Q: 『La Prophétie anti-nucleaire』에서 투렌은 반핵 투쟁이 우리 시대의 중심적 사회운동으로 결정화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다른 투쟁들은 근대 산업주의의 패러다임 안에 머무는 반면, 생태(환경)운동은 혁명적 힘입니다. 그것은 근대성의 지배적 이미지들을 문제 삼고, 지배적인 경제·정치 구조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아가길 원하는지에 관한 공적 논쟁을 강제합니다. 선생님도 생태운동에 대한 이런 관점에 유보적인 입장이신가요?
‘운동(movement)’이라는 용어는 —기껏해야 대화(conversational)를 위한 도구일 뿐인데— 이 형태의 집합행동이 (가질 수 있는) 통일성의 정도를 과장할 위험이 있습니다. 투렌 자신이 지적하듯, 유럽의 생태운동은 정치적 갈등에서부터 방어적 반응, 그리고 일상생활의 코드들에 대한 도전까지, 서로 다른 수준의 행위를 포함합니다.
또한 그 운동은 다양한 의미들을 품고 있습니다. 예컨대 농촌 공동체 근처에 핵발전소 입지를 추진한다는 계획에 반대하는 동원을 생각해 봅시다. 그 공동체의 농민들에게 그 발전소는 전통적 삶의 방식에 대한 위협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도에서 공부하고 다시 고향 농촌으로 돌아온 젊은이들 집단에게 그 계획은 전혀 다른 것을 상징할 수 있어요. 예컨대 자율적으로 살아보려는 그들의 시도 자체에 대한 위협 말입니다.
이처럼 생태적 동원 안에 서로 다른 의미와 행위 형태들이 뒤엉켜 있는 ‘복잡한 콜라주(intricate collage)’는, 그 동원들이 제도정치로부터 점점 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증거들 때문에 한층 더 복잡해집니다. 처음에는 생태운동이 주로 정치적 행동에 관여했지만, 오늘날에는 ‘일상의 생태(everyday ecology)’와 개인 정체성의 변형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신사회운동에서 새로움이란
##24Q: 현대 사회운동을 분석하려면, 결국 “그들은 무엇을 성취하는가(What do they achieve?)”라는 핵심 질문을 다루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선생님 글에서는 이 질문을 전통적으로 해오던 방식이 —즉 ‘성공’이나 ‘실패’로 답하는 방식— 근본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하셨죠. 선생님은 운동이 주로 문화의 장에서 작동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생님의 논지는 복잡사회에서 경제자원 관리의 비중이 줄고, 상징·정체성·욕구를 포함하는 사회관계의 생산이 중요해지는 쪽으로 강조점이 이동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에 상응하여, 현대의 갈등 성격도 생산 기반 갈등에서 벗어나 변하고 있다고 주장하셨고요. 그렇다면 ‘새로운 사회운동’은 본질적으로 ‘탈물질적(post-material)’ 질문들에 —즉 문화적 코드의 재정의— 관심을 두고 있다는 뜻인가요?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사회운동의 ‘새로움’인가요?
저는 ‘새로운 사회운동’이라는 용어를 영어권에 처음 소개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그 용어가 만들어낸 오해들에 저 역시 한몫했을 겁니다! 저는 그 용어를 계속 쓰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Nomads of the Present』이 설명하려 하듯, 저는 그 용어가 ‘물화(reification)’되는 방식에 불만이 커졌고, 그 의미를 더 분명히 하고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용어는 흔히 연대기적 의미에서 느슨하게 사용됩니다. 즉 1960년대 초 이래, 그 당시 지배적이던 집합행동의 유형들과는 다른 행동 형태들이 성장해왔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식이죠. 하지만 이런 사용법은 ‘새로운’ 운동들이 통일된 실체(unified entities)라고 잘못 가정합니다.
제가 ‘새로운 사회운동’ 문헌에 대해 갖는 핵심 이론적 이의는, 그 문헌이 현대 운동들의 ‘구성적(composite)’ 성격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됩니다. 현대 사회운동이 본질적으로 분화(differentiated)되어 있고 —매우 전통적인 행동 형태까지 포함하는, 복수의 수준(plurality of levels)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계급 갈등이나 정치투쟁에 대한 전통적 분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행위가 실제로 나타나는가하는 질문 말입니다.
##25Q: 이 질문에 답하려면, 선생님의 밀라노 프로젝트 같은 경험적 연구만으로는 부족해 보입니다. 분석적으로는, 오늘날 사회운동이 갖는 여러 차원을 분명히 하고, 또한 ‘새로움(novelty)’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정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제 견해로는, 동시대 운동들 안에는 행동과 의미의 새로운 차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새로움’이 오직 새로운 가설들을 —노동운동을 분석할 때 사용하던 용어들과는 다른 용어들— 도입할 때에만 설명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핵심 가설 하나는, 오늘날 운동들에는 네 가지 새로운 구조적 특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이 운동들의 일부 부문에서 정보 자원(information resources)이 수행하는 중심적 역할입니다. 오늘날의 운동들은 주로 ‘기호(signs)’로서 작동합니다. 그들은 물질적 재화와 자원의 생산과 분배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대신, 정보에 주로 관심을 둡니다. 여기서 정보란 좁은 의미에서는 예컨대 원자력 발전소 부지 선정 같은 문제에 관한 ‘사실 정보(factual information)’를 요구하는 것을 뜻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상징 자원(symbolic resources)을 둘러싼 투쟁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이 성차별적 광고에 도전하는 경우가 그렇죠.
둘째는, 운동의 일부가 사회적·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instrumental)으로 간주되지 않는 조직 형태를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조직은 목표 달성의 도구라기보다, 집합행동 그 자체를 ‘경험하는 방식’으로 주로 여겨집니다. 유럽 평화운동의 네트워킹, 여성운동의 의식화 집단이 이런 새로운 경향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동시대 운동의 참여자들은 현재형으로 행동합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거창한 비전에 의해 추동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조직 또한 그런 비전을 실행하기 위한 도구(vehicle)가 아닙니다. 오히려 운동 조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참여 자체를 목적(participation as an end in itself)으로 봅니다. 그들에게는 의도된 목적지 못지않게 그 ‘여정(journey)’이 적어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셋째의 새로운 특징은, 동시대 운동이 집합행동의 잠재적(latent) 차원과 가시적(visible) 차원을 통합한다는 점입니다. 사회주의·노동자 정치의 전통에는 —특히 투사들 사이에서— 사적 삶과 공적 삶 사이의 분리가 있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각 영역에서의 정서적 투자, 인지적 틀, 삶의 양식이 서로 달랐죠. 하지만 동시대 운동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신, 새로운 의미가 직접 생산되고 경험되는 사적 삶과, 공적으로 표현되는 헌신 사이에 상보성(complementarity)이 존재합니다. 다르게 살아가기(living differently)와 사회를 바꾸기(changing society)는 상보적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새로운 운동들 안에서는 잠재적 차원과 가시적 차원 사이의 적절한 관계에 대해 더 균형 잡힌 감각이 있습니다. 공적-정치적 행동에의 관여는 일시적 필요로 인식됩니다. 투사가 되고자 살고 있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 살아가기에, 때때로 공적인 투사도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시대 운동들은 복잡사회가 지닌 전지구적 차원에 대한 새로운 자각의 씨앗을 보여줍니다. 이런 ‘행성적(planetary)’ 의식은 노동자운동의 더 제한적인 ‘국제주의(internationalism)’보다 더 넓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상호의존적인 인간-자연 세계체계 속에서 ‘인간 종(species)’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자각을 포함합니다. 저는 몇 해 전, 백인 중산층 미국 대학생들이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해 동원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점의 근본적 중요성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들은 아파르트헤이트와 직접적인 정치적 연계를 갖고 있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했거든요. 이런 새로운 총체성 감각은 평화운동과 생태운동에서도 강하게 드러납니다. 이 운동들은 인류와 더 넓은 전지구적 우주(global universe) 사이의 연결을 강조합니다.
##26Q: 선생님의 동시대 사회운동에 대한 견해에서 특이한 점 하나는, 그 운동의 ‘형식(form)’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message)’라는 주장입니다. 이건 맥루한의 ‘미디어가 곧 메시지다(medium is the message)’라는 논지와 꽤 가까워 보이는데요. 선생님 말씀은, 운동의 형식이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목표이기도 하며, 현실 그 자체에 대한 대안적 경험(혹은 명명)이라는 뜻인가요?
네. 운동이 하나의 ‘메시지(message)’ 혹은 ‘기호(sign)’로 작동한다는 제 주장은 —확실히 맥루한의 영향을 받았고요— 그들이 보통 알려진 특정한 실질 쟁점들보다 더 많은 것, 그리고 다른 무엇을 표현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겁니다. 운동들은 자신들의 특정한 맥락에서, 복잡사회에서 ‘근본적인 사회관계’가 어떤 형태를 가져야 하는지에 관한 숨겨진 논쟁들을 비추는 신호를 보냅니다.
중요한 예 하나는, 운동들이 복잡사회에서 ‘차이(difference)’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자기 특수성을 확인할 가능성— 논쟁적 쟁점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도록 돕는 방식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운동들은 복잡한 체계가 이미 높은 학습 능력, 즉 ‘성찰성(reflexivity)’을 더 증대시킵니다. 그들은 사회가 자기 자신에게 작용하는 새로운 장(field)을 시작하게 하고, 또 그것을 공론화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운동들 내부에는 분명한 긴장이 생깁니다. 즉 참여자들의 주장과 활동 영역이 가진 ‘특수주의(particularism)’와, 그들이 제기하는 ‘일반적이고 형식적인 문제들(general formal problems)’ 사이의 긴장입니다. 이 긴장은 피할 수 없습니다. 행위자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끌어오는 특정한 언어, 행위, 맥락, 자원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여성운동은 여성에게 특수한 쟁점들을 다루는 동시에, 복잡사회에서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숙고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여성들은 젠더화된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처한 조건의 특수성에 기대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지배문화가 부정하거나 억압해온 차이를 위해 투쟁합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은 동시에, 점점 더 통합되면서도 동시에 점점 더 분화되는 사회에서 ‘차이를 다루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리고 복잡사회에서는 차이를 인식하고 확인해야 할 필요가 커지는 만큼, 소통에 —연대, 사랑, 연민— 대한 필요도 함께 커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잠복된 네트워크
##27Q: 선생님은 최근 사회운동의 중요한 특징이 그 ‘비가시성(invisibility)’이라고 —주로 파트타임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지하 네트워크(subterranean networks)를 통해 작동한다는 점— 관찰하셨죠. 그리고 이 비가시성이 운동의 강점 중 하나라고 암시하십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이 특징을, 새로운 사회운동의 쇠퇴, 동력 상실, 무력함의 징후로 봐 왔습니다. 이 관찰자들에 따르면, 사회운동은 ‘체계의 한계를 깨는’ 것이 아니라 (1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쇠퇴 국면에 있으며, 서서히 스스로를 태워 소진(burning themselves out)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건데요. 이런 비관적 견해에 대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동원(mobilizations)과 운동 전체가 사라질 수 있고, 실제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비관적 견해는, ‘비가시성 단계(invisibility phase)’ 동안에도 매우 중요한 활동이 많이 일어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회운동의 잠복된 네트워크(submerged networks)는 경험의 실험실(laboratories of experience)입니다. 새로운 문제와 질문이 제기됩니다. 새로운 답이 발명되고 시험됩니다. 현실은 다른 방식으로 지각되고, 또 다른 방식으로 이름 붙여집니다.
이 모든 경험은 특정한 ‘국면(conjunctures)’에서, 그리고 자원동원이론이 설명하는 종류의 조직화 활동을 통해서만 공적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잠복된 네트워크의 이런 실험실 경험이 없다면, 그 어떤 공적 활동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말한 비관적 견해가 이 핵심을 놓치는 이유는, 운동의 정치적 효과성에만 좁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가면, 그것은 “지식인과 정치 조직가들만이, 나중에 공적 형태로 제시될 새로운 경험을 준비한다”는 레닌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28Q: 선생님이 잠복된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방식은, 선생님이 비판하신 그 견해가 전제하는 권력 개념과도 상당히 어긋나 보입니다. 그 비관적 견해는, 국가 관료제나 자본주의 기업 같은 대규모 조직이 사실은 일상적 권력관계의 복잡한 ‘분자적 네트워크(molecular networks)’ 위에 서 있다는 점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사회운동이 그런 분자적 권력을 변형하면, 그 효과가 필연적으로 대규모 조직에도 유발된다는 점을 과소평가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복잡사회에서 권력관계는 ‘마이크로칩화(microchipization)’의 대상이 됩니다. 즉 행위자들은, 일상생활의 변화가 제도적 효과를 낳는다는 걸 자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운동의 작은 지하 네트워크들은, 기존 권력관계에 대해 실험이 수행되는 실험실처럼 보입니다.
이 점에서 제 권력 이해는 푸코, 들뢰즈, 가타리 등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권력을 ‘주체의 구성과 관리’로 보는 ‘일차원’적 권력관을 공유하는 반면, 제가 보기에 복잡사회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이런 결과입니다. 곧, 현실의 의미를 규정하려는 강력한 조직들과, 그 동일한 조직들의 자원을 이용해 현실을 새로운 방식으로 규정하는 행위자 및 행위자 네트워크(actors and networks of actors)들이 맞물려 만들어내는 ‘합성 결과(resultant)’ 말입니다.
#반론들
##29Q: ‘새로운 운동들이 지배적인 문화 코드에 중요한 도전을 제기한다’는 선생님의 논지에 대해, 한 가지 심각한 반론이 있습니다. 새로운 운동들이 때때로 본질적으로 ‘비정치적(apolitical)’인 자기애적 충동, 즉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물들어간다는 지적입니다. 예컨대 1960년대 ‘미국 운동(American Movement)’이 쇠퇴한 과정을 해석할 때 이런 점이 강조되곤 했죠. 자기충족의 충동, ‘개인적으로 움직이고 싶다’는 욕망이 그 운동에서 강하게 드러났습니다. 그 결과, 개인적 만족에 과도한 비중을 두고, 친밀감·표현·자유를 성취하려는 데 몰두했다는 건데요. 이 경향은 정치적 헌신의 약화와 ‘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alism)’(Castells)의 확산에서 나타났습니다. 약물 문화, 성적 실험, 동양 종교 숭배, 록 음악, ‘드롭아웃(drop outs)’과 ‘히피(hippies)’ 같은 것들이요. 우드스탁(Woodstock)과 올트먼트(Altamont)가 점차 포트 휴런(Port Huron)과 시카고 포위(Siege of Chicago)를 ‘운동’의 규정적 순간으로 대체해 갔습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의 코드에 도전하려는 이런 탐색은 —노먼 O. 브라운이 ‘디오니소스적 자아(Dionysian ego)’라고 부른 그것— 수천 명의 젊은이들의 정치적 헌신을 희미하게 만들어, 결국 운동을 약화시켰다는 겁니다. 이 사례는 모든 새로운 운동에서 자기애적 도피가 갖는 위험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당신이 예로 든 자기애적 도피의 위험은 실제로 존재하고, 비극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 논증이 나르시시즘이라는 현상의 두 가지 서로 다른 측면을 혼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 측면은 ‘개별화(individualization)’에 대한 욕망입니다. 각 개인은 고유하고 자기결정적인 존재가 될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동시대 운동들 안에서,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 이런 자기실현(self-realization)의 욕망은 매우 강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체계 수준에서 교육, 기술적 숙련, 보편주의적 코드 같은 자원들이 생산·분배되는 것에 의해 장려되기도 합니다.
나르시시즘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공동체적 정체성에 대한 갈망, 혹은 당신이 말한 ‘정치적 부족주의’ 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연대에 대한 갈망은 개별화의 가능성에 의해 오히려 촉진됩니다. 우리가 우리 행위에 대한 개인적 책임과 관련된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우리는 더 큰 안전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불안정에 맞서는 지지대를 적극적으로 찾습니다.
바로 그래서 자기실현에 대한 욕망은 쉽게, 개인들이 타인과 동일해지면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안전하고 투명한 환경에 대한 퇴행적 유토피아(regressive utopia)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유토피아는 1960년대 미국과 다른 곳들의 운동에서도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제한적인 청년 정책, 미약한 교육 개혁, 그리고 체계의 다른 불충분한 대응들 때문에 좌절되었던 더 창조적인 개별화의 필요를 압도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런 공동체적 연대가 자기실현을 압도하는 상황은, 개인들이 자기결정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시민사회(civil society)를 만들거나 강화해야 예방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개인적 필요와, 공유된 인간적 책임에 대한 헌신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30Q: 흔히 들리는 주장 하나는 이겁니다. 동시대의 운동들은 기존의 ‘소유(property)’ 체제를 문제 삼지 않기 때문에, 자기결정(self-determination)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거죠. 이 견해에 따르면, 운동들이 중요한 문화적 질문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노동자운동이 다뤘던 —소유와 그 사적 전유(private appropriation)에 관한— 근본 문제는 건드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런 반응은 랠프 밀리밴드(Ralph Miliband)의 말로 이렇게 요약되기도 합니다. “투쟁에서 조직노동이 ‘우선적’ 지위를 갖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다른 집단·운동·세력도 조직노동이 기존 권력과 특권의 구조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만큼 효과적이고 강력한 도전을 제기할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성, 흑인, 평화 활동가, 생태주의자, 동성애자, 그리고 다른 이들의 운동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효과를 낼 수 없다거나, 혹은 자기 고유의 정체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자본주의의 주된(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무덤파는 사람(gravedigger)’은 여전히 조직된 노동계급이라는 점을 말할 뿐이다.” 소유를 중심에 둔 투쟁이 계속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이 호소에, 선생님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근본 쟁점은, ‘소유(property)’를 무엇이라고 뜻하느냐입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소유는 자연자원, 물질적 재화, 자본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소유의 형태는 ‘외재화(externalized)’되어 있었고, 그것의 소유는 인간에게 외부 자연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부여했습니다. 이런 의미의 소유는 복잡사회에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아마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들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밀리밴드의 반응은, 또 다른 종류의 소유가 —우리의 생물학적·심리적 존재에 대한 소유—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놓칩니다. 소유의 형태는 점차 ‘내재화(internalized)’되고 있습니다. 쟁점은 “누가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소유하느냐, 그리고 그 소유가 정당한가”입니다. 이 경향은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 생식기술(reproductive technologies), 의학 연구, 그리고 우리의 ‘내부 자연(internal nature)’에 대한 다른 직접 개입들이 불러일으키는 법적·정치적 논쟁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또 생태운동이 만들어낸 논쟁에서도 드러나죠. 생태운동은 물질적 소유를 통제하는 오래된 관심을, 외부 자연과 인간의 내부 자연을 모두 통제하려는 시도에 관한 새로운 질문들로 확장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유를 중심에 둔 투쟁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에서 밀리밴드에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소유’를 물질적 재화와 자본의 소유보다 훨씬 넓은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 차이는, 제가 확장한 의미에서의 오늘날 ‘소유’를 둘러싼 갈등을 자본주의 발전기 당시 재화에 대한 소유를 둘러싼 논쟁과 비교해봄으로써 탐구해볼 만합니다. 그런 비교는 전통적 소유 개념의 불충분함을 드러낼 수도 있고, 동시대 소유 형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 깊게 할 수도 있겠죠.
또 그런 비교는, 1930년대 이후 전개되어온 논쟁을 —소유(ownership) 대 통제(control), 집합적 소비(collective consumption)의 성장, 자본주의의 변화하는 성격— 더 풍부하게 하고 확장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다국적기업의 권력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들이 공유재(common goods)를 사적으로 전유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연환경뿐 아니라 개인들의 생물학적·심리적 존재에도 깊이 개입하기 때문이라는 점이 더 분명해질 겁니다. 다시 말해, 유전적 운명에 대한 감각, 성 선택, 소비 패턴 같은 것 말입니다.
##31Q: 사회학에는 —그에 동조하는 정치적 지지자들도 있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그 전통은, 복잡하고 분화된 사회(complex differentiated society)의 구성원들을 엮어주는 데 ‘문화적 전통(cultural tradition)’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죠.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에 따르면, 전통이 없으면 개인은 벌거벗은 채 고립되고 비참한 존재가 되며, 여름 끝자락의 파리처럼 허약해진다고 합니다. 이런 ‘아노미(anomie)’의 위험에 대한 오래된 경고는, 최근에는 다니엘 벨(Daniel Bell)에 의해 반복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상생활에 대한 원자화(atomizing)·쾌락주의(hedonistic)적 도전에 맞서 ‘문화적 보수주의(cultural conservatism)’가 필요하다고 옹호하죠. 운동이 전통의 적이고, 문화적 붕괴와 아노미를 조장한다는 문화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선생님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흥미로운 건, 보수주의적 주장이 때로는 정확히 반대의 논점으로 반박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운동이 전통에 너무 얽매여 있고 과거지향적이며, 충분히 진보적·근대적이지 못하다는 식의 반박 말입니다. 저는 전통과 동시대 집합행동 사이의 관계를 그렇게 보지 않는 편을 택하고 싶습니다.
제 관점에서 보면, 복잡사회에서의 체계적 경향들은 전통을 서서히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 체계들의 특징인 분화와 복잡성이 커져가는 과정은, 자본주의 체계의 성장을 가로막아 왔던 전통의 장벽들을 점차 제거해 왔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와 동시에 ‘뿌리’에 대한 체감된 필요가 성장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 필요는 복잡한 체계가 촉진하는 ‘개별화(individualization)’의 기회가 늘어날수록 함께 따라오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uncertainty and insecurity)에 의해 자극됩니다.
불안을 막아내고 기억을 보존·발전시키려는 시도는, 지역주의(regionalist)나 민족-국가주의적(ethnonationalist) 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제가 디아니(Diani)와 함께 ‘국가 없는 민족들(nations without a state)’을 다룬 연구 『Nazioni Senza Stato』에서 우리는 이런 운동들이, 국가형성과 근대화 과정에 대한 전통적 저항의 요소들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한 지역과 그 사람들의 고유한 언어·문화 전통을 끌어와서 새로운 것, 다른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도 함께 담고 있음을 보이려 했습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이런 운동들이 단순히 과거만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현재의 체계를 향해 자신을 정렬하면서, 동질화와 균질화된 문화 패턴으로 향하는 일반화된 압력에 맞서 자신들의 특정한 문화 전통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려 합니다. 이는 전통이 결코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동시대 운동들이 전통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키는 이런 양상을 이해하기에는, 19세기적 구분이 —‘진보적’ 대 ‘보수적’, 좌 대 우— 부적절하다는 이유도 함께 보여줍니다.
##32Q: 동시대 운동들이 역사적 기억(historical memory)의 실타래를 다시 묶는다는 데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이들은 이전 운동들의 주제(themes)와 조직 패턴(patterns of organization)에도 기대고, 집합행동의 전통(traditions of collective action)을 살려내고 가꾸기도 하죠. 이것이 오늘날 운동들의 역설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즉, 오늘날의 운동들은 노동운동 같은 오래된 사회적 투쟁과 여러 면에서 갈라서면서도, 동시에 과거의 투쟁 경험들을 한 다발로 다시 불러냅니다. 그 경험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고, 새로운 형태를 부여합니다.
분명히 동시대 운동들이 회수(retrieve)해서 발전시키는 전근대적(pre-modern) 경험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운동들의 조직 형태에 관한 거를라흐와 하인(Gerlach and Hine)의 연구는, 마셜 샬린즈(Marshall Sahlins)가 수렵채집(hunting and gathering) 부족들에 대해 쓴 글을 끌어오면서 바로 이 점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동시대 운동들의 그물망형(reticular)이고 분절된(segmented) 구조가, 불확실성과 복잡성의 조건에 대한 기능적 반응(functional response)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제한된 의미에서, 그것은 이른바 ‘원시(primitive)’ 부족들이 자신들이 이동하는 불확실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의 기능을 복제하고(duplicate) 증식시켰던(multiply) 방식과 닮은, 전산업적(pre-industrial) 형태를 띤다는 겁니다.
##33Q: 하지만 현대의 운동들과 근대 초기의 집합행동 형태들 사이에는 연속성도 있지 않나요? 떠오르는 예가 많습니다. 예컨대 그린 운동 안에 ‘빨강’과 ‘검정’의 주제들이 스며드는 것, 중·동부 유럽에서 사회운동들이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 전통을 구해내고 발전시키려는 의도적인 노력, 여성운동 내부에서 이전의 여성 동원에 대한 지속적인 참조 같은 것들요. 이런 예들은 오늘날의 운동이 전통을 불도저로 밀어버린다는 보수적 주장에 반례가 되지 않나요?
네.
##34Q: 그렇다면 당신이 앞서 말한 “현대 사회운동에는 ‘새로운’ 것들이 있다”는 주장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 19세기의 노동운동에는, 당신이 새롭다고 보는 네 가지 특징이 이미 모두 나타나 있었습니다. 노동운동은 분명 정보 자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고전 정치경제학의 이데올로기에 맞선 선동에서 그 점이 드러나죠. 또 이 운동들은 협동조합, 공제회, 노동조합 같은 새로운 조직 형태를 실험했습니다. 더 나아가, 특히 운동이 불법이고 정치 권력이 지속적으로 탄압하던 나라들에서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통해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국가 경계를 넘어, 또 국가 경계 아래에서 조직하려 했던 노동자들의 시도에서는 행성적(전지구적) 인식의 초기 실마리도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현대의 운동들이 근대 초기 운동들에서 이미 나타났던 행동 형태를 되살리고 확장해 왔다는 뜻 아닌가요? 다시 말해, 그들이 집합행동이라는 근대 전통의 능동적 ‘행위자’라는 뜻 아닌가요?
저도 ‘새로운’ 사회운동들이 집합행동의 이런 전통들을 보존한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통을 박물관 진열장에 올려두듯 그저 보존하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전통을 사용해서 새로운 문제에 맞서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답을 내놓습니다. 역사적 연속성은 오늘날의 사회운동 속에서 언제나 관찰될 수 있습니다. 핵심 질문은, 동시대의 행위자들이 전통의 요소들을 완전히 새로운 요소들과 종합해 의미 있게 만드는 방식이 무엇이며, 또 그 정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질성
##35Q: 운동 안의 모든 사람이 문화적 코드에 대한 도전을 ‘발견’이자 해방적이고 즐거운 투쟁으로 경험하는 건 아니죠. 오히려 대부분은 그것을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드는, 때로는 고통스러운 위기로 느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확실성을 그리워합니다. 친구와 지인을 잃을까 걱정하고, 정치적 토론에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새로운 규범에 순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도 합니다. 당신의 연구는 이런 반응을 밝혀냈나요? 그렇다면 운동의 행위자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견디고 다루나요? 이것이 운동 내부의 분열과 쇠퇴를 낳는 잠재적 원천이 —호소가 떨어져 버리는 ‘돌밭’— 될 수 있나요?
묘사하신 그 혼란과 방향 상실의 경험은 집합행동에 관여할 때 언제나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동시대의 운동들에서는 그것이 특히 더 날카롭게 나타납니다. 이 운동들은 서로 다른 과정들, 긴장들, 갈등들로 가득 차 있고, 그 때문에 개인이 그곳에 헌신하는 일은 위험하고 불확실해집니다. 제가 설명했듯이, 운동을 하나의 성격(character)이나 등장인물(personnage)처럼 보는 이미지는 오해를 낳습니다. 사회학적으로 말하자면, 운동에 ‘관여한다(involved)’는 경험은 임시적이고 매우 취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헌신이 어떤 질을 갖고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는, 그 개인에게 이용 가능한 자원에 크게 좌우됩니다.
예컨대 밀라노 연구 프로젝트에서 저는 청년운동 내부의 여러 집단들 사이에 자원 가용성에서 큰 격차가 있음을 관찰했습니다. 어떤 집단들은 내부 연대와 표현적 충동을 —기타 치기, 조인트 피우기— 중시했지만, 그것을 공적 행동으로 번역해내지 못해서 주변화되었습니다. 제한된 개인적 기술과 자원 때문에, 그들은 기타 연주와 체제에 대한 반대를 바깥 세계에서 성립 가능한 활동으로 전환하지 못했고, 결국 내부로 붕괴(implosion)해버렸습니다. 반면 다른 집단들은 더 나았습니다. 예를 들어 비디오 작업을 하던 젊은이들은 집단 안에서 특정한 기술을 발전시켰고, 그것이 정보 생산이라는 바깥 세계와 연결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공적 존재감을 가질 수 있었고, 심지어는 전문가가 되어 아예 운동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36Q: 운동 내부의 긴장과 자원 격차가 그렇게 크다면, 사람들은 대체 왜 애초에 그 운동에 들어가나요? 왜 사람들은 다층적이고, 파편화되어 있고, 매우 불안정한 집합행동 형태에 자신을 내맡기나요?
이건 정말 중요하지만 —매우 거대한— 질문입니다. 가능한 답을 주려면 최소한 세 가지 서로 다른 설명 수준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만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첫째, 복잡한 체계의 모순된 요구에 노출된 특정 사회 부문(sector)에 개인이 속해 있기 때문에 집합행동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기모순적인 사회 부문에 속한 모든 개인이 실제로 집합행동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둘째 수준의 설명도 —자원동원이론가들이 강조하는— 필요합니다. 이는 참여의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는 개인에게 어떤 구체적 자원이 이용 가능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예컨대 네트워크에 대한 우선 구성권(prior membership in networks) 같은 자원은 물론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개인이 속한 사회 부문에 의해 언제나 조건지어집니다. 예를 들어 모든 여성은 모순된 압력과 의무에 노출되어 있지만, 여성으로서 집합행동에 참여하는지는 교육 수준, 고용에 대한 접근, 좌파 정치집단에 대한 이전 가입 같은 자원에 달려 있습니다.
셋째 수준은 —개인의 헌신에 관한 심리학적 수준— 종종 과소평가되거나 잊히지만, 사실 핵심적입니다. 개인은 궁극적으로 ‘학생’이어서, ‘여성’이어서, ‘젊어서’, ‘흑인이어서’, ‘도시 거주자여서’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개인적인 이유로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Corpi estranei(『Extraneous Bodies』, ‘낯선/이질적 몸들’)에서 개인 변인의 중요성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제 임상 작업에 기반한 그 책은, 왜 개인들이 운동에서 물러나 치료적 조언을 구하게 되는지 그 깊은 심리적 이유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개인들이 집합행동에 관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 세 가지 서로 다른 수준을 때로 혼동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상호의존적 수준들을 분석적으로 구분해 보면, 개인이 자신의 집합행동 헌신이 부분적으로는 깊이 개인적인 이유에 기반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에 근거해, 그 개인들이 다시 사회 활동을 —심지어 집합행동에 대한 관여까지도— 재개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37Q: 선생님께서 ‘새로운 사회운동’을 정의하는 형식적 기준 중 하나로 “내적 연대”에 대한 강조를 들었죠. 하지만 그건 운동 내부의 만성적 분열을 간과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분열은 때로 생산적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여성운동의 재탄생은(사라 에번스 등 여러 연구자가 지적했듯이) 주로 시민권운동과 뉴레프트에서 비롯되었죠. 하지만 분열은 마비적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서유럽의 녹색당 운동 안에는 ‘녹색 정치’가 무엇인지 그 의미 자체를 두고 심각하고 마비적인 분열이 있습니다. 이런 이질성과 갈등은 운동을 연대에 기반한 것으로 본 당신의 정의와 모순되지 않나요? 오히려 운동은 기껏해야 “역동적이고 쟁점화된(다툼 중인) 연대”로만 정의된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나요? 당신 스스로도, 운동을 하나의 인격체로 말하는 사람들에 반대하면서, 운동이 무척추적 현상—이질적이고, 취약하고, 복잡한—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나요?
제 초기 글들에서 연대(solidarity)라는 개념은, 갈등(conflict)과 체제의 한계를 깨뜨리는 것(breaking the limits of the system)과 함께, 사회운동을 특정한 집합행동 형태로 정의하기 위해 사용된 핵심 개념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게는 집합행동 논의를 괴롭히던 이론적 혼란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해 보였습니다. 특히 저는 서로 다른 집합행동 형태들을 뒤섞는 경향이 —모든 것을 모든 것과 비슷하다고 정의해버리는 경향—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 연대가 어떤 ‘주어진 상태’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사회운동이 다면적 현실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합적 행위자들이 어떻게 자신들을 하나의 통일체로 정의하게 되는지를 명료화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연대라는 말을 쓸 때, 그것은 이상형(ideal-type)으로서 사용됩니다. 이는 역동적이고 불안정한 현실을 가리키며,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의 강렬한 상호작용, 협상, 갈등, 타협의 산물입니다.
##38Q: 저희 보기에 ‘경합하는 연대(contested solidarity)’라는 표현이야말로 사회운동 내부에서 집합적 정체성의 감각이 영구적으로 경합되고 다투어진다는 점을 이상형적으로 표현하는 데 더 적절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보통 운동 조직의 지도자들이 —반대자들과 맞서면서— 운동 내부의 통일성이라는 외관을 특히 강조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데도 유익합니다.
저도 바로 그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고, 제 연구도 확인하듯, 보통 운동 참가자들을 대신해 말하는 대변인들, 이데올로그들이 통일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둡니다. 하지만 면밀히 관찰해보면 운동이라는 직물(fabric) 속에는 만성적인 긴장과 차이가 드러납니다.
집합적 행위자들은 연대의 지속적인 ‘게임’에 막대한 양의 자원을 투자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누가 그것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지”를 놓고 논의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씁니다. 이런 ‘우리’ 감각을 구성하는 지속적 과정은 여러 이유로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효과적인 리더십, 작동 가능한 조직 형태, 또는 표현적 행동의 강한 축적이 있을 때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패할 수도 있고, 그 경우 집합행동은 해체됩니다. 사회학적 분석의 과제는 연대의 게임이 어떻게, 그리고 왜 성공하거나 실패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39Q: 당신의 작업은 ‘새로운 사회운동’ 참가자들의 사회적 배경을 —예컨대 사회계급— 분석하는 일의 중요성을 낮게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여전히 이해에 중요한 차원 아닌가요? 예컨대 사회학적 분석에 따르면 그린 운동에 대한 지지는 젊은 층, 여성, 대도시 거주자, 더 높은 수준의 정규 교육을 받은 집단, 그리고 정보경제의 핵심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가장 강합니다. 이런 분석은 새로운 운동들이 현 체계의 작동에 —그리고 따라서 변형—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문을 어느 정도 끌어올 수 있는지(또는 끌어올 잠재력이 있는지) 말해주지 않나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운동의 동원 잠재력을 추정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나요?
그런 종류의 연구는 사회운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비록 제가 직접 그런 연구를 하지는 않지만, 그 결과는 동시대 운동의 몇몇 특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연구는 집합행동이 사회조건에서 자발적으로 도출된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는 한계를 갖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관점의 심각한 약점들을 논의했죠.
##40Q: 당신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특징 중 하나로, 특정 유형의 혁명정치뿐 —레닌주의적 국가권력 장악 및 변형 모델— 아니라 보다 전통적인 좌파 정치 전략을 거부한다는 점을 듭니다. 이 점을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당신은 사회운동의 문화적·정치적 잠재력을 생각할 때, 좌/우라는 전통적 구분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가요?
19세기 유토피아들 다수의 꿈은 사회 행위자들을 국가를 변형하는 프로젝트에 결박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 행위자들은 동시에 시민사회의 동력으로,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정치권력을 창조하는 존재로 여겨졌죠. 하지만 오늘날 제 생각에 이 관점은 이제 낡았습니다. 시민사회 안에서의 사회적 행동 양식과 국가 제도 안에서의 정치적 행동 양식 사이에 점점 더 큰 분리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행동은 선택 과정을 —따라서 압력, 경쟁, 계산, 대표— 통해 결정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을 포함합니다. 반면 사회적 행동은 그물망(reticular) 같은 다면적 경험이며, 점점 더 개인적·대인적·집합적 삶의 의미에 관심을 갖습니다. 레닌주의의 문제는 사회적인 것 전부를 정치적 문제로 환원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회 행위자, 사회적 판단, 사회 현상에 대한 지식이 정치적 용어로 압축됩니다. 이는 극단적 환원주의이지만, 대단히 큰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흔히 집합행동을 정치체계에 미치는 영향으로 평가합니다. 사회운동과 정치권력 및 갈등의 관계를 이렇게 단락(short-circuit)시키는 것은 피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것은 사회운동 내부에서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과정들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그 과정들이 정치체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도 약화시킵니다.
레닌주의적 환원주의에 대한 제 불만은, 왜 제가 좌/우라는 전통적 구분을 사회운동에 적용하는 데 회의적인지 보여줍니다. 그 구분은 정치의 장(arena)에서는 아마 여전히 가치가 있을 겁니다. 정치적으로 좌파라는 것은 우파의 뒤를 돌아보는 보수주의에 반대하는 것을 뜻하니까요. 그것은 인권의 확장, 시민을 위한 법적 보장, 더 큰 평등과 민주주의, 정치적 차이에 대한 관용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이런 기준들을 사회운동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동시대 집합행동의 이질성은 그런 단순화된 범주들에 담기지 않습니다. 더구나 제가 설명하려 했듯이, 새로운 사회운동의 많은 특징은 진보적/보수적, 전진적/후진적 같은 말로는 묘사되지 않습니다. 이런 오래된 용어들은 사회학적 의미에서 이제 낡았습니다.
#우파
##41Q: 하지만 동시대의 운동들 가운데에는 정치적 우파의 핵심 주제들을 표명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종교 근본주의, 인종주의적·민족주의적 운동(e.g., 르펜의 국민전선), 그리고 ‘생명권(right to life)’ 운동도 당신이 이해하는 바의 새로운 사회운동이 지닌 형식적 특성들을 모두 갖고 있지요. 그렇다면 왜 당신의 분석은 이런 ‘우파’ 운동들을 다루지 않나요? 당신의 연구는 새로운 운동들이 (잠재적으로) 민주적이라는 점을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운동들의 근본주의적 혹은 반민주적 ‘어두운 면’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운동들에 제 연구가 집중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밀라노 프로젝트에서 저는 신종교적 운동(neo-religious movement)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이탈리아 맥락에서 이 운동은 새로운 영적 경험을 발전시키려는 집단들이 이루는 절충주의 네트워크(eclectic network)로 구성됩니다. 이 집단들은 대체로 기존 교회들의 주변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오리엔탈리즘적 주제들에 의해 이끌리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신종교적 운동이 매우 불편하고 불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많은 개념적 문제와 정치적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특히 그것은 새로운 운동들 가운데 여러 곳에서 ‘영성주의(spiritualism)’가 수행하는 깊이 양가적인 역할을 성찰하도록 저를 몰아붙였습니다. 어떤 집합적 행위자들에게 영성주의는 매우 매력적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현실이 그들에 따르면 ‘평평하고 일차원적’이라는 인식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영성주의는 주어진 현실을 고발하고 초월하는 수단이며, 그 현실의 ‘바깥’이라는 관점에서 급진적으로 다른 비전을 발전시키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영성주의의 수용은 신자들에게 단지 ‘다르다’는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 이상을 합니다. 그것은 또한 스스로를, 한계가 없다고 가장하는 현실에 대한 반대 속에서 규정합니다.
예컨대 성적 경험의 영역에서 복잡사회는 쾌락에 대한 권리를 마치 ‘열한 번째 계명’인 양 강조합니다. 이는 새로운 의무와 통제를 낳습니다. 우리는 성 매뉴얼의 규칙을 따름으로써 쾌락을 얻어야 한다고 ‘요구’받습니다. 영성주의는 성적 경험이 기술과 체조적 훈련으로 환원되는 이런 상황을 먹고 자라며, 동시에 그에 반응합니다. 영성주의는 급진적 페미니즘과 에코페미니즘의 일부 형태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초월적 관점을 제공합니다.
영성주의는, 탈주술화된 세계에서도 우리가 윤리 없이 살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러나 —제 견해로는 잘못되게도— 사랑과 조화 같은 더 높은 ‘윤리적’ 원리로 도피하면 복잡사회에서의 삶의 딜레마가 극복될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42Q: 영성주의는 분명 복잡체계 속에서 삶이 획일화된다는 인식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생합니다. 하지만 르펜의 국민전선에서 분명히 드러나듯, 파편화라는 반대 경험에 의해 촉발되는 다른 형태의 근본주의도 있습니다. 예컨대 프랑스의 국민전선은 일부 지지를 육체노동 기반의 노동계급 유권자들에게서 얻는데, 그중 일부는 옛 공산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탈산업화, 실업, 그리고 ‘외국인’ 때문에 위협을 느낍니다. 이런 민족주의자들이 초월적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들이 평평하고 획일화된 현실 속에 산다고 느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땅이 발밑에서 흔들리는 듯한 감각을 느낍니다. 그들은 불확실성 앞에서 확실성을 갈망하고, 바로 그 때문에 차이에 대해 비관용적이며, ‘프랑스’ 같은 통합의 상징에 매혹됩니다.
네. 이것이 바로 근본주의가 반동적이거나 파시즘적 형태로 나타날 때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그것은 차이가 제거된 사회라는 신화를 끌어안고, 더 효과적으로 그 신화를 타인에게 강요합니다.
##43Q: 당신은 새로운 사회운동 내부의 영성주의적 경향에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이것은 영성주의가 다양성에 관용적이지 않아서 —당신이 가톨릭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둘 다에서 처음 발견했던 바로 그 통합주의(integralism)로 다시 미끄러져 들어가기 때문인가요?
그보다 더 큰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저는 초월적 관점들이—‘영성주의’라는 말은 꼭 맞지 않는데, 그것이 흔히 제도 종교와 연관되기 때문입니다—필요한 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쟁점과 문제들은 사람들의 사적 이해관계에 대한 호소만으로는 다룰 수 없습니다.
생태운동이 제기하는 쟁점들을 생각해 보세요. 물론 핵발전소가 자기 집 근처에 들어서거나, 자신이 사는 해변이 오염되면 사람들은 걱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마존 유역 숲의 운명이나 호주 원주민의 운명에 대해 그들은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있을까요? 사람들이 왜 지구의 운명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그들이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행동으로 그들을 동기화하는 포괄적 윤리 체계를 기반으로 할 때뿐입니다.
바로 그래서 제가 불편함을 느낍니다. 운동은 합리적 계산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운동이 초윤리적 기준에 의존해야 한다는 그 필연성은, 운동을 새로운 복음을 설교하는 교회로 쉽게 바꾸어 버릴 위험을 내포합니다.
#메타정치적
##44Q: 이제 당신의 주장으로 —새로운 사회운동들이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며, 깊이 반(反)정치적 성격을 지닌다는 주장— 넘어가 보죠. 왜 이 운동들은 정당, 정부, 국가 제도들을 의심하나요?
동시대 운동들의 성격을 ‘반정치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저는 그들의 전정치적(pre-political) 성격과 메타정치적(metapolitical) 성격을 논하고 싶습니다. 운동은 일상생활의 전정치적 차원에서 작동합니다. 비공식적 네트워크 안에서 집합적 행위자들은 새로운 의미를 발명하고 그것을 시험해보는 일종의 ‘실험실 작업’에 협력합니다.
하지만 운동에는 메타정치적 차원도 존재합니다. 운동은 정치적 결정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복잡사회의 어떤 근본 딜레마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공표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일반적 문제들 가운데에는, 기껏해야 부분적이고 임시적인 해결책만 가능한 것들이 있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45Q: 사회운동이 제기하는 이런 메타정치적 쟁점들의 예를 몇 가지 들어주실 수 있나요?
예컨대 핵에너지에 관한 현재 이용 가능한 지식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물론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전지구적 재난” 같은 방식이 아니라면 말이죠. 평화운동과 생태운동이 널리 공표해 온 핵발전과 핵무기의 명백한 위험을 고려할 때, 핵지식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도, 핵지식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도 모두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는 정치권력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남아 있을 딜레마의 한 예입니다.
또 다른 예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 환경에 대해 행사하는 기술적 권력이 점점 더 커지면서 발생하는 핵심적 딜레마입니다. 이 권력은 사실상 무한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인간 생물학과 자연 생태계의 경계 안에 필연적으로 뿌리박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전능함도 선택할 수 없고, 완전히 ‘자연적인’ 존재로의 퇴행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두 극단 사이에 필연적으로 끼어 있으며, 정치적 결정이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동시대 운동들은 이런 종류의 딜레마를 우리가 자각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것들은 정치의 한계를, 즉 모든 것이 협상·의사결정·행정적 통제로 환원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장치로서, 비정치적 형태의 행위가 살아 있어야 한다고 운동들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46Q: 이탈리아 정치체계의 높은 ‘폐쇄성(closure)’이 운동의 전정치적·메타정치적 성격에 대한 당신의 견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나요?
운동과 정당의 관계에 대해 제가 초기에 했던 사고는 분명 이탈리아 정치체계의 특수성에 의해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중요한 사실 하나는, 국유화된 산업, 미디어, 예술 등 이탈리아 일상생활의 여러 영역에 유산처럼 누적된 국가의 만연함(pervasiveness)이 깊게 자리한다는 점입니다. 거의 모든 문제가 정치체계를 통해 다루어지거나, 혹은 정치체계를 통해 굴절되어 나타납니다. 사회적 행위는 과도하게 정치화(hyperpoliticized)되어 있습니다. 자율적인 시민 주도(autonomous civil initiatives)의 여지는 비교적 제한적입니다. 따라서 정치체계는 종종 정당하지 않고 막혀 있다고 여겨지게 됩니다. 국가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반응하지 않는다는 이 느낌은, 국가 기능의 오작동으로 인해 더 강화됩니다. 사법체계는 서툴게 작동하고, 대학은 과밀하며, 보건의료 서비스는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이탈리아에서 사회적 행위의 과도한 정치화와 대표성 부족이 결합해, 새로운 사회운동들의 요구가 질식당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시민사회가 제기한 이런 쟁점들에 가장 민감했던 정당은 급진당(Radical Party)이었고, 그 결과 이혼과 낙태를 금지하던 법을 쓸어버린 두 가지 중요한 사회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새 동원들이 제기한 다른 질문들은 정치 행위자들에 의해 무시되었습니다. 그 결과 정부 당국과의 충돌이 발생했고, 당국은 종종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조치로 대응했습니다. 새로운 사회적 요구를 기존의 정치적 균형 안에 가두기 위한 모든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집권권 진입을 열망하던 이탈리아 공산당(PCI)은 민주적 양당제에서의 좌파 야당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새로운 급진적 요구를 대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까지 학생, 여성, 생태에 관한 이탈리아 공산당의 정책과 공개 발언은 그들의 요구의 정당성을 거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끌어안은 신좌파(New Left) 그룹들이 일시적으로 성공한 것이 놀랍지 않습니다. 특히 학생운동은 Lotta Continua, Il Manifesto, Avanguardia Operaia 같은 작은 정치 조직들과 정당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이들은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제와 요구에 민감하긴 했지만, 그것을 레닌주의적 정치 용어로 번역하려 했고, 그 결과 사회현상으로서 그것의 새로움을 알아보는 데 실패했습니다. 1980년대의 비정치적 형태의 행위는 바로 이런 배경 위에서 등장했습니다.
##47Q: 지난 20년 동안 가장 불안한 전개 중 하나는 복잡사회에서 테러 조직이 성장한 일입니다. 당신은 이탈리아에서 테러의 전개를 왜곡된 근대화 과정과 좌파의 제도화 속에 위치시키지요. 당신은 새 운동들의 기대가 새로 근대화된 제도적 장치들에 의해 좌절되었고, Autonomia의 사례가 보여주듯 운동은 환멸을 느끼며 배신당했다고 느꼈다고 말합니다. 당신 견해에 따르면 테러리즘은 사회운동이 분해되는 결과입니다. 방금 당신이 스케치한 이탈리아의 전개를 참고해 이 점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1970년대 중반에 사회운동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탈리아 정치체계에서 폭력과 테러가 성장하는 현상에 관해 지배적인 해석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런 현상을 개별 테러리스트들의 비이성이나 광기의 결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애초부터 폭력의 씨앗을 품고 있던 사회·정치적 현상들이 필연적으로 낳는 결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해석들에 맞서, 이탈리아 사례에서 1960년대 말부터 시민사회에 영향을 미친 근대화의 파도, 사회운동의 성장, 그리고 정치체계의 오작동 사이에 연결이 있음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리고 테러리즘은 이 세 과정이 낳은 결과라고 보여주려 했습니다.
##48Q: 그 과정들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세부 내용은 복잡하고, 정확히 요약하기가 어렵습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이탈리아 경제는 다른 신자본주의 경제들과 비교할 만한 방식으로 변형되었습니다. 새로운 산업조직 형태, 확대되는 시장, 중간계급 소비 양식의 성장은 진행되었지만, 시민사회의 문화적·제도적 삶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뒤따르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말이 되자 이 모순은 산업관계, 교육체계, 사법부, 보건의료 체계의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형태로 폭발했습니다. 저는 이 시기 이탈리아의 경제적·문화적 삶에 영향을 미친 이러한 극적인 변화 전체를 가리켜 ‘근대화(modern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테러의 기원을 분석할 때 두 번째 요인은, 우리가 이미 논의해온 새로운 사회운동 내부에서의 새로운 요구들의 출현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중요한 요인은, 집권 연정의 지배 정당이었던 기독교민주당(Christian Democrats)이 통제하던 막혀 있는 정치체계였습니다. 정치체계는 새로운 사회적 요구들을 억제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미완의 과제와 불만을 남겼습니다.
학생들의 요구가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는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줍니다. 학생들의 가장 강력한 요구는 다른 형태의 대학체계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대학은 부분적으로나마 더 민주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학생 요구들은 —전쟁, 과학의 역할, 국제체계, 대인관계에서 권위주의를 완화할 필요, 그리고 전 세계 학생운동들에 공통적인 여러 쟁점들— 완전히 무시되었습니다. 이는 광범위한 환멸을 낳았고, 학생운동은 좌파 정치 방향으로 급진화되었습니다.
경제적 근대화가 낳은 공장 불안은 산업관계 체계의 변화를 촉진했지만, 동시에 환멸을 느끼는 근본주의적 주변 집단들도 만들어냈습니다. 이념적·정치적 틀은 레닌주의적이었지만 실제로는 ‘와일드캣(wildcat)’식의 민주적 야당처럼 행동하던 신좌파 조직들은, 근본주의자들과 개인적·문화적 변화를 찾는 사람들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활동가들은 정치적 폭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결론내리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1970년대의 테러리즘은, 사회적 요구의 ‘절반의 성공적인’ 제도화가 낳은 환멸과, 도시 청년 집단들의 새로운 주장에 대한 억압 및 방치가 낳은 환멸을 종합해냈습니다.
##49Q: 적어도 이탈리아 사례에서는 조직적 폭력 사용이 사회운동에서 자라나는 과정을 설명하셨습니다. 하지만 왜 동시대 운동들에서는 폭력이 그렇게 드문지도 설명하는 게 중요하지 않나요? 이번 세기 초, 노동운동의 일부가 고용주와 국가에 대한 폭력적 대결 환상에 의해 추동되었던 시기와 비교하면, 오늘날의 운동들은 거의 전적으로 시민불복종과 다른 비폭력적 행위 형태에 의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과거에 정치 권력이 폭력을 남용하거나 조잡하게 사용하면, 그에 맞선 반폭력을 대개 유발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오늘날의 다원주의 정치체계가 이 오래된 규칙을 학습했습니다. 정치권력은 더 영리해졌습니다.
둘째로, 그와 연관된 요인은 과거의 투쟁과 폭력에 의해 정치체계가 민주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운동과 서구 국가 사이에서 공개적이고 폭력적인 대결이 덜 흔한 것은, 그들의 차이를 협상할 수 있는 대안적 수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운동들의 내부 문화는 폭력 사용에 분명히 반대합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및 노동계급 문화와의 대비는 뚜렷합니다. 그 문화는 고용주와 국가에 대한 폭력적 대결을 정당한 것으로 보았고, 그 이론들은 때로 폭력이 필요하고 불가피하다고까지 가정했습니다. 동시대 운동들은 이런 낡은 가정들로부터 거리를 둡니다. 그들은 거창한 계획과 정치 이데올로기를 꺼리며 —현재 시제 속에 머물러 있고— 따라서 평화주의, 개인적 경험, 국가와의 잦은 공개 대결을 피할 필요를 강조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폭력의 소멸을 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폭력은 아마도 계속해서 운동들의 어두운 그늘 같은 이면으로 남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폭력과 사회운동 사이의 연결 고리가 약해질수록, 환멸하고 성급한 개인들과 고립된 작은 ‘소집단들(grouplets)’에 의한 테러 캠페인은 오히려 더 가능해질지도 모릅니다.
#매개적 공론장
##50Q: 당신의 글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요구가 정치적 매개를 필요로 하면서도 협상의 대상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마누엘 카스텔(Manuel Castells)도 비슷한 지점을 말했습니다. 도시 사회운동을 연구한 『도시와 풀뿌리(The City and the Grassroots)』에서 카스텔은 지배적인 도시 삶과 사회운동이 제시하는 대안 사이에 모순적 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대안적 도시를 추구하는 도시 사회운동이 정치적 대안을 제공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죠. 그들이 투사하는 이미지가 대안적 발전양식과도, 민주적 국가와도 연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도시 사회운동이 사회를 변형시키지 못한 채 도시의 의미를 변형시키는 데로 향한다고 결론내립니다. 그것들은 대안이 아니라 반응이라고요. 당신도 이 문제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운동들에 필요한 것은 시민사회 안에서 새로운 ‘매개적 공론장(intermediate public spheres)’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점을 더 풀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공적 공간(public spaces)의 확장과 공식적 인정이, 동시대 운동들을 보호하는 데 —그리고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민주주의를 풍요롭게 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확신합니다. 공적 공간의 확대와 공고화에 기반한 새로운 ‘탈산업적(post-industrial)’ 민주화 과정은, 근대 초기 시대의 권리, 시민권, 평등의 원리들 위에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운동들이 시민사회의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속에서, 그리고 그들이 공적으로 가시화되는 일시적 동원들 속에서, 이 이중의 존재 방식을 더 온전히 살아내게 해줄 것입니다. 독립적인 공적 공간이 공고화되면, 운동들은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주제들과 딜레마를 사회 전체에 더 잘 표현하고 공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 행위자들은 운동들의 메시지를 더 분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51Q: 당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새로운 대표(대의) 제도들의 사례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제가 말하는 공적 공간은 어느 정도는 이미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더 발전하는 일은 복잡사회에서 특히 세 영역에서 중요할 것입니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영역은 대학, 문화재단, 연구소 같은 지식 생산 기관(knowledge-producing institutions)입니다. 지식은 복잡사회의 핵심 자원입니다. 지식은 전문가들에 의해 생산되지만, 기업 권력과 국가 권력, 그리고 일반 대중에 의해 전유(appropriated)되기도 합니다. 이런 행위자들은 지식 생산 기관 내부에 그 목적을 위해 마련된 기구들을 통해 서로 더 개방적으로 협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공적 공간은 집합적 소비(collective consumption)의 —교통, 주거, 보건의료 및 기타 공공서비스— 영역에서도 강화될 수 있습니다. 이 영역에서는 시민사회의 일상적 필요와 요구가 기존의 정책결정 기구들과 더 자유롭게 접속(interface)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공적 공간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communications media)의 영역에서도 강화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고, 당장 내놓을 수 있는 기성 해법도 없습니다. 하지만 미디어 내부에서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의 대결과 협상을 위한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는, 미디어가 더 접근 가능하고 더 반응적인 것이 되도록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 세 정책 영역 각각에서 염두에 두는 공적 공간은 반드시 갈등의 장으로 기능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정당들에 의해 지배되지도 않을 것이며, 선거에서의 성공이 그들의 지침적 기준이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을 짊어지지 않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이 꼭 정면충돌하지 않더라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중립 지대를 닮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공간은 법적 보호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태스크포스, 위원회, 그리고 다른 일시적 대표 형태들을 —이탈리아의 녹색당이 부르는 표현으로는 ‘생분해성 조직(bio-degradable organizations)’— 포함할 텐데, 이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산발적(sporadic) 동원 양식과 맞아떨어질 것입니다.
##52Q: 이런 공적 공간의 발전은 사회운동에 대해 정당이 1차적이라는 통념적 관점을 급진적으로 깨야 가능한 것 아닌가요?
그것은 분명 전통적 정치 행위자들에게 —정당을 포함해서— 즉각적인 선거적·정치적 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공간들에 대해 태도의 극적인 변화를 요구합니다.
##53Q: 그 점을 인정하더라도, 당신의 제안은 운동이 —심지어 생존을 위해서라도— 정당정치의 장에 직접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과소평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점은 경쟁적이고 민주적으로 조직된 정당이, 당신이 말하는 공적 공간이 할 수 없는 몇 가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정당은 흩어진 의견들을 안정적인 이해관계 연합으로 응결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시간과 상황의 압력 속에서 정책 프로그램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시민들이 국가권력을 감시하면서 자기 사회적 이해를 방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새로운 운동들은 이런 민주적 정당의 기능을 종종 무시해 왔습니다. 하지만 운동이 정당에 필연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에 대한 자각이 커지고 있다는 징후도 있습니다. 다니엘 콩-방디트가 그 사례입니다. 1968년에 콩-방디트(Daniel Cohn-Bendit)는 이렇게 말했죠. “일상생활 속으로 정치를 들여온다는 것은 정치인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는 이제 운동이 정당정치에 관여할 필요를 인정합니다. “사회운동의 문제는 그것들이 제도화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들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빨리 퍼질 수 있는 만큼 아주 빨리 되밀려 패배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68년에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지금 신경 쓰는 것은, 성취된 것에 ‘현존(presence)’을 부여하는 일이고, 그것은 지금 매우, 매우 어렵다…. 나는 우리가 이것을 한 정당과 함께 이루려 시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당은 정의상 관료적 조직이다. 요점은 녹색당이 사회운동에 의해 밀린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이 녹색당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정치적 힘을 가지고 협상하도록 강제한다. 녹색당 같은 정당과 함께라면 우리는 국가의 제도들을 바꾸기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이것이 다른 무엇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콩-방디트의 이런 ‘심적 변화’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저는 정치정당이 수행하는 기능들이 다른 조직들에 의해서도 수행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노동조합, 압력단체, 자원봉사 단체들도 의견을 안정화하고, 사회적 요구를 대표하며, 장기 정책 프로그램을 공식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사회운동이 수행하는 기능이 정치정당의 기능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점은 우리 논의에서 이미 분명해야 합니다. 정치정당과 다른 정치 기구들은 대체로 복잡사회의 거시 수준(macro-levels)에서 권력을 행사합니다. 공적 공간의 역할은 다릅니다. 공적 공간은 운동이 시민사회의 요구를 표현하도록 허용하고, 복잡체계의 권력관계를 더 가시적으로 만들게 해줍니다.
이 체계들에서 권력은 종종 자신을 ‘중립적’이거나 ‘기술적’인 의사결정 절차의 베일 뒤에 숨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공적 공간의 이런 비판적 기능은 필수적이며, 아마도 현 시기에는 1차적으로 중요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54Q: 새로운 사회운동에 공감하는 관찰자와 지지자들은 종종 그 취약성과 정치적·사회적 억압에 대한 노출 가능성에 대해 경보를 울립니다. 예를 들어 이런 두려움은 현재 게이·레즈비언 운동 내부에서 분명히 보입니다. 곳곳에서 이런 운동들은 문화적·법적·정치적 괴롭힘의 물결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글은 운동이 강제로 제거되는 문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현재의 유목민들(Nomads of the Present)』에서 새로운 운동들이 영속적(permanent)이며 비국면적(non-conjunctural) 성격을 갖는다고 —복잡사회의 안정적이고 비가역적인 구성요소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 아닙니까?
어떤 이들은 제 견해가 구제불능으로 —어떤 자의주의적이고 낙관주의적인 가정에 근거한— ‘이탈리아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평가는 부당할 것입니다. 저는 사회운동의 미래에 대한 고려가 낙관/비관, 개인적 취향이나 정치적 선호의 문제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지난 이틀간의 대화는 동시대 사회운동의 취약하고 일시적인(fragile and ephemeral) 성격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들의 존재가 국면적(conjunctural) 요인들에 —예컨대 한 나라의 정치적 민주주의 수준— 의존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통상적 운명은, 제도화되어 —새로운 엘리트를 만들고 일상생활의 문화적 변화를 도입하거나— 혹은 일상의 흐름 속으로 사라지는 것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 점들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사회운동이 복잡사회의 영속적이고 비가역적인 특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이런 사회들이 이 운동들이 만들어내는 개인적 참여와 집합적 동원의 형태를 생산할 뿐 아니라 요구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기능주의적 용어로 말하자면 —제가 보통 쓰지 않는 용어이긴 하지만— 운동이라는 하위체계는 복잡체계의 영속적 특징입니다.
제가 뜻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고도로 중앙집중적이면서도 복잡한 이 체계들(systems)은 집합행동이 가능해지는 공간의 발달을 촉진합니다. 이 체계들은 여러 대형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상호 연결되어 있고, 단말기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접근되는 조직을 닮았습니다. 중앙의 컴퓨터들은 자기 작동의 조건으로서 주변부의 단말기들을 필요로 합니다. 단말기가 제공하는 정보 자원이 없다면 컴퓨터는 작동할 수 없습니다. 복잡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잡사회는 기능을 위해 개인적·집합적 동기 부여의 지속적 투입을 필요로 합니다. 이 요구가 사회운동이 자라나는 토양입니다.
사회운동은 복잡체계의 ‘중심(centres)’과 ‘주변(peripheries)’ 사이에 깊이 양가적인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 체계의 중심이 권력을 일방적으로 강제할 수 없으며 주변과의 협력 속에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활용합니다. 이런 구조적 긴장은 복잡체계의 핵심에 놓여 있고, 바로 그래서 사회운동은 문화적 코드와 권력관계를 문제화하는 역할을 계속 수행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회운동이 사라질 가능성이 낮은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삶이 영원히 단순한 재생산(reproduction) 수준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과 관련됩니다. 인간은 먹고, 자고, 번식하고, 살아남는 것 이상의 것을 원합니다. 인간은 주어진 존재 양식을 넘어서는(transcend) 동기도 갖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신의 의지나 역사의 법칙 같은 메타사회적 원리들이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 사실에 대한 자각이 커지고 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 자체가 자신이 우연적(contingent)이며 지속적인 재구성(continuous reconstruction)을 필요로 한다는 감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회운동은 이 우연성의 감각을 먹고자라며, 동시에 그것을 강화합니다. 종(species)으로서 우리가 스스로를 창조하고 파괴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각을 높여 왔습니다.
우리는 전례 없는 상황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전의 어떤 사회 형태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이만한 권력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미래는 거의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사회생활은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해졌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사회운동은 사라질 가능성이 낮습니다. 사회운동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이 엄청난 권력의 표시이자, 그 권력을 책임 있게 행사해야 한다는 우리의 막대한 의무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사회운동 이론 (Flynn, 2021) (0) | 2026.02.04 |
|---|---|
| 근접적 외로움에 맞서는 인간-너머 친족 (한승원, 2022) (0) | 2025.11.10 |
| 대만에서의 동성혼 합법화와 LGBT 공동부모에 대한 낙인 (Friedman & Chen, 2023) (0) | 2025.11.03 |
| 친족화: 초국가 입양가족에서 삶의 경로를 만들어내는 일 (Howell, 2003) (0) | 2025.10.27 |
| 농담 관계에 관하여 (Radcliff-Brown, 1940) (0) | 2025.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