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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RTH, Louis, 1938, "Urbanism as a Way of Life",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44-1: 1~24, https://doi.org/10.1086/217913.

 

생활 양식으로서 도시성

루이스 워스

 

# 초록

현대의 가장 인상적인 사실 가운데 하나인 세계의 도시화는 사회생활의 거의 모든 국면에 깊은 변화를 일으켰다. 미국에서 도시화가 최근에,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도시문제가 왜 이토록 첨예한지, 또 우리가 왜 그것들을 충분히 의식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해준다. 현대 세계에서 도시성(urbanism)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도시(city)에 대한 사회학적 정의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정의는 도시가 도시성의 전형적 장소(locus)이기는 하지만 도시적 생활양식(urban mode of life)이 도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사회학적 목적에서 도시는 '사회적으로 이질적인 개인들이 모여 사는, 상대적으로 크고 조밀하며 영속적인 정주지'로 정의될 수 있다. 

대규모 인구(large numbers)는 개인적 변이, 친밀한 개인적 상호면식의 상대적 부재, 대체로 익명적이고 표면적이며 일시적인 인간관계의 분절화, 그리고 그와 결부된 특성들을 설명해준다. 밀도(density)는 여러 현상들 가운데서도 다양화와 전문화, 가까운 신체적 접촉과 먼 사회적 관계의 병존, 두드러진 대조, 복잡한 분리 양식, 공식적 사회통제(formal social control)의 우세, 강화된 마찰을 수반한다. 이질성(heterogeneity)은 경직된 사회구조를 허물고 이동성, 불안정성, 불안감을 증대시키며, 개인들이 구성원 교체율이 높은 다양한 교차적·접선적 사회집단에 가입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 금전적 결합(pecuniary nexus)은 개인적 관계를 대체하는 경향이 있으며, 제도들은 개인적 요구보다 대중적 요구에 맞추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개인은 조직화된 집단(organized groups)을 통해 행동할 때에만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사회학적 분석이 이러한 이론체계에 비추어 진행된다면, 도시성이라는 복잡한 현상들은 통일성과 일관성을 획득할 수 있다. 도시적 생활양식의 생태, 사회조직, 사회심리에 관한 경험적 증거는 이러한 접근의 유용성을 확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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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며: 도시와 현대문명

 

서구 문명의 시작이 지중해 분지에서 이전에는 유목하던 사람들이 영속적으로 정주하게 된 사건으로 표시된다면, 우리 문명에서 뚜렷하게 근대적인 것의 시작은 대도시의 성장으로 가장 잘 표시된다. 대도시 특유의 생활조건 아래에서만큼 인간이 유기적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적은 없었다. 섬너(Sumner, 1906)가 원시사회를 묘사했던 것처럼, 현대 세계는 더 이상 광대한 영토 위에 흩어져 있는 작고 고립된 인간 집단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1] 근대라는 시대(modern age)에 인간의 생활양식을 특징 짓는 것은 거대한 집합체들 속으로 인간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그 주변에는 더 작은 중심들이 모여들고, 그곳으로부터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관념과 실천들이 방사된다.

현대 세계가 어느 정도로 '도시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는 전체 인구 가운데 도시에 사는 인구의 비율만으로는 충분히, 또는 정확히 측정되지 않는다. 도시가 인간의 사회생활에 행사하는 영향은 도시 인구의 비율이 시사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도시는 갈수록 더 큰 정도로 근대인의 거주지이자 작업장이 될 뿐 아니라,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의 발원지이자 통제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세계의 가장 먼 지역들까지 자신의 궤도 안으로 끌어들였고, 서로 다른 지역, 사람들, 활동들을 하나의 질서로 엮어냈다.

 

도시의 성장과 세계의 도시화는 현대의 가장 인상적인 사실 가운데 하나다. 약 18억 명으로 추정되는 세계 전체 인구 가운데 어느 비율이 도시적인지를 정확히 말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도시와 농촌을 구분하는 국가들에서는 전체 인구의 69.2퍼센트가 도시 인구다.[^2] 게다가 세계 인구가 매우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고, 산업주의의 영향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몇몇 국가들에서는 도시 성장이 그다지 많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평균치는 산업혁명의 충격이 더 강력하고 더 오래전에 작용한 국가들에서 도시 집중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를 과소평가한다. 미국과 일본 같은 산업화 지역에서 한 세대라는 기간 안에 일어난, 농촌사회에서 압도적으로 도시적인 사회로의 이 이동은 사회생활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깊은 변화를 동반했다. 바로 이러한 변화와 그 파급효과가 사회학자로 하여금 농촌적 생활양식과 도시적 생활양식 사이의 차이를 연구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관심을 추구하는 일은 현대 사회생활의 가장 중대한 문제들 가운데 일부를 이해하고, 가능한 경우 그것을 통제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본성과 사회질서에서 진행 중인 변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잘 드러내주는 관점 가운데 하나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3]

 

도시는 순간적인 창조물이 아니라 성장의 산물이므로, 도시가 생활양식에 행사하는 영향이 이전에 지배적이던 인간 결합 양식들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으리라고 예상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의 사회생활에는 더 이른 민속사회(folk society)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그 사회의 특징적 정주양식은 농장, 장원, 마을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영향은 도시 인구 자체가 상당 부분 농촌으로부터 충원된다는 사정에 의해 강화된다. 농촌에는 이 더 이른 존재양식을 떠올리게 하는 생활양식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도시적 인격 유형과 농촌적 인격 유형 사이에서 갑작스럽고 불연속적인 변이를 발견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도시와 농촌은 두 극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모든 인간 정주지는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기준으로 배열되는 경향이 있다. 도시-산업사회(urban-industrial society)농촌-민속사회(rural-folk society)를 공동체의 이념형(ideal types)으로 보면, 우리는 현대문명 속에 나타나는 인간 결합의 기본 모형들을 분석할 수 있는 관점을 얻을 수 있다.

 

 

# 2. 도시의 사회학적 정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명에서 도시가 압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도시성의 본성과 도시화 과정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빈약하다. 도시생활의 구별되는 특징을 분리해내려는 시도는 실제로 많이 이루어졌다. 지리학자, 역사학자, 경제학자, 정치학자는 각자의 분과적 관점을 도시의 다양한 정의 속에 통합해왔다. 사회학적 접근을 정식화하는 일이 결코 이러한 정의들을 대체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시를 인간 결합의 특정한 형식으로 만드는 독특한 특징을 강조해, 이 정의들 사이의 상호관계에 주의를 환기하는 데 부수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사회학적으로 의미 있는 도시 정의는 도시성을 인간 집단생활의 독특한 양식으로 표시해주는 요소들을 선별하려 한다.

 

공동체를 규모만을 기준으로 도시적이라고 규정하는 일은 명백히 자의적이다. 인구 2,500명 이상인 공동체를 도시적이라고 지정하고 그보다 작은 모든 공동체를 농촌적이라고 지정하는 현재의 인구조사 정의는 옹호하기 어렵다. 기준이 4,000명, 8,000명, 10,000명, 25,000명, 또는 100,000명이라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지막 경우에는 더 작은 규모의 공동체보다 도시적 집합체에 더 가까운 것을 다루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숫자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한 도시성에 대한 어떤 정의도 완전히 만족스러울 수 없다. 더욱이 자의적으로 정해진 주민 수보다 작은 공동체라도 대도시 중심의 영향권 안에 있다면, 압도적으로 농촌적인 지역에서 더 고립된 삶을 사는 더 큰 공동체보다 도시 공동체로 인정받을 더 큰 자격을 가질 수 있음을 입증하기는 어렵지 않다. 마지막으로, 인구조사상 정의는 도시가 통계적으로 언제나 행정적 개념이라는 사실에 지나치게 영향 받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법인화된 경계가 도시지역을 구획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거대한 대도시 중심들의 주변부에 인구가 집중되어 도시, 카운티, 주, 국가의 자의적 행정 경계를 가로지르는 경우에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도시성을 도시라는 물리적 실체와 동일시하고, 그것을 단지 공간적으로 엄격히 한정된 것으로 보며, 도시적 속성이 자의적인 경계선 너머에서는 갑자기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논의를 진행하는 한, 우리는 생활양식으로서의 도시성에 대한 적절한 개념에 도달하기 어렵다. 인간사에서 사실상 새로운 시대를 표시하는 교통과 통신의 기술적 발전은 우리 문명에서 도시가 지배적 요소로서 갖는 역할을 두드러지게 했고, 도시적 생활양식을 도시 자체의 경계 너머로 엄청나게 확장했다. 도시, 특히 대도시의 지배성은 도시 안에 산업 및 상업 시설과 활동, 금융 및 행정 시설과 활동, 교통과 통신 노선, 그리고 신문, 라디오 방송국, 극장, 도서관, 박물관, 콘서트홀, 오페라, 병원, 고등교육기관, 연구와 출판 중심, 전문직 조직, 종교 및 복지 기관과 같은 문화·오락 설비가 집중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도시가 이러한 수단들을 통해 농촌 인구에게 행사하는 매력과 암시가 없었다면, 농촌적 생활양식과 도시적 생활양식의 차이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다. 도시화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도시라고 불리는 장소에 끌려와 그 생활체계 안으로 편입되는 과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도시화는 또한 도시의 성장과 결부된 생활양식의 독특한 특성들이 누적적으로 강화되는 일을 뜻하며, 끝으로 도시가 통신과 교통의 수단을 통해 작동하는 제도와 인물들의 힘으로 행사하는 영향 아래 들어온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 도시적이라고 인식되는 생활양식의 방향으로 변화하는 일을 뜻한다.

 

주민 수를 도시성의 기준으로 삼을 때 따르는 결함은 대체로 인구밀도에도 적용된다. 마크 제퍼슨(Jefferson, 1909)이 제안한 제곱마일당 10,000명의 밀도를 받아들이든,[^4] 윌콕스(Willcox, 1926)가 도시 정주지의 기준으로 보기를 선호한 1,000명을 받아들이든,[^5] 밀도가 의미 있는 사회적 특성들과 상관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도시 공동체와 농촌 공동체를 구분하는 자의적 근거만을 제공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의 인구조사는 한 지역의 주간 인구가 아니라 야간 인구를 세기 때문에, 가장 강도 높은 도시생활의 장소, 곧 도심은 일반적으로 인구밀도가 낮다. 또한 도시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가장 특징적인 경제활동을 담고 있는 도시의 산업 및 상업 지역도, 밀도를 도시성의 표지로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거의 어느 곳에서도 참으로 도시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도시 공동체가 대규모 집합과 상대적으로 조밀한 인구 집중으로 구별된다는 사실은 도시의 정의에서 제외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들은 도시가 발생하고 존재하는 일반적 문화 맥락과의 관계 속에서 보아야 하며, 그것들이 사회생활에서 조건화 요인으로 작용하는 한에서만 사회학적으로 적합하다.

 

주민의 직업, 특정한 물리적 시설과 제도, 정치조직 형태의 존재 같은 기준에도 같은 비판이 적용된다. 문제는 우리의 문명에서든 다른 문명에서든 도시가 이러한 독특한 특징들을 실제로 보이는지 여부가 아니다. 문제는 그 특징들이 사회생활의 성격을 특수하게 도시적인 형식으로 빚어내는 데 얼마나 강력한가이다. 또한 생산적인 정의를 구성하려면 도시들 사이의 큰 변이를 간과할 수 없다. 우리가 최근 국가자원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수립하려 했던 것처럼 규모, 위치, 연령, 기능에 근거한 도시 유형론을 통해,[^6] 우리는 어려움을 겪는 소도시에서 번영하는 세계 대도시 중심에 이르기까지, 농업 지역 한가운데의 고립된 교역 중심지에서 번영하는 세계 항구와 상업·산업 연담도시에 이르기까지 도시 공동체들을 배열하고 분류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차이들이 결정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이 서로 다른 '도시들'의 사회적 특성과 영향이 매우 넓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용한 도시성의 정의는 모든 도시, 적어도 우리 문화 안의 모든 도시가 공통으로 갖는 본질적 특성을 표시해야 할 뿐 아니라, 그 변이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산업도시는 상업도시, 광산도시, 어업도시, 휴양도시, 대학도시, 수도와 사회적 측면에서 현저히 다를 것이다. 단일산업도시는 다중산업도시와 다른 사회적 특성들의 집합을 보일 것이며, 산업적으로 균형 잡힌 도시는 불균형한 도시와, 교외는 위성도시와, 주거 교외는 산업 교외와, 대도시권 안의 도시는 그 바깥의 도시와, 오래된 도시는 새로운 도시와, 남부 도시는 뉴잉글랜드 도시와, 중서부 도시는 태평양 연안 도시와, 성장하는 도시는 안정된 도시 및 쇠퇴하는 도시와 다른 특성들을 보일 것이다.

 

사회학적 정의는 이러한 여러 유형의 도시들이 사회적 실체로서 공통으로 갖는 본질적 특성을 포괄할 만큼 충분히 포괄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개략적으로 제시한 다양한 부류들 속에 함축된 모든 변이를 고려할 만큼 세부적일 수는 없다. 아마도 도시의 어떤 특성들은 다른 특성들보다 도시생활의 본성을 조건 짓는 데 더 중요할 것이며, 우리는 도시-사회적 장면의 두드러진 특징들이 규모, 밀도, 그리고 도시의 기능적 유형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농촌생활도 접촉과 소통을 통해 도시의 영향 아래 들어가는 만큼 도시성의 흔적을 지니게 되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이하의 진술을 분명히 하기 위해 다시 말하자면, 생활양식으로서 도시성의 소재지는 물론 우리가 도시의 정의로 세울 요건을 충족하는 장소들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도시성은 그러한 장소들에 한정되지 않으며, 도시의 영향이 미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다양한 정도로 나타난다.

 

도시들에서 특징적 생활양식을 이루는 특성들의 복합체인 도시성(urbanism)과, 이러한 요인들의 발전과 확장을 가리키는 도시화(urbanization)는 이처럼 물리적·인구학적 의미의 정주지인 도시(cities)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그러한 지역, 특히 대도시에서 가장 뚜렷하게 표현된다. 도시의 정의를 구성할 때에는, 생활양식으로서의 도시성을 특정한 지역적·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문화적 영향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영향들은 공동체의 특수한 성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도시로서의 성격을 결정하는 본질적 요인은 아니다.

 

도시성을 산업주의나 현대 자본주의와 혼동하는 위험에 특히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근대 세계에서 도시의 등장이 동력 기계기술, 대량생산, 자본주의적 기업의 출현과 무관하지 않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전 시대의 도시들이 전산업적·전자본주의적 질서 속에서 발전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대도시들과 아무리 달랐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그럼에도 여전히 도시였다.

 

사회학적 목적에서 도시사회적으로 이질적인 개인들이 모여 사는, 상대적으로 크고 조밀하며 영속적인 정주지(city is a relatively large, dense, and permanent settlement of heterogeneous individuals)로 정의될 수 있다. 이 최소한의 정의가 시사하는 가정들에 근거하여, 사회집단에 관한 기존 지식에 비추어 도시성 이론을 구성할 수 있다.

 

 

# 3. 도시성 이론

 

도시에 관한 풍부한 문헌 속에서도, 사회적 실체로서의 도시에 관한 가용한 지식을 체계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도시성 이론을 찾기는 어렵다. 물론 우리는 도시의 성장을 역사적 경향이자 반복되는 과정으로 보는 문제와 같은 특수 문제들에 관해서는 탁월한 이론적 정식화들을 갖고 있으며,[^7]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많은 문헌과 도시생활의 다양한 특정 측면들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시하는 경험적 연구도 풍부하게 갖고 있다. 그러나 도시에 관한 연구와 교과서가 늘어났음에도, 우리는 아직 도시의 사회학적 정의 안에 암묵적으로 들어 있는 일련의 가정들과, 경험적 연구를 통해 입증될 수 있는 일반 사회학적 지식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상호 결부된 가설들의 포괄적 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체계적 도시성 이론에 가장 가까운 접근은 막스 베버(Weber, 1925)의 통찰력 있는 에세이 「도시(Die Stadt)」[^8]와 로버트 E. 파크(Park, 1925)의 인상적인 논문 「도시: 도시환경에서의 인간행동 연구를 위한 제안들(The City: Suggestions for the Investigation of Human Behavior in the Urban Environment)」[^9]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훌륭한 기여들조차 연구가 유익하게 진행될 수 있는 질서 있고 일관된 이론적 틀을 구성하기에는 아직 멀다.

 

이하의 페이지들에서 우리는 도시를 식별하게 해주는 제한된 수의 특징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런 다음 이러한 특징들이 주어졌을 때 일반 사회학 이론과 경험적 연구에 비추어 어떤 결과 또는 추가적 특징들이 뒤따르는지를 지적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도시성 이론을 구성하는 본질적 명제들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 명제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가용한 상당한 양의 연구 자료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다. 다른 일부는 어느 정도의 추정적 증거는 존재하지만, 더 충분하고 정확한 검증이 요구되는 가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적어도 이러한 절차는 우리가 현재 도시에 관해 어떤 체계적 지식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향후 연구를 위한 결정적이고 생산적인 가설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도시사회학자의 중심 문제는 대규모의 이질적인 개인들이 상대적으로 영속적이고 압축적인 정주지에 살 때 전형적으로 출현하는 사회적 행위와 조직의 형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도시성이 그것과 부합하는 조건들이 존재하는 정도에 따라 가장 특징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를 취하리라고 추론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공동체가 더 크고, 더 조밀하게 인구가 밀집되어 있으며, 더 이질적일수록 도시성과 관련된 특성들은 더 강조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세계에서 제도와 실천은 그것들을 처음 생겨나게 한 이유와는 다른 이유로 받아들여지고 지속될 수 있으며, 따라서 도시적 생활양식은 그 기원에 필요한 조건과는 전혀 다른 조건 아래에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도시 정의를 이루는 주요 용어들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할 수 있다. 이 정의는 불필요한 가정들을 실어 넣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한 포괄적이고 동시에 지시적이도록 만들려는 시도였다. 도시를 구성하는 데 대규모 인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제한된 지역 또는 높은 정주 밀도와 관련된 대규모 인구를 뜻한다. 그럼에도 대규모 인구와 밀도는 각각 현저히 다른 사회적 결과와 연결될 수 있으므로, 이 둘을 별개의 요인으로 다루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질성이 인구 규모에 더해 도시성의 필수적이고 독립적인 기준으로 덧붙여져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수가 증가하면 차이의 범위도 증가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답으로는, 도시가 보이는 인구의 이질성이 단순히 대수의 법칙만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없고 정규분포곡선으로 적절히 표현될 수도 없는 종류와 정도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도시 인구는 스스로를 재생산하지 않으므로 다른 도시, 농촌,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최근까지 다른 나라로부터 이주민을 끌어들여야 한다. 따라서 도시는 역사적으로 인종, 민족, 문화의 용광로(melting-pot)였고, 새로운 생물학적·문화적 혼종이 생겨나는 데 가장 유리한 배양지(breeding-ground)였다. 도시는 개인적 차이를 용인했을 뿐 아니라 보상했다. 도시는 사람들을 그들이 동질적이고 생각이 같아서가 아니라, 서로 다르고 그래서 서로에게 유용하기 때문에 지구의 끝에서부터 한데 모아왔다.[^10]

관찰과 연구를 바탕으로, ⓐ 인구 수, ⓑ 정주 밀도, ⓒ 주민의 이질성과 집단생활 사이의 관계에 관한 여러 사회학적 명제들을 정식화할 수 있다.

 

## 3-1. 인구 집합체의 규모(size of the population aggregate)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정치학(Politics)』 이후로,[^11] 정주지의 주민 수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 증가하면 주민들 사이의 관계와 도시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인식되어 왔다. 앞서 지적했듯이, 대규모 인구는 개인적 변이의 범위를 더 크게 만든다. 더 나아가 상호작용 과정에 참여하는 개인의 수가 많을수록 그들 사이의 잠재적 분화도 더 커진다. 따라서 도시 공동체 구성원들의 개인적 특성, 직업, 문화생활, 관념은 농촌 주민의 경우보다 훨씬 더 넓게 벌어진 양극 사이에 걸쳐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한 변이가 피부색, 민족적 유산, 경제적·사회적 지위, 취향과 선호에 따른 개인들의 공간적 분리를 낳으리라는 점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친족의 유대, 이웃다움의 유대, 그리고 여러 세대 동안 공통의 민속 전통 아래 함께 살아가며 생겨난 정서는 그렇게 다양한 기원과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의 집합체에서는 부재하거나, 기껏해야 상대적으로 약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경쟁과 공식적 통제 장치가 민속사회를 결속시키는 데 의존했던 연대의 유대를 대신한다.

 

한 공동체의 주민 수가 수백 명을 넘어서 증가하면, 각 구성원이 공동체의 다른 모든 구성원을 개인적으로 알 가능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막스 베버(Weber, 1925)는 이 사실의 사회적 의미를 인식하면서, 사회학적 관점에서 주민 수가 많고 정주 밀도가 높다는 것은 근린에 보통 내재하는 주민들 사이의 개인적 상호면식(personal mutual acquaintanceship)이 결여되어 있음을 뜻한다고 지적했다.[^12] 따라서 수의 증가는 사회관계 성격의 변화를 수반한다. 짐멜(Simmel, 1903)이 지적하듯이,

>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외적으로 접촉하는 일이, 자신이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을 알고 그들 각각과 긍정적 관계를 맺는 소도시에서와 같은 수의 내적 반응을 요구한다면, 사람은 내적으로 완전히 원자화되어 상상할 수 없는 정신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13]

 

사람들이 완전한 인격으로 접촉하는 것이 불가능한 조건 아래에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 인간관계의 분절화가 생겨난다. 도시의 정신생활을 연구한 일부 연구자들은 때때로 이것을 도시적 인격의 '분열증적(schizoid)' 성격에 대한 설명으로 붙잡아왔다. 이것은 도시 주민이 농촌 주민보다 아는 사람이 더 적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것은 오히려 도시 주민이 일상생활에서 보고 어깨를 맞대는 사람들의 수에 비해 그들이 아는 사람의 비율이 더 작고, 그들에 대한 지식도 덜 깊다는 뜻이다.

 

도시인들은 특징적으로 서로를 고도로 분절적인 역할(segmental roles) 속에서 만난다. 물론 그들은 자신의 생활상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농촌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존하며, 따라서 더 많은 조직화된 집단과 관련을 맺는다. 그러나 그들은 특정한 사람에게는 덜 의존하고, 타인에 대한 의존은 타인의 활동 전체 가운데 매우 파편화된 한 측면에 국한된다. 이것이 바로 도시가 1차 접촉(primary contacts)보다 2차 접촉(secondary contact)으로 특징지어진다고 말할 때 본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다. 도시의 접촉은 실제로 대면적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비인격적이고 표면적이며 일시적이고 분절적이다. 따라서 도시인들이 자신들의 관계에서 보이는 유보적 태도, 무관심, 방종적 태도는 타인의 개인적 요구와 기대에 맞서 자신을 면역화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도시적 사회관계의 표면성, 익명성, 일시성은 도시 거주자들에게 흔히 부여되는 세련됨과 합리성을 이해 가능하게 한다. 우리의 면식관계(acquaintances)는 우리에게 유용성의 관계에 서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각자가 우리의 삶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압도적으로 우리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개인은 한편으로는 친밀한 집단의 개인적·정서적 통제로부터 어느 정도의 해방 또는 자유를 얻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통합된 사회 속에서 살아갈 때 오는 자발적 자기표현, 사기, 참여감을 잃는다. 이것이 기술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형태의 사회해체를 설명하려 할 때 뒤르켐(Durkheim)이 언급한 아노미,(anomie) 곧 사회적 공백의 상태를 본질적으로 구성한다.

 

도시에서 대인관계가 갖는 분절적 성격과 공리주의적 강조는 전문직에서 가장 발달된 형태로 볼 수 있는 전문화된 업무의 증식 속에서 제도적으로 표현된다. 금전적 결합의 작동은 약탈적 관계로 이어지며, 이것은 전문직 윤리규정과 직업적 에티켓에 의해 견제되지 않는다면 사회질서의 효율적 기능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유용성과 효율성에 부여되는 프리미엄은 개인들이 오직 집단 속에서만 참여할 수 있는 기업체를 조직하는 데 회사라는 장치가 적합함을 시사한다. 도시-산업 세계에서 회사가 개인 기업가와 동업체에 비해 갖는 이점은 수천 명의 개인이 가진 자원을 집중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나 유한책임 및 영속승계라는 법적 특권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사에는 영혼이 없다는 사실에서도 비롯된다.

 

개인들, 특히 직업에서의 전문화는 애덤 스미스(Smith)가 지적했듯이 확대된 시장을 토대로 할 때에만 진행될 수 있으며, 이 확대된 시장은 다시 분업을 강화한다. 이 확대된 시장은 부분적으로만 도시의 배후지에 의해 공급된다. 상당 부분 그것은 도시 자체가 담고 있는 대규모 인구 속에서 발견된다. 도시가 주변 배후지를 지배하는 현상은 도시생활이 야기하고 촉진하는 분업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도시생활의 극단적인 상호의존 정도와 불안정한 균형은 분업 및 직업의 전문화와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상호의존성과 불안정성은 각 도시가 자신이 가장 큰 이점을 지닌 기능에 전문화하는 경향에 의해 증대된다.

 

서로를 친밀하게 알 수 없고 한 장소에 모두 모일 수도 없는 수의 개인들로 구성된 공동체에서는 간접 매체를 통해 의사소통하고, 위임 과정을 통해 개인적 이해관계를 분명히 표현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도시에서 이해관계는 전형적으로 대표를 통해 효과를 갖는다. 개인은 거의 중요하지 않지만, 대표자의 목소리는 그가 대변하는 사람들의 수에 대략 비례하는 존중 속에서 들린다.

대규모 인구에서 비롯되는 한에서의 이러한 도시성의 성격 규정은 집단의 크기와 구성원의 특징적 행동 사이의 관계에 관한 우리의 지식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사회학적 추론을 결코 모두 소진하지 않는다. 그러나 간명성을 위해 지금까지 제시한 주장들은 발전시킬 수 있는 명제들의 종류를 예시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 3-2. 밀도(density)

 

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한된 공간 안의 집중이라는 경우에도 도시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에서 중요한 어떤 결과들이 나타난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지적할 수 있다.

 

다윈(Darwin)이 동식물에 관해 지적했고 뒤르켐(Durkheim, 1932)이 인간사회에 관해 언급했듯이,[^14] 면적이 일정하게 유지될 때 수가 증가하는 것, 곧 밀도의 증가는 분화(differentiation)전문화(specialization)를 낳는 경향이 있다. 오직 그런 방식으로만 그 면적이 증가한 수를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밀도는 사람들과 그들의 활동을 다양화하고 사회구조의 복잡성을 증대시키는 데서 수의 효과를 강화한다.

 

주관적 측면에서 보면, 짐멜이 시사했듯이 수많은 개인들의 가까운 신체적 접촉은 우리가 도시 환경, 특히 우리 동료 인간들에게 자신을 맞추는 매체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낳는다. 전형적으로 우리의 신체적 접촉은 가깝지만 우리의 사회적 접촉은 멀다. 도시 세계는 시각적 인지에 높은 가치를 둔다. 우리는 기능 수행자의 역할을 표시하는 제복을 보며, 그 제복 뒤에 감춰진 개인적 특이성에는 무심하다. 우리는 인공물의 세계에 대한 감수성을 습득하고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자연의 세계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

 

우리는 화려함과 누추함, 부와 빈곤, 지성과 무지, 질서와 혼돈 사이의 두드러진 대조에 노출된다. 공간을 둘러싼 경쟁은 크기 때문에, 각 지역은 일반적으로 가장 큰 경제적 수익을 낳는 용도로 쓰이는 경향이 있다. 일터는 거주지와 분리되는 경향이 있다. 산업 및 상업 시설의 근접성이 어떤 지역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주거에 바람직하지 않은 곳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밀도, 토지가치, 임대료, 접근성, 건강성, 명망, 미적 고려, 소음·연기·먼지 같은 유해요인의 부재는 도시의 여러 지역이 인구의 서로 다른 부분들에게 정주지로서 어느 정도 바람직한지를 결정한다. 일터와 일의 성격, 소득, 인종적·민족적 특성, 사회적 지위, 관습, 습관, 취향, 선호, 편견은 도시 인구가 선택되고 어느 정도 구별되는 정주지들로 분배되는 데 작용하는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일부다. 따라서 조밀한 정주지에 거주하는 다양한 인구 요소들은 그들의 요구와 생활양식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정도에 따라, 그리고 서로 적대적인 정도에 따라 서로 분리되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동질적인 지위와 요구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같은 지역으로 흘러들어가거나, 의식적으로 그곳을 선택하거나, 상황에 의해 그곳으로 몰리게 된다. 그 결과 도시의 서로 다른 부분들은 전문화된 기능을 획득한다. 따라서 도시는 하나의 사회세계에서 다른 사회세계로의 이행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사회세계들의 모자이크(mosaic of social worlds)와 닮아가는 경향이 있다. 서로 다른 인격과 생활양식의 병치는 상대주의적 관점과 차이에 대한 관용감을 낳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합리성의 전제조건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삶의 세속화로 이어진다.[^15]

 

정서적·감정적 유대가 없는 개인들이 가까이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것은 경쟁, 확대욕, 상호착취의 정신을 조장한다. 무책임성과 잠재적 무질서에 대응하기 위해 공식적 통제장치가 동원되는 경향이 있다. 예측 가능한 일상에 대한 엄격한 준수 없이는 대규모의 조밀한 사회가 유지되기 어렵다. 시계와 교통신호는 도시 세계에서 우리 사회질서의 기초를 상징한다. 빈번하고 가까운 신체적 접촉이 큰 사회적 거리와 결합하면, 서로 결부되어 있지 않은 개인들이 서로에 대해 취하는 유보적 태도가 강화되며, 다른 반응의 기회에 의해 보상되지 않는다면 외로움을 낳는다. 혼잡한 거주환경 안에서 많은 수의 개인이 필연적으로 자주 이동해야 한다는 점은 마찰과 짜증의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한 개인적 좌절에서 비롯되는 신경 긴장은 조밀한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 따라야 하는 빠른 속도와 복잡한 기술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 3-3. 이질성(heterogeneity)

 

도시 환경 안에서 그렇게 다양한 인격 유형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회적 상호작용은 카스트 경계의 경직성을 허물고 계급구조를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더 통합된 사회에서 발견되는 것보다 더 가지를 많이 친 분화된 사회층화의 틀을 유도한다. 개인의 높아진 이동성은 그를 매우 다양한 수많은 개인들의 자극 범위 안으로 데려오고, 도시의 사회구조를 구성하는 분화된 사회집단들 속에서 유동적인 지위에 놓이게 한다. 이것은 세계 일반에서 불안정성과 불안감을 하나의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낳는다. 이 사실은 도시인의 세련됨과 코스모폴리터니즘도 설명해준다. 어떤 단일 집단도 개인의 온전한 충성을 독점하지 못한다. 그가 가입한 집단들은 단순한 위계적 배열에 쉽게 들어맞지 않는다. 사회생활의 여러 측면에서 생겨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개인은 매우 이질적인 집단들에 구성원으로 가입하게 되며, 각각의 집단은 그의 인격 중 한 단면과 관련해서만 기능한다. 또한 이 집단들은 좁은 집단들이 더 포괄적인 집단들의 원주 안에 들어가는 식의 동심원적 배열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배열은 농촌 공동체나 원시사회에서 더 잘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는 개인이 전형적으로 가입한 집단들은 서로 접선적이거나 매우 가변적인 방식으로 교차한다.

 

부분적으로는 인구의 물리적 유동성의 결과로, 또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사회이동의 결과로, 집단 구성원의 교체율은 일반적으로 빠르다. 거주지, 일터와 일의 성격, 소득과 관심은 변동하며, 조직을 함께 유지하고 구성원들 사이의 친밀하고 지속적인 면식관계를 유지·증진하는 과제는 어렵다. 이는 도시 내부의 지역들에 특히 두드러지게 적용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에 대한 선택이나 적극적 끌림을 통해서라기보다 인종, 언어, 소득, 사회적 지위의 차이 때문에 분리된다. 도시 거주자는 압도적으로 주택소유자가 아니며, 일시적인 거주지는 구속력 있는 전통과 정서를 낳지 않기 때문에 그는 참된 의미의 이웃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개인이 도시 전체에 대한 관념을 얻거나 전체 계획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조망할 기회는 거의 없다. 그 결과 그는 무엇이 자신의 '최선의 이익'인지 판단하고, 대중적 암시의 기관들이 제시하는 쟁점들과 지도자들 사이에서 결정하기 어렵다. 이처럼 사회를 통합하는 조직체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개인들은 유동적 대중을 이루며, 이 때문에 도시 공동체의 집합행동은 예측 불가능하고 따라서 문제적인 것이 된다.

 

도시는 다양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변이형들을 모집하고, 경쟁과 특이성·새로움·효율적 수행·발명성에 대한 프리미엄을 통해 그들의 고유성을 강조하며 고도로 분화된 인구를 생산한다. 그러나 도시는 동시에 평준화 영향도 행사한다. 서로 다르게 구성된 많은 수의 개인들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서나 탈인격화의 과정도 들어온다. 이 평준화 경향은 부분적으로 도시의 경제적 토대 안에 내재한다. 적어도 근대에 대도시의 발전은 증기의 집중력에 크게 의존했다. 공장의 등장은 비인격적 시장을 위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분업과 대량생산의 가능성을 가장 충분히 활용하는 일은 공정과 산물의 표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화폐경제는 그러한 생산체계와 함께 간다. 도시들이 이 생산체계를 배경으로 발전함에 따라, 서비스와 사물의 구매가능성을 함축하는 금전적 결합은 결합의 기초로서 개인적 관계를 대체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성은 범주들로 대체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설과 제도를 공동으로 사용해야 할 때에는, 그 시설과 제도를 특정 개인들의 요구가 아니라 평균적 개인의 요구에 맞추도록 조정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공익사업 서비스, 오락·교육·문화 제도는 대중적 요구에 맞추어 조정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학교, 영화, 라디오, 신문 같은 문화제도들은 대규모 고객층 때문에 필연적으로 평준화 영향으로 작동해야 한다. 도시생활에서 나타나는 정치 과정도 근대 선전기술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중적 호소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다. 개인이 도시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삶에 조금이라도 참여하려면, 자신의 개인성 일부를 더 큰 공동체의 요구에 종속시켜야 하며, 그만큼 자신을 대중운동 속에 잠기게 해야 한다.

 

 

# 4. 도시성 이론과 사회학 연구의 관계

 

위에서 예시적으로 개괄한 것과 같은 이론체계를 통해, 도시성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현상들은 제한된 수의 기본 범주들로 분석될 수 있다. 그 결과 도시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은 본질적 통일성과 일관성을 획득하며, 경험적 연구자는 자신의 영역에 적절히 속하는 문제와 과정에 더 뚜렷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주제를 더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다. 미국을 특별히 참조하면서, 도시성 분야의 경험적 연구가 보여주는 몇몇 전형적 발견들을 제시함으로써 앞선 페이지들에서 제시한 이론적 명제들을 뒷받침할 수 있으며, 추가 연구가 필요한 몇몇 결정적 문제들도 개괄할 수 있다.

 

도시 인구의 수(number), 정주 밀도(density of settlement), 이질성의 정도(degree of heterogeneity)라는 세 변수에 근거하면, 도시생활의 특성을 설명하고 다양한 규모와 유형의 도시들 사이의 차이를 해명하는 일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특징적 생활양식으로서의 도시성은 세 가지 상호 관련된 관점에서 경험적으로 접근될 수 있다. ① 인구 기반, 기술, 생태적 질서를 포함하는 물리적 구조로서의 도시성, ② 특징적인 사회구조, 일련의 사회제도, 전형적인 사회관계 양식을 수반하는 사회조직 체계로서의 도시성, ③ 태도와 관념의 집합, 그리고 전형적 형태의 집합행동에 참여하고 특징적 사회통제 메커니즘의 지배를 받는 인격들의 배치로서의 도시성이 그것이다.

 

## 4-1.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 도시성

 

물리적 구조와 생태적 과정의 경우 우리는 상당히 객관적인 지표들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으므로, 꽤 정밀하고 일반적으로 양적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도시가 배후지를 지배하는 현상은 상당 부분 수와 밀도의 효과에서 비롯되는 도시의 기능적 특성들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도시생활이 낳는 많은 기술적 시설, 기술, 조직들은 수요가 충분히 큰 도시에서만 성장하고 번영할 수 있다. 이러한 조직과 제도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성격과 범위, 그리고 그것들이 소도시의 덜 발달된 시설들에 비해 누리는 이점은 도시의 지배성과 중앙 대도시에 대한 더욱 넓은 지역들의 의존을 강화한다.

 

도시 인구 구성은 선택적이고 분화시키는 요인들의 작동을 보여준다. 도시는 농촌 지역보다 인생의 전성기에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더 크며, 농촌 지역에는 노인과 매우 어린 사람이 더 많다. 이 점에서도 다른 많은 측면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시가 클수록 이 도시성의 특수한 특징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외국 출생 남성의 대부분을 끌어들인 가장 큰 도시들과 몇몇 특수한 유형의 도시들을 제외하면, 여성은 수적으로 남성보다 우세하다. 도시 인구의 이질성은 인종적·민족적 선을 따라서도 더 나타난다. 외국 출생자와 그 자녀들은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 주민 전체의 거의 3분의 2를 이룬다. 도시 인구에서 그들의 비율은 도시 규모가 작아질수록 낮아져, 농촌 지역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6분의 1에 그친다. 마찬가지로 대도시는 작은 공동체보다 더 많은 흑인과 다른 인종 집단들을 끌어들였다. 연령, 성, 인종, 민족적 기원이 직업과 관심 같은 다른 요인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고려하면, 도시 거주자의 주요 특성 가운데 하나가 동료들과의 비유사성이라는 점은 분명해진다. 미국의 대도시들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그렇게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큰 대중이 그렇게 가까운 신체적 접촉 속으로 던져진 적은 이전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도시, 특히 미국 도시는 여러 민족과 문화, 고도로 분화된 생활양식들의 잡다한 집합을 포함한다. 그들 사이에는 때로 가장 희미한 소통만 있고, 가장 큰 무관심과 가장 넓은 관용이 있으며, 때때로 격렬한 투쟁이 있지만, 언제나 가장 날카로운 대조가 있다.

 

도시 인구가 스스로를 재생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도시생활의 복합체 안에 있는 여러 요인이 결합한 생물학적 결과로 보이며, 일반적인 출생률 하락은 서구 세계의 도시화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징표 가운데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도시의 사망자 비율은 농촌보다 약간 높지만, 오늘날 도시가 자신의 인구를 유지하지 못하는 현상과 과거 도시의 그것 사이에서 두드러진 차이는 다음과 같다. 과거에는 그것이 도시의 지나치게 높은 사망률 때문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도시가 보건의 관점에서 더 살 만한 곳이 되었기 때문에 낮은 출생률 때문이다. 도시 인구의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은 사회학적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도시적 존재양식을 반영할 뿐 아니라, 도시의 성장과 미래의 지배성, 그리고 도시의 기본 사회조직을 조건 짓기 때문이다. 도시는 인간의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이므로, 인간 생명의 가치와 인격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출생과 사망 사이의 균형으로부터 영향받지 않을 수 없다. 토지 이용, 토지가치, 임대료, 소유의 양식, 물리적 구조물의 성격과 기능, 주택, 교통 및 통신 시설, 공공설비의 성격과 기능, 곧 도시의 물리적 메커니즘을 이루는 이러한 국면들과 그 밖의 많은 국면들은 사회적 실체로서의 도시와 무관한 고립된 현상이 아니라, 도시적 생활양식에 의해 영향을 받고 또한 그것에 영향을 미친다.

 

## 4-2. 사회조직의 한 형식으로서 도시성

 

도시적 생활양식의 독특한 특징들은 사회학적으로 흔히 1차 접촉이 2차 접촉으로 대체되는 것, 친족 유대의 약화, 가족의 사회적 중요성의 저하, 근린의 소멸, 사회적 연대의 전통적 기초의 잠식으로 묘사되어 왔다. 이 모든 현상은 객관적 지표들을 통해 상당히 입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낮고 계속 하락하는 도시의 재생산율은 도시가 자녀 양육과 가정을 생명 활동 전체의 중심지로 유지하는 일을 포함한 전통적 유형의 가족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산업·교육·오락 활동이 가정 바깥의 전문화된 제도들로 이전되면서, 가족은 자신이 역사적으로 수행해온 가장 특징적인 기능들 가운데 일부를 잃었다. 도시에서는 어머니가 고용되어 있을 가능성이 더 높고, 하숙인이 가구의 일부를 이루는 경우가 더 잦으며, 결혼은 연기되는 경향이 있고, 독신자와 결부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의 비율은 더 크다. 가족은 농촌보다 더 작고 자녀가 없는 경우가 더 잦다. 사회생활의 단위로서 가족은 농촌에 특징적인 더 큰 친족집단으로부터 해방되고, 그 개별 구성원들은 직업적·교육적·종교적·오락적·정치적 생활에서 저마다 갈라지는 관심을 추구한다.

 

건강의 유지, 개인적·사회적 불안정과 결부된 고통을 완화하는 방법, 교육·오락·문화적 향상을 위한 제공 같은 기능들은 공동체 전역, 주 전역, 심지어 전국적 차원의 고도로 전문화된 제도들을 낳았다. 더 큰 개인적 불안정성을 초래한 바로 그 요인들은 도시 세계에서 발견되는 개인들 사이의 더 넓은 대조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도시는 전산업사회의 경직된 카스트 경계선을 허물었지만, 소득집단과 지위집단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고 분화시켰다. 일반적으로 성인 도시 인구 가운데 유급으로 고용된 비율은 성인 농촌 인구의 경우보다 더 크다. 상업, 사무,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화이트칼라 계급은 농촌보다 대도시, 대도시 중심, 그리고 소도시에서 비례적으로 더 많다.

 

전반적으로 도시는 개인이 위기 때 기대어 돌아갈 생계 기반을 갖는 경제생활을 억제하며, 자영업도 억제한다. 도시 사람들의 소득은 평균적으로 농촌 사람들의 소득보다 높지만, 생활비는 큰 도시일수록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주택 소유는 더 큰 부담을 수반하며 더 드물다. 임대료는 더 높고 소득의 더 큰 부분을 흡수한다. 도시 거주자는 많은 공동 서비스를 누리지만, 자신의 소득 가운데 더 큰 비율을 오락과 향상 같은 항목에 쓰고 식품에는 더 작은 비율을 쓴다. 공동 서비스가 도시인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은 그가 구매해야 하며, 상업주의에 의해 이용되지 않은 인간의 필요는 사실상 남아 있지 않다. 자극을 제공하고 고된 일, 단조로움, 반복적 일상으로부터 도피할 수단을 공급하는 것이 도시 오락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가 된다. 도시 오락은 최선의 경우 창조적 자기표현과 자발적 집단 결합의 수단을 제공하지만, 도시 세계에서 더 전형적으로는 한편으로 수동적 관람주의를, 다른 한편으로 선정적인 기록 경신의 묘기를 낳는다.

 

개인으로서는 사실상 무력한 단계로 축소된 도시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슷한 관심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조직화된 집단(organized groups)에 가입하여 스스로를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인간의 필요와 관심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목적을 향한 자발적 조직이 엄청나게 증식한다. 한편으로 인간 결합의 전통적 유대가 약화되는 반면, 도시적 존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훨씬 더 큰 정도의 상호의존을 수반하며, 개인 자체로서는 거의 통제할 수 없는 많은 국면에 걸쳐 더 복잡하고 취약하며 변동적인 상호관계의 형식을 수반한다. 도시 세계에서 개인의 존재를 결정하는 경제적 위치나 그 밖의 기본 요인들과 그가 가입한 자발적 집단들 사이에는 흔히 가장 희박한 관계만이 존재한다. 원시사회와 농촌사회에서는 몇 가지 알려진 요인만을 바탕으로 누가 어디에 속할 것이며 누가 삶의 거의 모든 관계에서 누구와 어울릴지를 예측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집단 형성과 가입의 일반적 양식만을 투사할 수 있을 뿐이며, 이 양식은 많은 부조화와 모순을 드러낼 것이다.

 

## 4-3. 도시적 인격과 집합행동

 

도시인이 자신의 인격을 표현하고 발전시키며, 지위를 획득하고, 자신의 생애경로를 구성하는 활동들의 순환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자발적 조직들의 활동(activities of the voluntary groups)을 통해서다. 그 목적이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교육적이든, 종교적이든, 오락적이든, 문화적이든 그렇다. 그러나 이렇게 고도로 분화된 기능들이 불러내는 조직적 틀이 그 안에 이해관계를 둔 인격들의 일관성과 통합성을 그 자체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는 개인적 해체, 정신적 붕괴, 자살, 비행, 범죄, 부패, 무질서가 농촌 공동체보다 도시 공동체에서 더 많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될 수 있다. 비교 가능한 지표들이 존재하는 한에서 이것은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의 밑바탕에 놓인 메커니즘은 더 분석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집단적 목적을 위해 도시에서는 서로 분리되고 분화된 많은 수의 개인들에게 개별적으로 호소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또한 집단적 대의를 위해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속한 조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도시의 사회통제는 전형적으로 공식적으로 조직된 집단들을 통해 진행되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또한 도시의 대중은 소통 수단을 통제함으로써 멀리서 일하거나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개인들이 관리하는 상징과 고정관념에 의해 조작되기 쉽다는 결론도 따른다. 경제 영역에서든 정치 영역에서든 문화 영역에서든,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자치는 한갓 말뿐인 표현으로 축소되거나, 기껏해야 압력단체들의 불안정한 균형에 좌우된다. 실제 친족 유대의 비효과성을 고려하여 우리는 허구적 친족집단을 만들어낸다. 사회적 연대의 기초로서 영토 단위가 사라지는 상황에 직면하여 우리는 이해관심 단위를 만들어낸다. 그 사이 공동체로서의 도시는 명확한 중심은 있지만 명확한 주변부는 없는 영토적 기반 위에, 그리고 직접적 지역성을 훨씬 넘어 세계적 범위에 이르는 분업 위에, 일련의 희박한 분절적 관계들이 덧씌워진 것으로 해소된다. 서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을수록 의사소통의 수준은 낮아지며, 의사소통은 더 기초적인 수준, 곧 공통된 것으로 또는 모두의 관심사로 추정되는 것들에 근거해 진행되는 경향이 커진다.

 

따라서 사회생활의 한 양식으로서 도시성의 장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후를 찾으려면, 우리는 근대문명과 함께 등장한 통신체계의 새롭게 부상하는 경향과 생산 및 분배 기술을 살펴보아야 한다. 도시성에서 진행 중인 변화의 방향은 좋든 나쁘든 도시뿐 아니라 세계를 변형할 것이다. 이러한 요인과 과정 가운데 더 기본적인 것들, 그리고 그 방향과 통제 가능성은 더 상세한 연구를 요청한다.

 

사회학자가 도시를 사회적 실체로 명확히 개념화하고 작동 가능한 도시성 이론을 가질 때에만,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의 통일된 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오늘날 '도시사회학(urban sociology)'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것은 분명히 아직 그러한 체계가 아니다. 앞의 페이지들에서 개괄한 것과 같은 도시성 이론을 출발점으로 삼고, 그것을 더 정교화하고 경험적 연구와 추가 분석에 비추어 검증하고 수정해, 사실 자료의 적합성과 타당성의 기준이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까지 도시에 관한 사회학적 논저들 속으로 흘러들어간 단절된 정보들의 잡다한 모음은 그렇게 선별되어 일관된 지식체계 안으로 통합될 수 있다. 부수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그러한 이론을 통해서만 사회학자는 빈곤, 주택, 도시계획, 위생, 지방행정, 치안, 마케팅, 교통 및 그 밖의 기술적 쟁점들에 관해 사회학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뒷받침되기 어려운 여러 판단을 말하는 무익한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회학자는 이러한 실제 문제들 가운데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다. 적어도 혼자서는 그렇다. 그러나 자신의 고유한 기능을 발견한다면, 그는 그 문제들의 이해와 해결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렇게 할 가능성은 임시방편적 접근보다 일반적이고 이론적인 접근을 통해 가장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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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1] William Graham SUMNER, 1906, *Folkways*, Boston, p.12.

[^2] S. V. PEARSON, 1935, *The Growth and Distribution of Population*, New York, p.211.

[^3] 미국의 농촌생활은 오랫동안 정부 부처들의 상당한 관심 대상이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종합 보고서 사례는 1909년 컨트리 라이프 위원회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였다. 반면 국가자원위원회의 도시성 연구위원회가 설치되기 전까지 도시생활에 관해서는 그와 동등하게 포괄적인 공식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Cf. *Our Cities: Their Role in the National Economy*, Washington: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37.

[^4] Mark JEFFERSON, 1909, 'The Anthropogeography of Some Great Cities', *Bulletin of the American Geographical Society*, 41: 537~566.

[^5] Walter F. WILLCOX, 1926, 'A Definition of ‘City’ in Terms of Density', Ernest W. BURGESS(ed.), *The Urban Community*, Chicago, p.119.

[^6] *Our Cities: Their Role in the National Economy*, p.8.

[^7] Robert E. PARK, Ernest W. BURGESS, et al., 1925, *The City*, Chicago, 특히 2장과 3장; Werner SOMBART, 1931, 'Städtische Siedlung, Stadt', Alfred VIERKANDT(ed.), *Handwörterbuch der Soziologie*, Stuttgart; see also bibliography.

[^8] Max WEBER, 1925, *Wirtschaft und Gesellschaft*, Tübingen, Part II, chap. 8, pp.514~601.

[^9] Robert E. PARK, Ernest W. BURGESS, et al., 1925, *The City*, Chicago, chap. 1.

[^10] '영속적(permanent)'이라는 말을 정의에 포함한 정당화는 필요해 보일 수 있다. 이 도시적 표지에 대해 자세한 정당화를 제시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사실에 근거한다. 인간 정주지가 어떤 지역에 상당히 영속적으로 뿌리내리지 않는 한 도시생활의 특성들은 생겨날 수 없으며, 반대로 조밀한 조건 아래 대규모의 이질적 개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도 어느 정도의 기술적 구조가 발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11] 특히 7권 4장 4~14절을 보라. B. Jowett 번역에서 다음을 인용할 수 있다.

> 국가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다. 식물, 동물, 도구에도 한계가 있듯이 말이다. 이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지나치게 크거나 지나치게 작으면 자연적 힘을 보존하지 못하고, 자신의 본성을 완전히 잃거나 훼손된다. … 국가도 구성원이 너무 적으면 국가가 마땅히 그래야 하듯 자족적일 수 없다. 반면 너무 많으면, 단순한 필수품에 관해서는 자족적일지라도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민족이며, 입헌정부는 거의 불가능하다. 누가 그렇게 거대한 무리의 장군이 될 수 있겠는가. 또는 스텐토르의 목소리를 갖지 않는 한 누가 전령이 될 수 있겠는가.

> 그러므로 국가는 정치 공동체 안에서 좋은 삶을 살기에 충분한 인구에 도달했을 때에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 실제로는 이 수를 어느 정도 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말했듯이 한계가 있어야 한다. 그 한계가 무엇인지는 경험을 통해 쉽게 확인될 것이다. 통치자와 피치자 모두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통치자의 특별한 기능은 명령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국가의 시민들이 판단하고 공직을 공적에 따라 배분하려면, 그들은 서로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한 곳에서는 공직 선출과 소송 판결 모두 잘못될 것이다. 인구가 매우 많으면 그것들은 명백히 우연히 정해지게 되는데, 이는 분명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과잉 인구 국가에서는 외국인과 거류민이 쉽게 시민권을 획득할 것이다. 누가 그들을 찾아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분명히 국가 인구의 최선의 한계는 삶의 목적에 충분하고 한눈에 들어올 수 있는 최대 수다. 도시의 크기에 관해서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12] WEBER, 1925, *Wirtschaft und Gesellschaft*, p.514.

[^13] Georg SIMMEL, 1903, 'Die Grossstädte und das Geistesleben', Theodor PETERMANN(ed.), *Die Grossstadt*, Dresden, pp.187~206.

[^14] Émile DURKHEIM, 1932, *De la division du travail social*, Paris, p.248.

[^15] 인구가 서로 다른 생태적·문화적 지역들로 분리되는 것,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나는 관용·합리성·세속적 정신의 사회적 태도가 이질성과 구별되는 밀도의 기능인지 어느 정도까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우리는 두 요인의 동시적 작동의 결과인 현상들을 다루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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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준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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